"2009년 악몽 되풀이는 꼭 피했으면"..쌍용차 노동자들은 지금
2009년 되풀이? .. 쌍용차 사태도 기업회생절차가 개시되면서 시작
"입에 올리기도 싫지만, 인력 구조조정 있을 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
"2009년 파업, 함께 했든 안했든 아픔은 같아..정말 피하고 싶어"
"나만 힘들었던 게 아냐..가족과 지인들도 너무나 아팠던 10여 년"
쌍용차에는 두 개의 노조, 성향 다르지만 "고용 유지하는 구조조정" 한목소리
쌍용자동차가 다시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서울회생법원 회생1부는 쌍용차에 대한 기업회생 절차를 개시한다고 어제(15일) 발표했습니다.
잠시 과거로 가보겠습니다.
2009년 2월, 쌍용차는 당시엔 '법정관리'로 불렸던 기업회생 절차를 시작했습니다. 그해 여름, 모두가 기억하는 쌍용차 사태를 겪었습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2011년 3월 기업회생 절차에서 졸업했습니다.
개시 기준으로는 12년, 졸업 기준으로는 10년 만에 또 같은 과정을 밟게 된겁니다.
■ "아, 결국 이렇게 되네" "혹시? 대규모 감원 있을까" "설마! 다시 그러겠어"
지금 누구보다 착잡할 이들. 쌍용차 노동자들일 것입니다. 현장을 찾아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분위기가 너무 무거웠습니다. 다가가 말을 걸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취재 카메라를 바라보는 눈빛이 서늘하기까지 했습니다.
김정욱 씨는 2018년 12월 31일 쌍용차에 복직했습니다. 지금은 티볼리와 코란도를 만드는 생산 라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여느 직원과 다를 게 없어보입니다.
김정욱씨는 지난 2014년 12월 13일 쌍용차 평택공장 안에 있는 굴뚝에 올랐습니다. 폭 1미터도 채 안되는 굴뚝 위에서 무려 88일을 버텼습니다. 극한투쟁이었습니다. 꽉 막힌 출구를 막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합니다.
굴뚝에 오르기 한달 전인 2014년 11월, 대법원이 "쌍용차 정리해고는 적법"하다고 확정 판결했기 때문인데요. 당시 쌍용차 해고자들로선 법적으로 더이상 다툴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굴뚝에 올랐습니다. 다행히 반응이 있었습니다.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 그룹 회장과 면담이 성사됐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고 굴뚝 농성자들이 안전하게 내려오자고 합의했습니다.
지난한 시간을 거쳐 김정욱 씨는 2018년 마지막 날에 복직했습니다. 2년 동안 생산 현장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다시 어려워졌습니다. 지금 가장 걱정되는 건 무엇일까요?
김정욱/2018년 12월 복직자
"주변 동료들 보면 안절부절 못하고 있고요. 두번째 법정관리가 들어가다 보니까 기운을 상실한 상태. 상당히 겁을 먹고 있고요. "
(지금 가장 걱정되는 일은 어떤 것이세요?)
"저도 입에 올리기는 싫지만 인력 구조조정을 포함한 자구안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생각이 힘든 시간들입니다. "
■ "우리나 그들이나 트라우마는 똑같더라고요"
일자리가 흔들린다는 불안감. 10여년 전 아픔이 반복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 적어도 그 불안과 공포 앞에서는 소속 노조나 정치적 성향의 차이가 무의미합니다.
김득중 씨는 지난해 5월 가장 마지막 순번으로 복직했습니다. 지금은 생산혁신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생산 라인에 장기 결원이 생겼을 때, 급하게 인력 결손을 메워주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지금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직위만 보자면, 가장 날이 서있을 법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소속 노조, 파업 여부를 떠나 지난 2009년 쌍용차 사태가 남긴 상처가 여전히 깊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차례 가족을 언급했습니다. 힘든 시간이 또 다가올텐데, 가족들이 다시 아파할 수도 있다는 점, 그게 가장 걸린다고 했습니다.
김득중/2020년 5월 마지막 복직자
"전체적으로 말을 많이 아껴요. (2009년 공장점거 당시) 공장 안에 있던 동료나 밖에 있던 동료나 트라우마는 똑같더라고요. 그 상처가 너무 깊고 아프다 보니까 다시 꺼내서 얘기하는 걸 되게 조심스러워 해요."
(가족들도 많이 걱정할 것 같은데요?)
"10년을 저만 아파했던 게 아니잖아요. 가족들도, 지인들도 똑같이 그런 아픔의 시간이 있었고, 그 아픔이 또 이어진다는 것이 되게 미안함이 있어요. 굳이 이 문제를 드러내서 아픔을 드리고 싶지는 않아요."
■ '구조조정=인력감축' 등식은 깨질 수 있을까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쌍용차 직원은 현재 4,920명입니다. 파견업체 등 소속은 다르지만, 같은 일터에서 일하는 이들은 1,254명입니다.
쌍용차에서 생계를 해결하는 이들만 모두 6,174명인 셈입니다. 1차·2차 협력업체까지 감안하면 수만 명 수준으로 불어납니다.
쌍용차에는 현재 두 개의 노조가 있습니다. 기업노조인 쌍용차노조가 다수 노조인데, 조합원이 3,500여 명입니다. 쌍용차노조는 '"총 고용을 보장한다면 기업회생 절차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일자리만 유지된다면 해외 매각도 수용할 수 있다는 기조입니다.
2009년 쌍용차 사태를 이끌었던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해외 매각이 아난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중국 기업인 상하이자동차, 인도 기업인 마힌드라에 이어 또다시 해외 기업을 새 주인으로 맞는 것은 단기적 처방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두 노조는 현 상황에 대한 인식이 다릅니다. 생각하는 해법도 결이 다릅니다.
다만, 분명한 교집합이 있습니다.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는 데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겁니다. 고용이 유지된다면, 임금 삭감 등 일정 수준의 고통 분담은 수용할 수도 있다는 입장입니다.
기업회생 절차의 1차 관문은 청산 여부입니다. 법원이 청산을 결정한다면, 쌍용차는 문을 닫게 됩니다. 노조가 요구하는 고용 유지는 첫 단추조차 꿸 수 없습니다.
반대로 청산만 피해간다면, 회생의 기회는 생깁니다. 기업 생존의 문제를 인정에만 호소할 수는 없습니다. 해결의 열쇠를 쥔 산업은행도 고강도 체질개선이 없으면 추가 지원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위기를 겪은 많은 기업들의 구조조정 과정은 대체로 비슷했습니다. 강도높은 인력 감축이 항상 동반됐습니다. 2009년 쌍용차도 그랬고, 결과는 쌍용차 사태라는 일종의 파국이었습니다.
전기차, 자율주행차… 자동차 시장은 급변하고 있습니다. 좋은 차를 만들어 소비자의 마음을 되돌리지 못하면, 쌍용차의 장기 생존은 매우 불투명합니다.
노조는 일자리를, 급여를, 나누더라도 고용만큼은 유지하는 구조조정을 바라고 있습니다. '함께 살자'는 요구입니다.
쌍용차는 2009년의 악몽을 피할 수 있을까요?
김준범 기자 (jb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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