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와 과학의 시간..오염수 방류 막을 수 있을까?
"2년 정도 후에 실제 오염수 방류가 이뤄지는 계획으로 듣고 있다. 이 2년 정도가 제 생각엔 외교의 시간, 과학의 시간이다."
-외교부 고위당국자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로 방출하겠다고 13일 발표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곧바로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까지 검토하라고 지시했죠. 한일 관계 개선 쪽으로 기우는 듯하던 정부 기류가 급격히 냉각되면서 외교전과 함께 국제법정을 통한 대응, 또 과학적 논쟁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외교와 과학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갈까요? 한국 정부가 최선을 다하면, 결국 방류를 저지할 수 있을까요?
■"모르는데 어떻게 동의해?"…정보 제공 촉구
정부가 가장 문제 삼는 부분은 일본 정부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폐기물을 계속 보관만 할 수는 없으니 어떤 방식으로든 처분은 해야 할텐데요. 폐기물에 뭐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 처분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그 처분 방법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지를 판단할 근거가 모호한 상황입니다. 뭘 알아야 동의를 해주지 않겠느냐는 거죠.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지난 14일 기자들을 만나 "공식적으로 정보공유를 통해 받아온 것을 갖고는 도저히 국민들에게 안전하다고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 전혀 안 됐다. 그래서 우리 입장에서 당연하게 반대, 유감 표명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밝혔습니다.
우리 정부는 오염수 해양 방출의 안전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해양 방출할 핵종(방사성 물질의 종류)과 농도, 총량과 방출 기간 등 정보가 필수라고 보고 일본 측에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여러 차례 한국 측에 자료를 건네면서도 우리가 요구한 핵심 정보는 쏙 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조사단 참여 추진…"IAEA도 우리 입장 충분히 이해"
정확한 정보를 받아내 분석하는 과정을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이의 문제로 좁히지는 않겠다는 게 정부 입장입니다. 문제를 풀어갈 수단은 IAEA, 국제원자력기구입니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방류 전, 방류 중, 후 전 단계에 걸쳐 철저하게 검증하겠다, 필요한 지원 제공하겠다, 이게 현재 IAEA입장"이라면서 "2년간 IAEA 중심으로 사전 방류 전까지 계획에 대한 검증 노력에 저희도 적극 동참하는 게 맞을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일본 당국도 IAEA에 기술 지원을 요청한 가운데, 한국은 관련 전문가를 파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 전문가의 조사단 참여와 관련해 "IAEA가 우리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접수국인 일본이 조사단 구성과 관련해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은 남아 있습니다.
■"사법절차 카드도 옵션 중 하나"
정부는 방사능 오염수 문제는 한일 두 나라 사이 갈등 구조 속에서 가두지 않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습니다. 갈등 관계에 있기 때문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해양 생태계와 국민 안전 문제이고, 국제 이슈이자 원자력 안전 이슈, 해양 안전 이슈라면서 국제 공조를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외교부 최영삼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15일)에서 "방류에 따른 직접적 피해 우려가 있는 태평양 연안국을 대상으로 한 양자적 외교 노력을 시작했고, 앞으로도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 검토 방침도 거듭 확인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사법절차 카드는 우리 외교적 목적을 수행해나가는 데 있어 병렬적 옵션 중 하나로 보시는 게 맞다"라고 말했습니다. 외교적 교섭과 과학적 연구를 우선시하고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를 뒤로 미루지 않겠다는 취지입니다. "타이밍은 우리 목적에 맞도록 정해질 것"이라면서 "압박 수단이 될 수 있다"라고도 했습니다.
일본에 지속적으로 정보 제공을 촉구해왔지만, 핵심 정보는 받지 못한 상황이 갑자기 바뀔 거라는 기대는 정부 내부에도 없는 상황입니다. 결국, 국제법정으로 간다면 한국이 입은 피해가 얼마나 명백하고 또 시급한가를 증명하기도 어려워지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구체적인 피해를 제시하고, 오염수 방출과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는데 하나하나 높은 문턱이 되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이 정보제공을 하고 관련국과 협의할 의무를 이행하라는 청구가 가능하다. 그러면 일본은 국제법상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게 문제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유엔 해양법 협약은 283조에 분쟁해결 원칙으로 당사국간 의견교환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호소할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 IAEA도 미국도 일단 "인정"
외교든 제소든, 문제는 과학적 근거를 갖춘 설득으로 국제적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느냐입니다. 과학만으로 외교를 할 수는 없겠지만 근거도 없이 떼를 쓰는 인상을 줘서는 곤란하니까요. 결국, 중요한 것은 일본의 오염수 방류가 실제로 해양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느냐, 특히 한국 등 주변국 국민들의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겠죠.
이와 관련해 아무래도 국제원자력기구, IAEA와 미국의 반응이 주목됩니다. IAEA는 일본의 해양방출 결정에 대해 "일본 결정은 국제적으로 관행에 부합한다"는 성명을 냈습니다. 앞서 이미 지난해 4월, 일본 요청에 따라 관련 보고서를 검토하고 일본 측 처분 방안은 과학적 기술적 근거에 기초한 타당한 방안이라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일본 동해안에 방출된 오염수는 한국보다 미국 쪽으로 먼저 갑니다. 거리는 한국이 가깝지만 해류 흐름 때문에 오염수는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 서쪽 해안에 먼저 도달하는 겁니다. 그런 미국이 '처리수' 라는 일본 측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국제 안전 표준에 따라 투명하게 결정했다"는 입장을 보인 점도 우리로서는 부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끝내 오염수 해양 방출을 저지하는 게 목표냐, 아니면 국민 안전에 이상이 없다면 용인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외교부 당국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 가정이 붙어야 하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 판단하기는 빠릅니다... 가정이 다 맞으면 그때는 봐야죠."
외교의 시간도, 국제법정에서 다투는 사법의 시간도, 결국 과학에 기반해야 합니다. 국가 간 감정과 막연한 공포에 짓눌리지 않으려면 더더욱 앞으로 2년은 가정들을 구체적인 자료에 기반해 검증해가는 '과학의 시간'이어야겠습니다.
범기영 기자 (bum71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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