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연예지망생 "주는대로 받아요"..기획사 '갑질'에도 말 못해

김문희 2021. 4. 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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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제공 계약시 계약금 등 내용 고지해야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10조 위반 사례 잇따라
국내 활동 외국인 모델·배우들 "계약서 본 적 없다"
문제제기 하면 다른 배우에 기회 돌아갈까 전전긍긍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외국인 연예 지망생을 상대로 일부 연예기획사들의 ‘갑질’이 도마 위에 올랐다.

언어장벽을 악용하는 사례는 물론 출연·광고 계약서의 내용조차 공유하지 않고 간신히 출연료만 주는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 연예지망생들은 “불법인줄 알면서도 기획사에 문제를 제기 했다가 오히려 출연 기회조차 얻지 못할 것 같아 입을 다물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문제 일으키면 기회 잃을까” 전전긍긍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러시아 국적 모델 A씨는 지난해 한국에 입국해 한 연예기획사와 계약을 맺었다. A씨는 이후 유명 가전업체의 광고 영상을 촬영했지만 기획사와 광고주 간 작성한 광고 계약서는 볼 수 없었다.

기획사는 이후에도 A씨에게 광고 계약서를 보여주지 않았다.

A씨의 법률대리인 이지은 변호사(법률사무소 리버티)는 “광고 계약 당시 계약 금액이 얼마인지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모델이 배분 받는 금액이 정당한지 확인할 길이 없다”며 “명백한 위법”이라고 말했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제10조 ‘사전 설명의 의무’에 따르면 대중문화예술기획업자는 소속 대중문화예술인을 대리해 대중문화예술용역 제공 계약을 체결 시 해당 대중문화예술인에게 계약의 내용을 미리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다수 외국인 연예지망생들은 이제껏 기획사와 체결한 계약서 이외 광고주나 촬영업체와 맺은 계약서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 외국인 모델로 활동 중인 B씨는 “지난 5~6년간 기획사와 광고주가 맺은 계약서를 본 적이 없다”며 “사전에 기획사와 체결한 수익분배율에 따라 주는 액수만 알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외국인 모델 C씨는 “한국에서는 기획사가 이 같은 계약서를 모델이나 배우에게 고지하지 않는 게 관행처럼 이어져 왔고, 당초 계약금의 80%를 기획사가 가져간다는 소문마저 돌았다”며 “캐나다·미국에서 모델 일을 하는 지인들은 광고계약서 등은 당연히 사전에 확인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한국은 계약서를 보여 달라고 묻는 것 자체가 안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어 터부시 돼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획사와 맺은 계약서도 한글로 된 내용만 전달 받았을 뿐 영문으로 공증된 내용은 받지 못했다”며 “이 같은 관행이 불법이라는 걸 알지만, 기획사에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해당 지망생에 출연 기회가 더 오고 재계약도 이뤄지기 때문에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고 덧붙였다.

자치구청도 기획사 위법 행위 제재 한계
연예기획사를 관리하는 기관은 해당 자치단체다.

서울의 경우 자치구별 문화체육과 등 담당 부서가 이들 기획사를 관리해야 하지만, 계약상 법적 공방이 예상될 경우 경찰 조사를 받도록 권유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청 관계자는 “계약상의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구청이 자체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워 경찰 수사를 받도록 한다”며 “이후 수사결과에 따라 과태료 부과 대상 또는 행정처분 대상일 경우 이에 맞는 처분을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법 조항에도 ‘사전 설명을 해야 한다’고 단순 명시만 돼 있어, 은행처럼 사전고지를 증빙할 서류를 받는다던가 하면 행정적 절차상 확인이 가능하지만 이 같은 내용의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이 없어 구청이 제재를 하기에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켈리 프랜시스 ‘한국 주재 외국 장기 체류 엔터테이너’(Expat Entertainer ROK) 공동 대표는 “외국인 지망생들이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계약서를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를 일으키는 행위로 비춰져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불법 행위임에도 너무나 일상적으로 벌어졌고, 이들 지망생은 문제를 제기하지도 못할 뿐더러 당연한 노동의 댓가를 받지도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gloriakim@fnnews.com 김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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