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사형도 모자라 '가압류'까지.."형사보상금 다 줄 테니 아버지 살려내요"
6·25전쟁 당시 24살의 나이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육군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대전 골령골에서 총살된 사형수가 60년 만에 이뤄진 재심 끝에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그런데 육군과 검찰이 무죄 선고에 따라 유족인 딸에게 지급된 형사보상금을 놓고 육군과 검찰이 ‘부당이득’이라고 주장하며 뒤늦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환수할 돈을 보전한다는 명목으로 유족이 사는 집까지 가압류했습니다.
고인의 딸 74살 전미경 씨는 나라에서 받은 돈을 모두 내어줄 테니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당한 아버지를 되살려 놓으라고 말합니다.
■뒤늦게 밝혀진 누명
“죄인 전재흥은 1950년 7월 10일 좌익세력인 민청원으로서 괴뢰에 가담해 우익인사 나ㅇㅇ을 살해하고, 기타 수인의 애국지사를 수사 괴뢰에게 색출함으로서 이적행위를 감행했다. 이에 국방경비법 제32조, 이적행위에 대한 범죄사실이 인정돼 사형을 선고한다.”
-1951년 2월 21일 육군본부 중앙고등군법회의
1951년 24살의 청년 전재흥 씨는 군법회의 판결을 받은 지 단 12일 만에 대전시 낭월동 13번지 산내 골령골에서 총살당했습니다.
전 씨가 숨진 뒤 반세기가 지난 2008년 대통령직속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좌익에 의한 서천등기소 집단희생사건’ 조사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전 씨가 살해했다는 우익인사 ‘나ㅇㅇ’ 씨가 갑자기 등장합니다. 정부 보고서에 나ㅇㅇ 씨는 1950년 9월 28일 좌익세력에 의해 서천등기소 창고에 감금된 뒤 방화로 인해 살해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군법회의 판결문에는 분명 전재흥 씨가 나ㅇㅇ 씨를 1950년 7월 10일 살해했다고 나왔는데 정작 나 씨는 두 달 후인 1950년 9월 28일 사망한 겁니다.
■60년 만의 재심청구
故 전재흥 씨의 유일한 혈육인 딸 전미경 씨는 평생을 ‘좌익사범의 딸'이라고 손가락질당하고 연좌제에 억눌려 살았습니다. “부여 빨갱이 자식.” 마을 사람들 모두 전미경 씨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억울한 누명과 죽음을 밝히고 싶었습니다. 아버지가 숨진 지 60년 만인 2011년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의 재판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재심 재판에서 故 전재흥 씨는 충남 서천군 시초지서 경찰에 의해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한 끝에 범죄사실을 자백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우익인사 살해혐의도 육군본부가 자백만으로 유죄를 인정한 잘못이 확인됐습니다.
결국, 법원은 2013년 故 전재흥 씨에게 씌워진 살인죄와 이적행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고, 이듬해인 2014년 유족인 딸 전미경 씨에게 국가가 형사보상금 3,797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고인이 입은 신체 손상과 정신적 고통을 비롯해 유족이 입은 재산상의 손실과 정신적 고통, 수사기관과 검찰, 법원의 고의 또는 과실의 유무 등 형사보상법에 정한 모든 사정을 참작해 보상 액수를 정함이 상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형사보상금은 부당이득?
살인자, 좌익 민청원, 빨갱이라는 아버지의 억울한 누명을 벗긴 전미경 씨.
그런데 검찰과 육군이 2016년 돌연 딸 전미경 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합니다. 형사보상금 지급에 앞서 민사소송을 통한 국가배상금 1억 6백여만 원을 받은 만큼 중복으로 지급돼 ‘부당이득금’에 해당한다는 이유였습니다.
검찰과 육군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의 환수금액을 보전한다는 명목으로 전미경 씨가 사는 집과 토지 모두 가압류를 했습니다. 가압류 조치는 재판이 진행 중인 지금까지 5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누명을 풀고 받은 3,700여만 원의 형사보상금 때문에 소송에 이어 가압류까지 당한 전미경 씨.
전 씨는 “차라리 돈을 받지 않았다면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이런 짓을 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자체가 비참합니다. 6·25전쟁 때 아버지를 끌어다가 죽인 사람들보다 가압류를 건 사람들이 더 나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아버지가 누명으로 총살을 당해 유해도 찾지 못한 채 골령골에서 70년 넘도록 방치된 것도 뼈에 사무치게 억울한데 형사보상금 3,700만 원을 내놓으라고 반환소송이 들어왔어요. 육군본부고 검찰청이고 이 돈이 그렇게 탐나면 내 앞으로 찾아와서 가져가시라고 해요. 국가배상금 1억 원도 한 푼도 쓰지 않고 가지고 있으니 이 돈도 모두 다 줄 테니 제발 와서 찾아가시라”며 울분을 토해냈습니다.
■침묵으로 일관한 육군과 검찰
형사보상금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담당 소관청인 대전고등검찰청과 육군본부와 접촉했습니다. 또 가압류를 건 이유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유족의 주장에 대해서도 함께 전달했습니다.
이에 대해 육군본부 측 영관장교는 “소송의 소관청은 육군본부가 맞지만 주 소송수행자가 대전고등검찰청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부당이득금 소송과 가압류에 관련해서는 육군에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며 답변을 거절했습니다.
검찰 측 또한 마찬가지로 답변을 피했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대법원에 사건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답변을 하기 어렵다. 가압류의 경우 금전 채권을 구하는 소송에 있어 보전을 위해 행해진 것이며 특별히 이 사안에 있어서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가압류를 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습니다.
■대법원은 4년째 ‘법리 검토 중’
검찰과 육군이 2016년 제기한 소송,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형사보상금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의 1심 재판부는 검찰과 육군의 손을 들어주며 전미경 씨에게 형사보상금의 절반가량인 1,500만 원과 함께 소송촉진 특례법에 따른 연 15%의 지연손해금을 내라고 판결했습니다.
이어진 항소심 재판에서 법원은 “공평과 정의의 관념에 비추어 볼 때 피고가 확정된 형사보상 결정에 따라 이 사건 형사보상금을 받은 것이 법률상 원인을 결여한 것으로서 부당이득이 성립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적시하며 원고인 육군과 검찰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결국, 사건은 2017년 대법원까지 오게 됐습니다. 대법원 사건 진행내용을 살펴봤습니다. 4년째 ‘법리 쟁점에 관한 검토’만 연거푸 거듭되고 있습니다.
■다 돌려줄 테니 아버지 살려내 주세요.
3,700여만 원의 형사보상금을 둘러싼 소송은 장기전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재판 기록을 다시 살펴봤습니다.
‘망인의 사형 집행에 대한 보상금은 형사보상금 최대액수인 1일당 19만 4,400원과 법원이 정한 3,000만 원 이내의 금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41일의 구금기간에 따른 797만 400원. 그리고 법원이 인정한 최고 한도액인 3,000만 원.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은 이의 '목숨값'이라고 하기에는 나무나 적은 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고문을 당한 것도 모자라 사형까지 당한 故 전재흥 씨. 대전 골령골에서 총살을 당한 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족은 전 씨의 시신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저 골령골 야산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 할 뿐입니다.
故 전재흥 씨의 유족인 딸 전미경 씨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민사로 받은 1억 600만 원과 형사보상금 3,700만 원 모두를 나라에 드릴 테니까 부디 제발 24살의 우리 아버지를 돌려주세요. 아버지 사형당하고 할머니도 경찰에 얻어맞은 후유증에 귀가 먹은 뒤 돌아가셨어요. 11살부터 빨갱이 소리 들으며 소녀 가장으로 살았어요. 아버지 없이 사느라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 살려내 주세요.”
정재훈 기자 (jjh119@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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