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상승, 정부 정책 등 복합 영향" 이주열, '유동성 탓'한 청와대에 훈수..왜?

최효정 기자 2021. 4. 1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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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상승 '유동성' 탓하는 청와대에 이주열 한은 총재 이견 표출

이 총재 "집값엔 부동산 정책과 수급요인 등 복합 작용"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부동산 가격 상승 원인이 풍부한 유동성 때문"이라고 한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의 최근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한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거시경제 정책 양대축을 형성하는 한국은행 총재가 총재가 정부정책의 조율사 역할을 하는 청와대 정책실장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셈이다.

금융시장 안팎에서는 이호승 실장을 포함해 ‘유동성 때문에 집값이 올랐다’라는 여권의 주장이 코로나 경제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한은의 노력을 폄훼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강하다. 한은은 지난해 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사태 이후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연 0.5%로 인하하고, 국고채 단순 매입 등 경기급락을 막기 위한 유동성 공급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청와대와 여권에서 나오는 ‘유동성 탓에 집값이 올랐다’라는 주장이 경기회복을 위한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는 데 혼선을 준다는 게 한은측 시각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왼쪽부터),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 전(前) 정책실장이 지난해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이 총재는 이같은 주장에 수세적으로 방어하는 것을 넘어서서 "집값 상승에는 금리 외에도 수급 불안이나 정부의 조세 정책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전월세난을 부추긴 임대차 3법 등 정부 정책이 집값 급등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유동성 탓에 집값이 올랐다’는 청와대 정책실장의 주장에 정부 정책 영향을 거론하며 응수를 한 모양새다.

이주열 총재는 지난 15일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주택 가격에는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는데 금리 외에도 수급상황, 경기 상황, 정부의 부동산 관련 정책과 정책에 대한 신뢰도, 경제주체들의 기대심리 등 복합적으로 영향을 준다"면서 "집값 상승의 주요인을 (유동성 등) 어느 하나라고 딱 끄집어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이같은 이 총재의 발언은 "최근 이호승 실장이 최근 집값 급등 배경으로 풍부한 유동성을 탓했는데, 이에 대해 부동산 정책 실패 탓이라는 반론도 많다. 무엇을 근본 원인으로 보나"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나왔다. 이호승 정책실장의 최근 청와대 브리핑 내용에 대한 이 총재의 정면반박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정책실장은 지난 1일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국민들께서 많이 실망하고 어려운 점도 있다는 것을 잘 안다"면서도 "(집값 상승이)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유동성이 풀리고 자산가격과 실물가격이 괴리되면서 더 높아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완화적 통화정책과 저금리에 따라 시장에 풀린 유동성이 집값을 끌어올린 근본 원인이라는 게 이 실장의 주장이었다.

그러면서 이 실장은 ‘김 전 정책실장의 경질 사태와 맞물려 임대차 3법 부작용에 대한 지적이 많다’는 질문에 "제도의 긍정적인 효과나 방향성을 먼저 주목해야 한다"면서 "세입자 주거 안정에 기여한 측면도 있다. 의미 있는 제도개혁"이라고 말했다. 임대차 3법이 주거 불안을 가중하는 등 정부의 부동산 실책이 집값 폭등의 원인이라는 점을 부인하는 태도였다.

이와 같은 청와대의 ‘책임돌리기’에 이 총재는 "집값 상승 원인을 하나만 집어내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금리인하가 주택 가격을 끌어올리는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나 우리 주택 가격의 오름세 지속은 수급 우려, 정부의 조세 정책 등 다양한 부동산 정책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어느 것을 주요인이라고 끄집어서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않다"고 반박했다. 집값 상승에 정부 부동산 정책의 ‘실기’와 이에따른 수급 불안이 작용했음을 우회적으로 짚은 것이다.

지난해 두 자릿수가 넘는 집값 상승률은 올해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지난 15일 한국부동산원(구 한국감정원)이 공개한 2021년 4월 2주차 전국 주간 아파트가격 동향 자료를 살펴보면 올해 전국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 누계치(지난 12일 기준)는 3.85%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1.72%)보다 123.83% 확대된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서울 아파트 평당 실거래가격은 72.8% 증가했다. 집값 안정화를 위해 25차례에 걸친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세금폭탄으로 거래를 막고 대출을 막은 정책이 오히려 수급 불안을 불러와 집값 상승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정책 실패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한국은행에서 표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은은 지난달 11일 발간한 ‘2021년 3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최근 주택가격은 공급부족에 대한 우려, 전세가격 상승 등의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보고서는 또 "수도권을 중심으로 준공 후 미분양이 감소하는 등 신규 주택에 대한 수요가 견조한 가운데, 신규 아파트 공급 축소 및 주택가격 추가 상승기대에 따른 매물 감소등으로 향후 공급부족에 대한 염려가 증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통화신용정책보고서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결정 등 통화정책 운용 방향성을 제시하는 법정 보고서다. 통화정책 전문가들은 이 보고서에서 한은이 집값 상승에 정책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시각을 나타낸 것은 ‘집값 상승을 완화하기 위해 기준 금리를 인상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힌 것이라고 보고 있다.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기준금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아니라는 점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시각이다.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한은이 ‘유동성 증가로 집값이 올랐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면 과도한 집값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기준금리 인상 밖에 없다"면서 "코로나 확산이 아직 억제되지 않아 경기회복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으로 경기회복세를 완전히 꺾는 선택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주열 총재는 전날 금통위 후 기자회견에서 "올해 한국 경제가 3% 중반 성장이 가능하다"는 시각을 드러냈지만,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아직은 코로나19 전개 상황, 백신 접종 등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이 상당히 높은 상황으로 최근 경기가 회복되고는 있지만, 회복세가 안착됐다고 확신하기는 어렵다"면서 "통화정책 완화 기조를 이어갈 필요가 있고, 정책 기조의 전환을 고려하기에는 이르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유동성 탓’으로 돌린 이호승 실장의 발언이 경솔했다고 지적한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불확실성으로 저금리 기조가 유지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마치 집값 상승의 책임을 한은에 떠넘기는 모양새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한 경제연구원 고위 관계자는 "사무관 때부터 거시경제정책 라인에서 경력을 쌓은 이호승 실장은 지금 상황에서 한은이 금리인상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면서 "4·7 재보선을 앞두고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비판 여론이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점을 의식하고 ‘늘어난 유동성 때문에 집값이 올랐다’는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마치 부동산 가격 상승 책임을 한은에 돌린 것 같은 뉘앙스가 이주열 총재를 화나게 만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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