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 개발 더딘 한국, 과학연구하는 의사 키워야"
코로나19 백신 개발 돈만으로 안돼
국가·사회 위해 연구하며 의사허가 있는 연구자 필요
인공지능 연구 이미 늦어.."감성AI, 치매, 미래학 준비"
[이데일리 강민구 기자] “러시아나 중국도 백신을 개발했습니다. 우리는 왜 못하냐고요? 그만큼 투자를 안 했고, 인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연구비만 백날 투입해도 안 됩니다. 근본적으로 과학을 연구하는 의사를 키워내야 합니다.”
지난 3월 공식 취임한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은 지난 11일 KAIST 도곡캠퍼스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국산 백신 개발이 더딘 이유는 인재 부족에 있다고 했다. 연구하는 의사를 길러 코로나19 바이러스 변이와 후속 감염병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열풍이 불고 있는 인공지능(AI)에 대해서도 꼭 해야 하는 연구이지만, 이미 선진국을 따라잡긴 어려운 상태라고 진단했다. 그래서 인공지능 이후 필요한 분야를 찾고 연구 인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하는 의사 없어…백신 모방은 가능하나 ‘창조’ 불가능
코로나19가 재확산되면서 국민적 불안감이 크다. KAIST는 ‘코로나대응 과학기술 뉴딜사업단’을 가동해 이동형 음압병동을 개발해 한국원자력의학원, 건양대병원에서 실증을 거쳐 인허가 단계를 마무리했다. 또 구급차 운전사나 간호사가 코로나19 환자 수송 과정에서 감염되지 않도록 음압 시설을 갖춘 구급차 개발을 완료해 인허가를 추진 중이다. 이 총장은 “감염병에서 가장 두려운 부분은 내가 감염되어도 병원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인데 이동식 음압병동으로 이러한 부분을 해소할 수 있게 됐고, 음압 구급차를 개발해 의료진 등의 감염을 피할 수 있게 됐다”며 “기술로 방역활동에 도움을 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해결되려면 백신이나 치료제가 필요하다. 현재 SK바이오사이언스를 비롯한 국내 5개 기업이 국산 백신 개발에서 임상 1~2상 단계를 수행 중이나 감염병 전문가들은 빨라야 내년 초 개발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백신 개발 소식이 전해지는 중국, 베트남과 비교해도 뒤처진 형국이다.
이 총장은 국산 백신 개발이 더딘 근본적인 이유를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에서 찾았다. 그는 “결국 사람의 문제인데 우리는 일을 할 사람이 없다”며 “현 교육 체계에서는 연구하는 의사를 길러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의사이면서 과학자인 사람를 키우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의대 시스템에서는 졸업생 대부분이 병원에서 근무하며 임상에 전념한다. 극소수의 의사만이 연구자의 길을 선택한다. KAIST에도 의과학대학원이 있지만 의사들은 연구를 선택하다가 80% 이상은 다시 병원으로 복귀한다.
하지만 이 총장은 코로나19 변이바이러스와 후속 감염병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KAIST나 포항공대와 같은 연구중심대학에서 초기부터 연구하는 의사를 양성하는 것이 국가적인 감염병 위기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라고 했다.
지금도 기초과학연구원(IBS)처럼 대학에 있으면서 연구하는 의사들도 있지만 부족하다는 것이다. 다만, 의료계에서는 연구중심대학에서 의사를 양성하는데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 총장은 상호경쟁할 부분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연구중심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이 특정 병원에 가기 위한 수단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총장은 “국산백신 개발이 완료되지 못했고, 후속 감염병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연구비만 지원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당장 선진국 백신을 모방할 수는 있겠지만 새로운 백신을 개발하거나 미래 감염병 대응에서 선도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연구하는 의사를 키워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 연구개발 이미 늦어…“인공지능 이후 연구에 주력”
이 총장은 최근 모든 산업에서 적용이 추진되는 인공지능(AI)에 대한 견해도 내비쳤다.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개발과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그는 한국이 선진국을 추월하거나 새로운 연구를 이끌기는 늦었다고 진단했다. 10~20년 전에 이미 개발을 시작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부터 연구개발비를 투자해 세계시장에서 주목받을 연구를 하기는 늦었으니 ‘포스트 AI’ 연구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0여 년 전 시작된 AI 연구가 지금에야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인공지능에 대한 동향도 앞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이후 시대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필요한 연구의 예시로는 감성을 갖고 생각하는 인공지능, 뇌와 연결되는 인공지능, 치매를 조기에 진단하는 기술 등을 꼽았다.
이러한 연구는 도전적이고, 실패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연구이기 때문에 정부지원금을 받기도 어렵다. 따라서 창업과 기부금 유치를 통해 ‘재정자립화’를 추구해 하고 싶은 연구, 도전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우수 교원 유치와 도전적 연구를 하는 데 활용할 계획이다.
현재 KAIST는 총 1조원 규모의 예산 중 약 2000억원 규모를 정부에서 지원받고, 나머지 예산은 외부수탁과제, 기금 모금 등을 통해 충당한다. 그는 앞으로 2000억원 중에서 창업활성화를 통해 약 1000억원 이상을 자립화하고, 이를 우수 교원 유치와 도전적 연구에 쓸 예정이다.
이 총장은 “외국 대학에서 KAIST 교수 연봉의 2~3배를 부르거나 포항공대에서 20억원 규모의 연구장비를 연구자에게 투자하면서 우수 교원을 놓친 사례가 있다”면서 “앞으로 필요한 미래산업을 선도할 ‘포스트AI’ 연구를 확대하고, 우수 교원 유치와 연구실 투자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창업활성화와 기부금 유치에 적극나서 재정자립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기 동안 학교 구성원들에게 ‘일류 의식’을 심어줘서 MIT와 세계 선두 연구를 수행하는 기업으로 키워나가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이 총장은 “포스트AI, 감염병 등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연구에 미리 투자해 도전적이고, 새로운 연구를 수행할 계획”이라며 “삼성전자, 방탄소년단이 모두가 어렵다고 비웃던 것을 딛고 ‘일류’가 된 것처럼 ‘의식혁명’을 통해 구성원들이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다짐했다.
이광형 총장은
△1954년생 △서울대 산업공학과 학사 △KAIST 산업공학과 석사 △프랑스 응용과학원(INSA) 리옹 전산학 석·박사 △KAIST 전산학부·바이오뇌공학과·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미국 스탠퍼드 연구소 초빙교수 △미래산업 초빙 석좌교수 △KAIST 국제협력처장·교무처장·교학부총장·과학영재교육연구원장 △국회미래연구원 이사 △국방부 국방개혁자문위원 △대통령소속 국가교육회의 위원
강민구 (science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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