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와 쓰기, 허무와의 한판 대결

한겨레 2021. 4. 16.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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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문학이 필요한 시간 ][책&생각] 정여울의 문학이 필요한 시간
(30) '사랑의 역사', 너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다고 속삭이는 이야기의 힘
피터르 얀선스 엘링아의 <책 읽는 여인>(1650).

독자와 작가가 만나 이룰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기적
정확한 수신자에게 전달될 이야기 위해 작가는 분투한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오는 장면이 있다. 피터르 얀선스 엘링아의 <책 읽는 여인>(1650)이 그렇다. 무려 370년 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모든 존재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신발을 뒤로하고 책 읽기에 집중하고 있는 여성의 ‘홀로 있음’이 이 그림을 더욱 빛낸다. 이 사람은 비록 지금 홀로 있지만 마치 온 세상과 함께하고 있는 듯한 기쁨을 주는 저 경이로운 사물, 그것이 바로 책이기에. 창문으로 밀려드는 햇살은 바깥 세계의 모든 경이로움을 고스란히 전달해주는 듯하다. 전깃불이 없던 시절, 저 창문으로 흘러드는 햇살은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로 다가왔을 것이다.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여인의 자세는 굳이 앞모습을 확인하지 않아도 그 표정을 능히 짐작할 것만 같다.

그림 속 여인은 무거운 신발이 상징하는 사회적 책임을 잊고, 책이라는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저 찬란한 햇빛이 가득한 바깥 세계로 날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 속 자그마한 책은 이 여인에게 갑갑한 일상의 의무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이 그림을 보고 이토록 열광하는 나는 이 작은 작품 하나에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 과도한 감정이입이야말로 내가 읽은 모든 이야기가 가르쳐준, 아름다운 생존의 기술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빠져들수록, 나는 영혼의 빈곤을 벗어났다. 이야기에 깊이 몰입할수록, 나는 일상의 수많은 고통을 잊었다. 독서, 그것은 현실도피가 아니라 마침내 더 커다란 현실과의 만남이었다. 좋은 책은 다시 현실의 바다로 헤엄쳐 나갈 용기를 주는 눈부신 구명보트이기도 했다.

글쓰기는 투쟁이면서 기다림이다

그렇다면 이토록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의 삶은 어떨까. 작가들의 삶은 허무와의 끝나지 않는 전투다. 작가의 공포는 이것이다. 혹시 이 모든 노력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면 어쩌나. 피땀 흘려 쓴 내 작품을 아무도 읽지 않는다면! 누군가 읽는다더라도 아무런 감동도 전해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까. 내 작품이 그저 나 자신을 위로하는 데서 끝나버린다면. 작가들은 매번 이런 공포와 싸우며 글을 쓴다. 글쓰기는 적극적인 투쟁임과 동시에 안타까운 기다림이다. 글쓰기는 문장 하나하나가 피워내는 의미가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반드시 전달되기를 기다리는 몸짓이다. 누군가에게 언젠가 반드시 전해질 사랑의 온기를 전하기 위해. 내가 쓰는 글이 아니라면 결코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못할 한 사람의 이야기를 써내는 것. 글을 쓰지 않는다면 사라져버릴 그 누군가의 삶을 햇빛 찬란한 세상 속으로 내보내는 것. 나의 글이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평생 싸우는 것. 내 모든 노력을 하찮게 볼지도 모르는 세상과의 한판 대결. 그것이 글쓰기다.

니콜 크라우스의 소설 <사랑의 역사>는 ‘나의 글이 아무에게도 전달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과 평생 싸운 한 사람의 이야기다. 글쓰기에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던 레오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피해 고향에서 도망치면서 평생의 사랑을 약속한 앨마와 멀어진다. 가족들이 모두 학살당하고 홀로 살아남은 레오는 ‘너는 꼭 글을 써야만 한다’고 용기를 준 첫사랑 앨마와의 약속을 유일한 생의 버팀목으로 삼는다. 언젠가는 앨마가 자신의 소설을 읽어줄 그날만을 기다리며, 그는 미국에서 가난한 열쇠공의 삶을 계속한다. 하지만 앨마는 기다림의 고통을 버텨내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결혼했으며, 앨마와 레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아이작은 자신의 아버지가 레오라는 사실을 모르는 채 훌륭한 작가로 성장한다. 레오는 자신의 첫사랑 앨마에 대한 이야기 <사랑의 역사>를 정성껏 집필하여 절친한 벗 즈비에게 맡기고, 그가 자신의 작품을 온전히 지켜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즈비 또한 앨마를 미친 듯이 사랑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자신보다 훌륭한 글쓰기 재능을 지닌 친구 레오의 원고, 그리고 자신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앨마에 대한 기약 없는 그리움뿐이었다. 질투에 사로잡힌 즈비는 마침내 레오가 이디시어로 쓴 원본 원고를 도용하여 마치 자신이 쓴 원고처럼 위장한 뒤, 스페인어로 책을 출간한다. 즈비는 절친한 벗의 원고를 도용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죽고 만다.

작가에게 찬란한 빛을 선사하는 독자

그렇다면 레오가 젊음을 바쳐 온몸으로 써낸 이 원고는 레오를 질투하던 친구 즈비의 원고로 유통되는 걸까. 레오는 영원히 자신의 글을 빼앗긴 걸까. 자신의 작품이 스페인어로 출간된 사실 자체를 모르는 레오는 즈비와 연락이 끊기자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의 책이 영원히 사라진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브루클린에 사는 열네살 소녀 앨마의 어머니, 샬롯이 이 <사랑의 역사>를 영어로 번역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유대인의 언어 이디시어로, 그것도 종이 위에 펜으로 써 내려간 육필원고가 사라진 뒤, 그 책이 온갖 우여곡절을 거쳐 영어로 번역되어 원저자 레오에게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즈비가 스페인어로 번역하여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한 <사랑의 역사>는 꿈 많은 청년 다비드의 손에 들어가고, 다비드는 그 책에 커다란 감동을 받은 나머지 딸의 이름을 앨마로 지은 것이다. 이후 다비드가 암투병 중 사망한 뒤 실의에 빠진 그의 아내 샬롯에게 뜻밖의 편지가 날아든다. 바로 스페인어로 된 <사랑의 역사>를 영어로 번역해달라는 부탁이 담긴 한 작가의 편지였다. 남편의 죽음 이후 삶의 의미를 상실했던 샬롯은 남편이 가장 사랑한 소설을 번역하며 비로소 잃어버린 생의 활기를 되찾게 된다. 마침내 소설의 번역을 의뢰한 사람이 밝혀지면서, 이 작품은 결국 원작자 레오의 손에 다시 돌아오게 된다. 첫사랑 앨마는 죽었지만, 앨마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어린 소녀 앨마가 레오의 상처로 가득한 삶에 따사로운 온기를 전해준다. 작가의 삶에 가장 찬란한 빛을 전달해주는 사람은 바로 독자인 것이다. 다비드와 앨마, 샬롯, 그리고 서점 주인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아름다운 독자들은 <사랑의 역사>라는 희귀한 책의 소중한 독자가 됨으로써 마침내 작가 레오의 공허한 삶을 구원한다.

영화로도 제작된 <사랑의 역사> 포스터.

인류의 멈추지 않는 생존 기술은…

레오는 마침내 ‘또 다른 앨마’를 만나고 예기치 못한 감동에 가슴이 저며온다. 오직 가슴 아픈 첫사랑의 기억을 글로 표현했을 뿐인데. 차마 ‘네가 나의 아이야’라고 말하지 못한 자신의 한 맺힌 침묵까지도 아들 아이작에게 전달되었다. 번역을 의뢰한 작가는 바로 레오의 아들 아이작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말하지 못한 사랑까지도 끝내 전달되다니. 기나긴 침묵의 숨결조차 올올이 빠짐없이 전달되다니. 한번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못다 한 사랑조차 전달되다니. 그토록 침묵하려 했건만 모든 것이 정확하게 전달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내 사랑을 제대로 묘사한 적이 없건만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자라난 아들 아이작이 끝내 아버지의 사랑을 이해하며 죽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렇게 마침내 정확한 수신자에게 제대로 전달될 이야기를 위해 작가들은 오늘도 변함없이 분투한다. 간절한 믿음으로. 우리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음을 믿으며. 이 소설 속에는 ‘책’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인연들이 총출동한다. 출판될 거라는 희망조차 없이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쓴 작가 레오. 스페인어로 출간된 이 책을 소중히 읽고, 이 책의 진가를 발견할 사람이 반드시 있으리라 믿으며 먼지가 쌓여 폐지로 버려질 뻔한 책을 소중히 진열한 서점 주인. 전혀 유명하지 않은 그 작품 <사랑의 역사>를 남미 배낭여행 중 한 서점에서 발견해 아내에게 선물한 다비드. 이 책을 영어로 번역하여 마침내 원래의 저자가 읽을 수 있도록 만든 훌륭한 번역가 샬롯. 그 책의 가장 나이 어린 독자인 앨마의 편지로 인해 마침내 원저자 레오의 손에 이 작품이 돌아올 수 있게 된다.

소설 속 인물이자 실제 인물인 앨마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딸의 이름을 앨마라고 지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소원은 마침내 이루어진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스페인어로 읽었던 <사랑의 역사>가 이제 영어로 번역되어 사랑하는 딸 앨마에게, 그리고 이 소설의 진짜 작가인 레오에게 마침내 전달된 것이다. 독자와 작가가 만나 이룰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기적, 그것이 ‘읽기와 쓰기’라는 이토록 단순한 몸짓 속에 깃들어 있다. 내 간절함이 타인에게 전달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지 말자. 당신의 간절함은 끝내 전달될 것이다. 우리의 사랑은 우리의 두려움보다 강하기에. 더욱 아름답고, 더욱 열정적으로, 당신의 메시지를 가다듬는 언어의 손길이 있다면. 여전히 읽고 씀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소통하는 우리 인간의 목마름이 있는 한, 이야기의 역사는, 사랑의 역사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끝없이 읽기와 포기하지 않고 쓰기, 이것은 인류의 멈추지 않는 생존의 기술이기에.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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