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12번 포기하고 싶지만..아들 너무 보고 싶어"
"황교안에 서면질의만 한 특수단, 수사의지 없어"..檢 비판
"대형참사 이후 책임자 추궁에 그쳐..시스템 관련대책 필요"
시행령 문제로 4달째 답보 사참위도 지적.."결단 내려야"
4·16연대 등 15일 특수단 '무혐의' 처분건 재항고·재정신청
올해로 7주기를 맞은 세월호 참사 당일은 공교롭게도 '금요일'이다. 2014년 당시 3박 4일의 일정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단원고 학생들의 귀가가 예정됐던 날이 바로 4월 18일 금요일이었다.
이듬해 4·16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이 유가족 13명의 이야기를 담아 펴낸 '금요일엔 돌아오렴'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진상규명이 다 끝나고 나면, 희생된 304명의 모든 유가족과 국민, 그리고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하나 올릴 거예요. 이 사건에 대해서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떻게 됐는지…우리 수현이에게도 보여줘야죠. 숙제 검사는 꼭 받아야 하니까."(단원고 2학년 4반 수현군 아버지 박종대씨)
국회 앞 농성도 불사한 유가족들의 의지로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지난해 말 '1년 반'의 시한을 더 부여받았지만, 특별법 개정에 따른 시행령 제정이 늦어지면서 조사는 수개월째 답보 상태다. 지난 8일 사참위에서 만난 장훈 전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의 얼굴에선 초조감과 피로감이 동시에 읽혔다. 그는 2년간 맡아온 협의회 위원장을 내려놓고, 사참위의 남은 기한 동안 자문위원 활동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현재 위원장은 故수진양의 아버지인 김종기씨가 맡고 있다).
▷ 위원장직에서 물러나신 건 체력적인 부침이 가장 컸던 건가
- 매해 2월 중순 즈음에 총회를 한다. 그때(지난 2월) '한 번만 하겠다'고 연임을 포기했다. 체력적인 이유도 있고, 제가 원래 (협의회) 진상규명분과장 출신인데 위원장 일을 하다 보니 진상규명 쪽에 신경을 좀 못 쓰게 되더라. 일이 많다 보니 그 부분에서 '놓치고 가는 게 많지 않나' 하는 생각에 진상규명 파트의 역할을 하는 게 어떻겠나 싶었다. 위원장으로 있을 동안도 자주 오긴 했지만 사참위의 진상규명 내용을 (일일이) 챙겨보지 못했다.
그런데 조사내용에 우려스러운 점들이 보여서…. 조사에 '관여한다'고 하긴 그렇지만, 참여하고 계속 모니터링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다른 참사 유가족들과 다른 점 중 하나가 조사기구나 수사기관 옆에서 계속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니터링을 한다는 점인데, 그 역할을 잘 해보고 싶었다.
▷ 코로나19 같은 재난사태를 포함해 지난해는 제대로 조사가 안됐다고 보는 건가
- (끄덕이며) 작년이 특히 (조사가) 안됐다.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기도 했다. 검찰 세월호 특별수사단(특수단)도 있었고, 사참위도 있다 보니…서로 도와 수사범위를 조정하면 좋은데 공조가 안 되다 보니 '수사 따로, 조사 따로' 등 안타까운 1년을 보냈다.
"가족들 입장에선, 우리가 요청해서 만든 검찰 특수단인데 그렇게 말도 안 되게 해버릴 줄은 몰랐어요. 특수단이 '혐의없음'으로 기소를 안한 내용에 대해 저희가 항고했는데 다 기각당했어요."
앞서 특수단은 지난 1월 19일 유가족과 사참위가 수사를 의뢰한 17개 사안 중 13개를 '무혐의' 처분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지시로 출범할 당시 "백서를 쓰는 심정으로 모든 의혹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힌 각오를 떠올리면, 초라한 성적표다.
1년 2개월의 수사를 통해 새로 사법처리 대상이 된 이들은 구조책임을 방기한 해경 지휘부와 특조위 조사를 훼방한 정부 관계자 등 20명이다. 특수단은 검찰 수사에 압력을 넣은 혐의를 받은 황교안 전 국무총리 등에 대해 '직권남용이라 보기 어렵다'고 결론지었고, 국정원 등의 유가족 사찰 의혹을 두고도 '동향파악 사실은 인정되나 불법적 수단은 사용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설상가상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월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김석균 전 해경청장 등 10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장 전 위원장은 "검찰이 기소 자체를 잘못했다. 해경 구조세력 관련 부분은 지난 2014년 참사 당시나 지금 수사가 별 차이가 없다"며 "(특수단) 임관혁 단장이 마지막 발표 때 한 의미심장한 말들이 있다. '2014년 당시였으면 어땠을까. 너무 시간이 흘러버린 것 같다'고 했는데 그럼 2014년에는 왜 기소를 안 했나"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청와대 쪽에서 외압을 행사해 기소를 안한 것 아니냐고 했는데 그 내용까지도 혐의없음으로 나와버린 것"이라며 "검찰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모순"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 특수단 측에서 유가족들에게 별도로 처분 이유를 설명하는 자리는 마련하지 않았나
- 설명한다고 했는데 저희가 거부했다. 들어봐야 뻔한 내용이니까…. 지난해 1월 만난 이후 (특수단 측을) 안 만났다. 이 정도 결과밖에 나올 게 없다는 이야기를 그때도 했었다. 특히 '(임)경빈이' (헬기이송 지연) 건 관련해서는 사참위에서 수사의뢰를 그렇게 한 것도 있겠지만 한 사람에 대한 내용으로만 풀더라. 저희는 참사 당시 모든 수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수사를 요청한 건데 수사 폭을 이렇게 좁혀 놨다. 그러니 김석균 전 청장이나 김문홍 전 목포해경서장이나 '우린 몰랐다'는 한 마디로 혐의없음이 되는 거다. 참사 당일 전체로 넓혀놓으면 모를 수가 없는 거잖나.
검찰이 수사에 의지가 없다는 걸 황 전 국무총리 '수사 외압' 관련부분을 보면서 느꼈다. 국민고소인단이란 사상 초유의 방법으로 수사를 의뢰했고, 현직 고위공무원도 아닌데 '서면질의'만 했다는 거다. 특수단이 기소한 건도 검찰 인사시기와 공교롭게 맞물리는 게 너무 눈에 보였다. 우리가 검찰에 가서 외친 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했듯 수사해 달라'는 거 하나뿐이었다. 결국 정치권과 마찬가지로 검찰도 우리를 이용해먹는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도 들더라.
장 전 위원장은 대개 '인물 위주'로 원인을 추궁하는 데 그치는 참사 '이후'의 국가적 대응시스템도 지적했다. 그는 "어떤 참사의 책임을 묻는다 하면 사람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다. 특히 (세월호 같은) 대형참사는 (관계자를) 처벌하고 비난하는 게 가장 쉽다"며 "사후대책이 제대로 나올 수 없는 것"이라고 짚었다.
"페리호나 세월호처럼 해양재난이나 인명사고가 많은 재난참사가 근 20년마다 나온다는 '주기설'이 있어요. 어떤 큰 참사가 났다 하면 관계자들을 전부 처벌하고 대충 '이거 바꿔야지' 하는 것들을 바꾸는 거죠. 10년 동안은 (새로운 매뉴얼을) 좀 지키려 하다 이후는 매너리즘에 빠져 소홀해지고 (또다른 사고가) 빵 터지는 거예요. '하인리히의 법칙'처럼 간단한 사고 300건이 경미한 재해 29건, 대형 참사 1건으로 발전한다는 원리도 지금은 무시당하는 형편이죠.
세월호도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후 두 번의 기울어짐이 있었고, 배가 복원되지 않은 적도 있는 등 징후가 있었어요. (세월호 참사가) 그걸 무시했던 사람들만의 문제인가는 생각해봐야 해요. 참사 당시에도 '진상규명을 하자'는 이야기만 했지, 어디까지 해야 진상규명인지에 대한 유가족들 간의 합의, 국민들과의 공감대도 이뤄지지 못했던 것 같아요."
사참위 측에도 "필요할 때는 비난받아야 한다"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시행령 제정을 두고 환경부와 줄다리기 중인 사참위의 대응이 '너무 더디다'고도 했다. 장 전 위원장은 "(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이란) 특별법 자체가 유명무실해지지 않으려면 그 법의 취지에 맞춰서 해야 하지 않나"라며 "(피해)가족들에게 시행령 제정 문제를 알려준 게 지난달 말이다. 문제가 불거졌을 즈음부터 빨리 이슈화시켰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한정애 (환경부) 장관이나 문호승 사참위원장이나 누구든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정무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으로 넘어갔다"며 "(사참위가) 네 달 동안 올스톱된 건데, 시행령이 지금 통과된다 해도 필요인력을 뽑고 나면 7월이나 돼야 조사가 시작될 거다. 내년 6월이면 (활동이) 끝나는데 1년밖에 조사를 못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올해 취임한 문 위원장이 가족들과 지속적 소통을 위해 노력하는 점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또 "세월호가 처음 국내 도입됐을 때부터의 문제점이 어렴풋이 밝혀지고 있는데 이 부분들을 확정지어줘야 한다"며 "(사참위가) 너무 지엽적인 부분들을 디테일하게 보다 보니 거시적으로 보지 못하고 음모론에 빠진다는 우려도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안타깝고, 힘들고, 지치고…정말 하루에도 12번씩 포기하고 싶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사건이) 내 일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 일이라는 거다.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우리 아들이 너무 보고 싶다. 오늘도 아들 친구놈 생일이라서 (평택서호)추모공원에 갔다왔는데…'아이들한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하면 더 노력할 수 있을까' 하는데 잘 안 된다(웃음).
유가족들은 3월달부터 몸이 아프다. 몸이 먼저 반응을 하고 기억하고 있더라. 언제부턴가 집에 들어가면 자기 전에 꼭 다짐을 한다. 내가 꼭 준형이하고 둘이 (대화하듯) 혼잣말을 하는 거다. 중얼중얼 하는데 '오늘 아빠 잘했어?', '아빠가 오늘 열심히 한 거 같아?' 이런 식으로…. 밖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면 미친놈이라 할 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
살아있다면 그에게 '아빠, 술 좀 그만 먹어'라고 잔소리를 했을 준형군의 바로 손아래 동생(혜림)은 벌써 23살이 됐다. 7년 전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꼬맹이'도 어느덧 성년을 맞았다.
'한부모 가정'으로 준형군 외 세 자녀를 키워온 장 전 위원장은 약 3년 전 한국 다큐멘터리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부재의 기억'의 메인작가, 오현주씨와 가정을 꾸렸다. 그는 아내를 두고 "은인 같은 사람"이라며 "세월호 활동을 하다 만났는데, 유가족이 된다는 건 결이 다른 아픔이 생기는 것 같다. 제가 위원장을 할 동안 공격도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장 전 위원장은 "집사람과 자주 대화를 한다. 4주기 지나고 최대한 할 만큼 하고 '가려고' 했었는데 저를 잡아준 사람"이라고 밝혔다. "외롭단 감정도 사치라고 생각했어요. 유가족들은 몸이 아파도 아이들한테 미안하다 생각해서 병원에 잘 안 가요. 내 몸 치료받는 것조차 미안하니까…. 솔직히 말해서 지금 가장 우려되는 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부모님이 없어야 한단 거예요. 트라우마란 게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고, 계기만 나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지난 1989년 영국에서 일어난 '힐스버러 참사' 피해자 등과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 장 전 위원장은 "이 자리에 오래 있다 보니 다른 참사를 겪은 피해자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도 하나씩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아픈 사람들'을 위한 공익적인 일을 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4·16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세월호참사 대응TF 등은 7주기를 하루 앞둔 전날 재항고 및 재정신청을 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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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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