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AZ·얀센 백신 접종 중단, 아프리카 '백신 불신'만 더 높인다

허경주 2021. 4. 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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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아프리카 백신 불신 불 붙일 것" 분석
식민시대 비윤리적 의료행위 탓 불신 지적
前 정부수장들, 바이든에  특허권 중단 요구
라자루스 차퀘라 말라위 대통령이 지난달 11일 옛 수도 좀바에서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좀바=AP 연합뉴스

아스트라제네카(AZ)부터 얀센 백신까지. 혈전(혈액 응고) 부작용 우려에 서방 국가들이 속속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중단하면서 ‘백신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다. 선진국들의 불안도 만만치 않지만 파장은 검은 대륙에서 훨씬 크다. 두 백신 외엔 선택지가 없는 데다, 과거 아프리카인들을 의약품 실험 도구로 치부한 ‘야만의 기억’이 남아있는 탓이다. 백신 대란이 가시화한 만큼 특허라도 풀어 가난한 나라들의 ‘백신 접근권’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작용에 식민시대 아픈 기억까지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4일(현지시간) 미국과 유럽의 아스트라제네카ㆍ얀센 백신 접종 중지 움직임이 아프리카의 반(反)백신 분위기에 불을 붙일 것으로 내다봤다. 접종 중단 여파는 지구촌에 고루 미치지만, 아프리카가 받는 타격이 더 클 거란 뜻이다.

지난달부터 이어진 AZ 백신 혈전 우려로 이미 코로나19 백신을 향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불신은 팽배한 상태다. 남아프리카 말라위에서는 해당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의사에게 몸 속 백신 제거 방법을 묻고, 중앙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에선 코로나19 사망자가 속출하는 데도 국민들이 접종을 거부하면서 170만명분의 AZ 백신을 창고에서 썩히고 있다.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 거주하는 엔지니어 로몬드 로스 은웨일라는 NYT에 “미국이 얀센 백신 접종을 멈췄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코로나19 백신을 더욱 믿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말라위 의사 프레셔스 마이키 박사는 “의료진이 백신 효과를 홍보하며 감염병과 열심히 싸웠지만 (서구의 백신 접종 중단이) 우리를 원점으로 되돌려 놨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한 시민이 코백스를 통해 조달된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다. 라고스=AP 연합뉴스

아프리카인들의 유별한 백신 의심에는 식민시대의 아픈 기억도 한 몫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글로벌 제약사들이 한 때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에서 의약품 임상시험을 한다는 의혹은 끊임없이 있어왔다. 2010년엔 프랑스가 1960년대 알제리에서 민간인 대상 인체실험을 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도 일부 프랑스 의료전문가들이 “아프리카에서 코로나19 백신을 테스트해보자”고 제안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신문은 “최근 미국과 유럽의 백신 접종 중단 사태는 (서구의) 비도덕적 의료행위로 이들을 믿지 못하는 가난한 나라(아프리카)에 더욱 의구심을 불렀다”고 진단했다.

급기야 부자 나라들이 문제가 드러난 이른바 ‘2류 주사(second-rate shots)’를 아프리카에 버린다는 인식이 뿌리 내릴 경우 집단적인 반백신 운동으로 번져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종식을 기약조차 못할 것이란 우려마저 나온다. 사라 올리버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박사는 “얀센 백신 사용 중단은 전 세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저명인사들 “백신 특허 중단하라”

에마뉘엘 마크롱(왼쪽) 프랑스 대통령과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이 2017년 5월 파리 개선문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일 행사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AP 자료사진

때문에 아프리카 나라들이 백신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려면 접근권을 높이는 일이 급선무다. 화이자ㆍ모더나라는 대체품이 있는 미국ㆍ유럽과 달리 아프리카는 대안이 전혀 없다. 백신을 싼 값에 구입해 저개발국에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코백스 퍼실리티의 조달 대상이 대부분 AZㆍ얀센 백신이기 때문이다. 특히 올 초부터 AZ 백신 수급이 불안해지면서 아프리카에서 얀센 몸값은 더 올랐던 터다.

얀센은 가격이 저렴하고 상온 보관ㆍ유통이 가능하다는 점, 한 번만 맞아도 된다는 이점 덕분에 아프리카 내 집단면역 형성을 가늠할 열쇠로 주목 받았다. 아프리카연합(AU) 차원에서 4억회분 계약도 마친 상태여서 부작용 논란이 길어지면 빈국의 감염병 종식 희망도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하나의 해법은 제약사들이 코로나19 백신 특허를 포기하는 것이다. 특허 효력이 사라지면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 제약사가 지적재산권에 구애 받지 않고 복제약을 만들어 보급할 길이 열린다. 요즘 주가가 폭등한 화이자ㆍ모더나 백신도 자유롭게 제조해 백신 격차를 빠르게 좁힐 수 있다는 의미다.

저명 인사들도 팔을 걷어 붙였다. 고든 브라운 전 영국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 조지프 스티글리츠 노벨경제학 수상자 등 175명은 이날 조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팬데믹을 끝내기 위해 특허권 잠정 중단은 필수불가결한 조치”라며 백신 기술 공유를 촉구하는 내용의 공동서한을 보냈다. 백신 부족 현상이 계속되면 미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 회복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앞서 지난해 10월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코로나19 백신 특허권 효력 중지를 제안했다. WTO를 비롯 90여개 나라는 지지했지만, 백신 개발국인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EU), 스위스 등은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긴 어려운 형편이다. 제약사들의 반발이 큰 데다, 특허권이 존중되지 않을 경우 추후 변이 바이러스가 등장해도 업체들이 백신 개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큰 탓이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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