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의 외화 빼내기 수법.. 암호 화폐 동원에 M&A 뻥튀기까지

남민우 기자 2021. 4. 16.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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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5만달러까지만 허용하는데
어떻게 '세계 부동산 쇼핑'을 할까

중국인의 부동산 사랑은 각별하다. 펄 벅의 1931년 소설 ‘대지’의 주인공 왕룽은 수많은 역경 속에서 모든 걸 포기하면서도 땅만큼은 절대 팔지 않는다. 그래서 그럴까. 중국인들은 드넓은 중국 땅도 모자라 해외 부동산 시장에서도 ‘큰손’이다. 미국 부동산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인의 미국 주택 매입액은 115억달러로, 전체 외국인 매매량의 6분의 1에 달했다. 일본에서는 한국의 아파트 격인 맨션은 물론, 홋카이도의 숲부터 오키나와의 무인도까지 빈 땅도 마구 사들인다. 한국에서도 최근 중국인의 국내 주택 거래가 2015년 2441건에서 지난해 6233건이 돼 3배 가까이로 늘었다.

일러스트=김의균

이렇게 해외 부동산에 아낌없이 투자하기 위해 중국 부자들은 중국 내 자산을 달러로 해외에 유출하는 다양한 방법을 짜내고 있다. 중국 외환 당국이 연간 외화 반출 규모를 1인당 5만달러(약 5000만원)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 매체 블룸버그가 “중국인들이 외화 반출 방법을 찾아내는 건 마치 전 국민의 취미(national pastime)와도 같다”고 할 만큼 정부 규제를 피하는 기상천외한 방법이 쏟아진다. 전 세계 부동산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중국인들의 ‘현금 운반술(運搬術)’을 알아봤다.

①가족·친척·직원·친구 등 총동원

가장 고전적 수법은 일가 친척과 지인을 동원한 물리적 현금 운반이다. 대가족이 가족 여행을 핑계 삼아 각자 최대 한도의 현금을 들고 해외로 떠나는 것이다. 영·미 금융권에선 이를 ‘스머핑(smurfing)’이라고도 부른다. 프랑스 만화 캐릭터 스머프처럼 적은 달러 현찰을 여럿이 모아 반출한다는 의미다. 회사 사장이 직원들의 해외 워크숍을 가장해 현찰 운반을 요구하기도 한다. 항공료 등 여행 경비가 많이 필요하다 보니 한국·일본·대만 등 가까운 국가에 투자할 때 주로 쓰는 수법으로 알려졌다.

최근엔 해외 지사가 있는 중국 기업의 인맥 도움을 받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중국 기업의 해외 지사들은 무역 결제를 위해 막대한 달러 현찰을 보유하고 있다. 부동산을 사들일 지역의 해외 지사에서 부동산을 사들일 달러를 받고, 중국 본토로 돌아와 위안화나 달러화로 되갚는다. 회계 처리가 불투명한 중국 기업이기에 가능한 수법이다. 한국에서 근무 중인 한 중국계 기업 임원은 “신종 코로나 사태 이후 해외여행이 제한되면서 이 방식이 점점 더 각광받고 있다”고 했다.

중국인 투자자들이 지난해 말 홍콩에서 열린 해외 부동산 투자 설명회에서 영국 지역 투자 전략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트로피에셋

②'환치기'는 옛말, 암호 화폐 운반술

최근에는 가상·암호 화폐가 적극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환치기 등 고전적 방식으로는 위험성이 높은 고액 송금 때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컨설팅 회사 펙실드에 따르면, 지난해 175억달러(약 20조원) 규모의 암호 화폐 자산이 중국에서 유출됐다. 1년 전보다 53% 늘어난 수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2018년부터 시진핑 정부의 외환 규제가 강해지면서 암호 화폐 활용이 더 활발해졌다”고 분석했다.

현재 중국에선 암호 화폐 거래가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송금자는 VPN(가상 개인 네트워크)을 활용해 해외 암호 화폐 거래소에 계좌를 만든다. 송금에는 테더(USDT) 등 달러화 가치에 연동되는 암호 화폐가 주로 쓰인다. 이후 의료비 지출 등을 이유로 내세워 P2P(개인 대 개인) 거래로 중국에서 USDT를 구입한다. 비트코인 등 상당수 일반 암호 화폐는 가격 급등락이 심해 선호하지 않는다. 투자자들은 이후 해외 암호 화폐 거래소에서 USDT를 팔아 부동산 구매에 쓸 자신의 해외 계좌에 현금을 입금한다. 이마저도 불안한 투자자는 스테이블 코인을 다시 비트코인으로 바꿔 바로 부동산 대금을 치르는 데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③영수증 조작, M&A까지 활용

무역 사업을 하는 사람은 방법이 조금 더 다양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방식이 ‘영수증 뻥튀기’다. 해외에서 물건을 수입할 때 영수증에 매입가보다 더 높은 가격을 써두고, 차액을 구매자가 다른 해외 계좌로 입금해주는 것이다. 이것만으로 달러 빼돌리기가 부족하다면 회사 인수·합병(M&A)을 달러 송금 구실로 쓴다. 대외적으로는 합병 회사 가치를 비싼 값에 매겨 놓고, 실제 가격과 지불 가격의 차액을 해외 계좌로 입금받는 방식이다. 브랜드 가치, 특허 등 무형 자산 가치는 주관적 판단에 따라 값이 천차만별이기에 회사 가치를 얼마든지 비싸게 매길 수 있다.

이 밖에도 해외 미술품을 중국에서 사들인 후 미국에서 되파는 방법, 마카오 카지노를 거쳐 송금하는 방법 등 중국 부호들의 외화 반출법은 각자 사정에 맞춰 각양각색이다. 모두 중국 현행법 상 불법 내지는 편법이다. 적발되면 외환 당국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고, 3년간 외화 반출이 금지된다. 그러나 최근 마윈 알리바바 전 회장처럼 중국 공산당의 눈 밖에 나는 사업가가 늘어나자, 중국 부자들의 돈 빼돌리기 방식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호주 싱크탱크 로이인스티튜트의 피터 차이 디렉터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중국 당국의 단속이 아직 심하지 않은 편”이라며 “여전히 많은 중국인이 (불법 외화 반출에 대해) 크게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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