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 네트워크 총동원, 바이든을 움직여라"
EU, 내·후년치까지 확보 나서.."우리도 웃돈 줘서라도 더 구해야"
미국·유럽발(發) 얀센·아스트라제네카(AZ) 혈전(血栓) 사태로 세계 각국이 안전성이 입증된 화이자·모더나 확보에 혈전(血戰)을 벌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14일(현지 시각) “내년·후년 화이자 물량 9억명분에 대한 계약에 돌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EU는 또 “올 4분기 도입 예정된 화이자 2500만명분을 2분기에 조기 도입한다”고 밝혔다. 캐나다·호주·남아프리카공화국 등도 화이자 추가 확보전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시노백 등 자국 백신을 여럿 개발한 중국도 화이자·모더나 같은 mRNA 백신에 눈을 돌리고 있다. 중국 질병예방통제센터는 최근 “중국산 백신의 효과가 50.4%로 높지 않다. mRNA 백신의 이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mRNA 백신 확보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브라질도 지난 3월 화이자와 5000만명분 공급 계약을 맺고 물량 조기 공급을 채근하고 있다. 이런 인구 대국에서 수요가 커지면 우리로선 안정적인 백신 확보에 더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모더나도 미국 물량 공급이 우선이고, 신생 기업이라 생산 기지도 아직 많이 확보하지 못해 수급이 당장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제조됐다는 평가를 받는 노바백스를 2000만명분 확보했지만 이 백신은 아직 승인되지 않았다. 미국·유럽의 추이를 봐가며 안전성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정부는 작년에 화이자·모더나 ‘조기 물량 확보’에 실패했다. 그 후유증이 지금 나타나고 있다. AZ·얀센 파동 국면에서 안전하게 맞을 백신이 부족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우려도 점점 커지고 있다. mRNA 백신의 장점 가운데 하나가 코로나 변이에 신속 대응해 새로운 백신 개발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화이자·모더나는 미국 백신이다. 미국 의존도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한미 관계는 불협화음의 연속이다.
각계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최일선에서 mRNA 백신 확보전에 나서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지금은 전 부처, 민간 기업 등 화력을 총동원하는 ‘올 코트 프레싱’ 전략으로 백신 수급전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치·경제·과학계 등 국가 역량을 총집결해 미국 정부와 ‘백신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한다. 어떤 식으로든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을 움직여 우리에게 필요한 백신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국가 존망과 직접 결부돼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백신은 독감 백신처럼 매년 접종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 변이에도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게 화이자·모더나 같은 mRNA 백신이다. 현재까지 나온 과학적 판단은 mRNA 백신이 가장 안전성이 높고 효과가 크고 신속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2년 뒤에 쓸 백신까지 확보에 나선 EU처럼 우리도 코로나 장기전에 대비해 지금부터 충분한 물량 확보에 나서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백신 접종이 경제·안보·사회 등 모든 분야를 정상화할 토대”라는 감염병·외교 전문가들의 제언을 흘려 들어선 안 되는 시점에 와 있다.
①청와대가 백신 수급 최일선에 나서라
정부는 질병관리청에 ‘백신 수급’ 실무를 맡겼다. 이후 백신 확보가 진행되는 듯했지만 최근 상황이 어려워졌다. 그러자 지난 1일 보건복지부가 주축이 된 ‘범정부 백신 도입 태스크포스(TF)’가 새로 구성됐다. 늦은 조치였다. 게다가 백신 확보 문제는 보건 분야 외에 외교·산업 등 여러 분야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복지부 주관 TF로는 현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전 부처를 총괄하는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게 감염병·외교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이다.
백신 확보는 정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국가정보원이 치열한 정보전을 통해 미국 등 해외 공급분 외에 남은 화이자·모더나 생산 물량을 정확히 파악해야 협상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방역 실패국이었던 이스라엘은 정보기관 모사드를 활용해 화이자·모더나를 대량 계약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 이스라엘은 세계 최고 접종률을 보이며 집단면역의 꿈에 가장 앞서 도달해 있다.
②한미 관계 회복으로 실마리를 풀자
우리 정부는 미 바이든 행정부와 북한·쿼드 등 여러 국면에서 불협화음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에 화이자·모더나 물량을 이른 시일 내에 최대한 많이 달라고 하기가 어렵다. 결국 한미 관계부터 회복돼야 백신 수급의 물꼬가 트일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외교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 초기 소고기 파동 관련 미국 협상이 좋은 예가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국과 미국은 2008년 광우병 논란으로 미국산 소고기 수입 제한을 놓고 맞섰다. 그러자 당시 청와대는 “한미 동맹이 흔들리지 않게 도와달라”며 백악관을 직접 설득, ‘수입 제한’ 목표를 달성했다고 한다. 미국 백신 수급 문제도 이런 전례를 참고하고, 의료계·학계, 필요하면 미국 인맥이 있는 야당 인사들까지 총동원해 미국과 협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외교 전문가는 “현 정부가 대북(對北) 제재를 풀기 위해 미국 측에 로비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백신 확보를 위한 전방위 로비”라고 했다.
③민간 기업의 글로벌 인맥 적극 활용하자
대기업·제약사 등 해외 인맥·역량 활용도 절실하다. 원래 화이자는 국내에 3분기부터 1000만명분이 들어올 예정이었다. 이후 화이자 도입 시기가 1분기로 앞당겨지고, 300만명분 추가 물량도 확보했다. 이는 한 대기업과 최소 잔여형 주사기(LDS) 생산 업체가 화이자 측에 “LDS를 쓰면 화이자 1병당 접종량 5회분을 6회분으로 늘릴 수 있다”고 한 것이 협상을 타결하는 데 크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외 백신 회사들과 연줄이 닿는 국내 제약사들도 백신 외교에 적극 동참하게 하고, 이에 따른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게 업계와 전문가들 얘기다.
④내년용 mRNA 백신, 당장 계약하자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러 형태로 변이·진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당장 내년도 mRNA 백신 물량 확보가 급하다. AZ·얀센 같은 아데노바이러스 기반 백신, 노바백스 같은 단백질 합성 항원 백신보다 mRNA 백신이 변이 바이러스용 백신을 만들기 쉽다. mRNA 백신의 안전성은 이미 우리나라와 해외 각국에서 입증됐다. 화이자는 최근 미국 내 12~15세 대상 임상에서 예방 효과 100%를 보여, 미 식품의약국(FDA)에 12~15세에 대한 긴급 사용 승인도 신청했다.
유럽연합(EU)·호주 등은 최근 화이자 확보에 큰 성과를 거뒀다. EU가 내년부터 혈전 문제가 터진 아스트라제네카(AZ)·얀센을 구매하지 않을 것이란 외신 보도도 나왔다. EU는 내년·후년 화이자 구매 비용을 올해 물량 계약 비용보다 비싼 가격으로 협상 중이다. “우리도 웃돈을 줘서라도 화이자·모더나를 가져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대통령이 협상 실무자들에게 그렇게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⑤백신 교차 접종, 지금부터 연구하자
상반기 우리나라 AZ 접종 대상자는 800여만명이다. 노바백스도 3분기부터 국민 다수가 맞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내년부터는 코로나 변이 대비 차원에서 mRNA 백신을 중심으로 접종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올해 AZ·노바백스를 맞은 국민이 내년엔 화이자·모더나를 교차 접종해도 되는지 지금부터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AZ 접종 후 ‘드문 혈전’ 발생 사례만 관리할 게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AZ 접종 후 2주 내에 발생하는 모든 혈전에 대해 인과 관계가 있는지 연구해 국민 궁금증·불안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mRNA 백신이란
세포 내에서 유전 정보를 전달하는 메신저 RNA(mRNA)를 기반으로 한 백신. 백신 주사기 속 mRNA에는 코로나 단백질을 만들 수 있는 설계도가 담겨 있다. 인체에 주입된 뒤에는 세포 속으로 들어가 코로나 단백질을 생산하고, 이를 통해 면역 반응을 유도한다.
[도움 주신 분들·가나다 순]
강대희 전 서울의대 학장,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교수, 마상혁 대한백신협회 부회장, 박진 국민의힘 의원,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 이근화 한양의대 교수, 이왕준 대한병원협회 코로나19 긴급대응본부 실무단장, 이종구 전 질병관리본부장,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 정재훈 가천의대 교수,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교수,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그 외 익명 요구한 다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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