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욕먹고 쫓겨나고… 코로나 ‘극한 직업’ 보건장관
코로나 사태 책임으로 경질되는 사례 속출... 과로로 자진 사퇴하기도
유럽 각국의 보건부 장관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전대미문 코로나 사태를 맞아 국민들 비판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고, 정권이 흔들릴 때는 가차 없이 경질되는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과로를 못 이기고 스스로 물러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14일(현지 시각) 플로린 시투 루마니아 총리는 블라드 보이쿨레스쿠 보건 장관을 전격 경질했다. 현지 언론은 방역 실패와 코로나 환자 치료를 둘러싼 잇따른 사고로 여론이 악화하자 보이쿨레스쿠 장관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루마니아에서는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 코로나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에서 화재 두 건이 발생해 15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쳐 정부에 대한 비난이 고조됐다. 이어 지난 12일 수도 부쿠레슈티에 있는 한 병원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 오작동으로 코로나 환자 3명이 숨지자 이틀 만에 보건 장관이 경질된 것이다.
루마니아뿐 아니라 동유럽에서는 코로나 사태 때문에 보건 장관이 거의 파리 목숨 수준이다. 대표적인 나라가 체코다. 밀로스 제만 대통령은 코로나 사태가 터진 이후 보건 장관을 세 번 교체했다. 국민의 원성이 커질 때마다 보건 장관을 내쫓아 돌파구를 만들려고 했다. 제만 대통령은 지난 7일 얀 블라트니 보건 장관을 경질하고 코로나 사태 이후 네 번째 보건 장관을 임명했다. 블라트니는 러시아 백신 스푸트니크V를 빨리 접종하라는 제만 대통령의 요구에 맞서 유럽의약품청(EMA)의 승인이 나오기 이전에는 안 된다고 맞서다가 쫓겨났다.
슬로바키아에서도 스푸트니크V 접종을 서두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렉 크라치 보건 장관이 지난달 물러나야 했고, 폴란드에서는 작년 8월 인공 호흡기 구매가 늦다는 이유로 루카스 주모스키 보건 장관이 쫓겨났다. 준비 부족으로 EU(유럽 연합)에서 가장 백신 접종을 늦게 시작했던 네덜란드에서는 위고 데 용게 보건 장관이 집중포화의 대상이었다. 마르크 뤼터 총리가 “다른 나라보다 2주 뒤처져 실망스럽다”고 질책했고, 야권은 “국가적 망신”이라고 비난했다.
보건 장관들이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다가 격무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장관직을 내려놓는 사례도 나왔다. 지난 13일 자진 사퇴한 오스트리아의 루돌프 안쇼버 보건장관은 번아웃(burnout·극심한 피로와 무기력증)을 호소했다. 그는 “지난 15개월이 15년처럼 느껴졌다”며 스트레스로 혈액순환 장애를 얻었다고 했다.
프랑스의 올리비에 베랑 보건 장관은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콜라와 커피를 계속 마시며 졸음을 쫓고 있다고 지난 2월 여성 잡지 인터뷰에서 말했다. 베랑 장관은 업무에 올인하느라 정상적인 가정 생활을 할 수 없어 자녀들과 서로 다른 집에서 따로 지낸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 사태 초기에 의료진용 마스크가 부족하자 “일반인은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가 거짓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보건 장관들은 워낙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코로나에 감염되기도 한다. 지난해 맷 행콕 영국 보건 장관과 네이딘 도리스 차관은 나란히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보건 당국 책임자로서 자기 관리를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보건 장관들이 코로나와 연관된 ‘정치 스캔들’에 휘말려 비난을 받는 일도 잦다. 독일에서 일부 정치인이 마스크 납품 업체와 공무원을 연결해주고 뒷돈을 받은 ‘마스크 스캔들’의 파문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옌스 슈판 보건 장관의 배우자가 근무하는 회사가 독일 정부에 마스크 57만장을 납품한 사실이 드러나 슈판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행콕 영국 보건 장관은 코로나 사태 이전에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의사·간호사에게 월급을 지급하는 온라인 시스템을 개발한 업체 대표와 술자리를 가졌던 사실이 드러나 조사를 받아야 할 처지다. 살바도르 이야 스페인 보건 장관은 코로나 피해가 최고조에 이르던 지난 1월 지방의회 선거에 출마하겠다며 갑자기 장관직을 그만둬 빈축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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