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진짜 스타워즈’는…

정중원 2021. 4. 1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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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그린 그림을 모처럼 꺼내 보았다. 민망함이 엄습했다. 여기저기서 허점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형태가 틀렸거나 색깔이 어색하거나 마감이 미숙한 곳들이다. 당시엔 왜 이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을까. 어떻게 이걸 자신 있게 세상에 내보였을까. 순간 옆에 놓인 붓과 물감에 눈이 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고칠까?’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생뚱맞게 들리겠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 ‘스타워즈(1977)’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스타워즈’ 개봉 20주년이 되던 해, 감독 조지 루커스는 오리지널 극장판을 수정한 개정판을 내놨다. 오래된 특수효과를 최신 컴퓨터 그래픽으로 대체하고 새 장면을 삽입했다. 일부 캐릭터의 목소리와 생김새도 바꿨다. 그는 개정판이 자신이 바란 ‘진짜 스타워즈’라고 선언하며 극장판의 상영을 금지하고 유통도 중단해 버렸다. 나는 큰 상실감을 느꼈다. 개정판이 아무리 세련되어도, 나와 유년기를 함께한 투박한 극장판을 대체할 수는 없었다. 극장판과 함께 내 추억도 파문당한 것 같았다.

작품은 세상에 나오는 순간 창작자의 품을 떠나 새 생명을 얻는다. 그것에 호응한 이들의 숨결이 어린 생명이다. 내 그림도 나만의 소유물이 아니다. 내 작품을 아껴주는 이들과 함께 공유하는 기록이다. 지금 와서 보이는 흠을 지금의 눈높이에 맞게 고칠 수단이 내게는 있지만, 그것을 창작자의 당연한 권리로 여기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는다. 옛날 그림을 오늘날 고치지 않기로. 부족한 점은 부족한 채로, 너그럽게 바라보기로.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지난날 서툴고 어눌했던 순간들이 창피해, 할 수만 있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뜯어고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나와 함께한 누군가는 그 순간들을 소중하고 애틋하게 추억하고 있을지 모른다. 팔이 없는 ‘밀로의 비너스’는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거기에 굳이 팔을 붙이려 하지 말자. 전인권의 노랫말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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