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희생자 씻긴 시간, 지금도 가슴 미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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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들은 차디찬 바다에서 올라온 자식을 처음 봤을 때 '엄마가 미안해'라며 울부짖었습니다. 그걸 보고 있으면 정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 상장례봉사자회 회장 이만실 씨(70·사진)가 기억하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전남 진도군 팽목항의 모습이다.
세월호 참사가 나고 나흘째 되던 날(19일) 이 씨와 회원 30명은 팽목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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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기다렸을 남학생 못 잊어 세월호 비극 다시 일어나선 안돼"
천주교 광주대교구 상장례봉사자회 회장 이만실 씨(70·사진)가 기억하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전남 진도군 팽목항의 모습이다.
세월호 참사가 나고 나흘째 되던 날(19일) 이 씨와 회원 30명은 팽목항으로 향했다. 보건복지부 공무원에게 장례 상담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그냥 뭐라도 도와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희생자는 늘어났고, 이 씨와 회원들은 고민에 빠졌다. “팽목항에 예수님이 계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곰곰이 생각했죠.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사랑을 주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렇게 시작된 팽목항에서의 자원봉사는 7개월 동안 희생자 265명의 시신을 거뒀다.
이 씨는 1977년부터 나주성당에서 숨진 이웃을 예를 갖춰 씻기고 의복을 입혀 관에 넣는 염습(殮襲)을 했다. 이렇게 이 씨가 마지막 길을 배웅한 고인(故人)만 1000명이 넘는다.
그는 2008년 광주대교구에 장례지도사교육원이 생기면서부터 자원봉사로 원생들을 가르쳤다. 이 씨에게서 염습을 배운 회원 박연희 씨(61·여). 주부인 박 씨도 이 씨와 함께 팽목항에서 6개월 동안 머물렀다. 그는 아직도 인양된 남학생 한 명을 잊을 수 없다. 발견 당시 스펀지로 만든 객실용 베개와 휴대전화를 비닐 주머니로 싸서 운동화 끈으로 팔목에 묶은 상태였다.
“학생이 너무 이뻤어요. 구조를 기다리면서 휴대전화가 물에 잠길까 봐 비닐 주머니로 싼 것 같았어요. 지금도 그 학생만 생각하면 가슴이 짠해집니다. 모두 어른들 잘못이에요.”
박 씨와 회원들은 희생자가 나오면 팽목항 앞 바지선 텐트에서 먼저 흙, 해조류를 없애고 깨끗이 닦아냈다. 신원 확인소에는 희생자들을 눕힐 간이침대 수십 개가 놓여 있었다. 이곳은 시신 보관을 위해 실내온도를 항상 8도로 유지해야 해 회원들은 늘 추위에 떨어야 했다. 숙소로 사용된 20m² 정도의 텐트 안에서 30명의 회원이 새우잠을 자야 했다. 끼니는 시민단체에서 주는 밥차에서 해결했다.
당시 50, 60대였던 회원들의 나이도 이제는 어느덧 흰 머리가 희끗희끗한 60, 70대가 됐다. 이미 2명은 세상을 떠났다. 이 씨와 박 씨는 “세월호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나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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