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제 마음이 참 그렇습니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2021. 4. 16. 03: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청첩장을 받아들고 가장 먼저 눈이 간 것은 신랑 신부의 어여쁜 사진이 아니라 안산시 단원구에 있는 예식장 주소였다. 신부는 ‘단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5촌 조카가 졸업한 고등학교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4·16 세월호 참사의 희생 학생들이 다니던 고등학교였기 때문이다. 안산을 갈 때마다 마음이 늘 ‘그랬다’. 이번에도 4월에 안산을 오니 “마음이 참 그렇다”라며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경사에 서로 말을 아꼈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결혼식에서 돌아오는 길에 ‘괜찮으냐?’라는 메시지가 여기저기에서 날아들었다. 조카들이 동네에 큰불이 났다면서 엄마와 이모는 어디쯤 오는 중이냐며 다급하게 연락을 해왔다. 10㎞ 밖인 하남시에서도 거대한 검은 연기 기둥이 보일 정도로 대형화재였다. 정규 방송을 잠시 멈추고 속보까지 전할 정도로 긴박했던 대형화재, 일명 ‘남양주 주상복합 대형화재’가 난 곳이 바로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다. 순간 가슴이 덜컹했다. 아이를 혼자 집에 두고 외출을 했기 때문이다. 상가 안에 있는 단골 피자가게에서 피자를 사 먹고 있으라 돈을 쥐여주고 나온 것이다. 배달비도 아낄 겸 늘 직접 가서 피자를 사 오곤 해서, 설마 하며 심장이 죄어왔다. 다행히 집에서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느라 피자 사 먹는 일도 까먹은 모양이다. “엄마 우리 집까지도 냄새가 들어와”라는 아이의 메시지에 일단 문을 닫고 있으라, 집에서 속보 보면서 상황을 보고 있으라 했다.

마트와 정육점, 식당과 떡집, 반찬가게, 카페, 옷가게와 네일숍, 미용실, 헬스클럽, 개인병원과 치과, 학원과 독서실, 은행 등이 있는 보통의 상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가고, 볼일을 보러 다니는 일상의 장소다. 누군가 계산해 보니 이 동네에서는 1년 동안 아파트를 벗어나지 않아도 먹고, 입고, 머리 손질하고, 아프면 병원 치료까지 가능하다 할 정도로 모든 편의시설이 망라되어 있는 전형적인 아파트 근린상가다. 상점 주인들이 아파트 주민인 경우도 많다. 우리 아이들과 조카들은 이 동네 ‘아파트키즈’로 자랐고, 이 상가의 생태계 속에서 살았다.

동네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헬기가 뜨고 수십 대의 소방차와 경찰차가 와있었다. 지나치던 인도의 소화전에 소방호스가 연결되는 것도 처음 보았다. 새벽 2시 넘어서까지 소방관들은 불을 끄느라 사투를 벌였다. 제일 재밌는 구경이 싸움과 불구경이라 누가 그랬던가. 이번에 겪어보니 구경거리 삼을 만한 일도 아니고 애가 타는 일이었다. 혹시라도 대피를 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 다들 발을 동동 굴렀다. 단골집 사장님들이고 아이들의 학교 친구들이 사는 곳이니 남의 일이 아니라 가까운 이웃의 일이었다.

큰불이 난 지 일주일. 상가는 폴리스라인 테이프로 막혀 있고, 대책본부와 보험사 천막이 들어섰다. 이때다 싶어 내걸린 화재보험의 광고 현수막은 어쩐지 얄밉다. 대책본부 천막 주변에는 피해를 본 상가 상인들과 주민들이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먼발치에서나마 감식 현장을 체념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단골미용실 원장님도 그곳에서 서성대고 있었지만 차마 직접 인사도 못하고 먼발치에서 문자 메시지로 위로를 전했다. 고맙다며 힘없는 답신이 왔다. 꼬박꼬박 관리비에 포함되어 빠져나가던 화재보험금이 건물 보상만 가능하단 얘기에 주민들은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임대인이 국내 유수의 건설사이기 때문에 결국 회사 좋으라고 여태껏 보험비를 낸 것이냐며. 이래저래 동네가 흉흉하다.

사람 목숨은 건진 사고여도 이토록 큰 충격과 슬픔을 준다는 것을 이웃이 되어보니 알겠다. 7년 전 오늘, 바다 한가운데에서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봄꽃이 원망스럽고 따스한 봄 햇살마저 무거울 이들에게 이웃의 마음으로 깊은 애도를 보낸다. “제 마음이 참 그렇습니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