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처럼 피어난 봄의 요리 by 유바카

서울문화사 2021. 4. 1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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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는 토마토가 많이 나고 서천군 옆이라 맛있는 새우도 많아요. 칼집 낸 토마토를 뜨거운 물에 굴려서 껍질을 벗기고, 새우는 데쳐서 바질 가루와 후춧가루, 소금, 아보카도 오일로 살짝 양념한 이 요리의 이름은 '나 좀 안아줘'입니다. 팔을 활짝 벌린 토마토가 새우를 껴안고 있어요."

"음식에 따라 어떤 대화를 할지, 분위기가 달라져요. 그래서 저는 밥을 디자인한다고 표현해요. 재료 자체가 저에게는 디자인 소재이기 때문에, 이곳 부여에서 자연의 다양한 디자인을 만날 수 있어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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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바카 씨는 흙, 볕, 바람이 맛있는 부여에서 요리와 삶을 디자인 한다. 마당에 씨앗을 뿌리며 4월을 준비하는 그녀에게 봄다운 요리를 주문했다.


“부여는 토마토가 많이 나고 서천군 옆이라 맛있는 새우도 많아요. 칼집 낸 토마토를 뜨거운 물에 굴려서 껍질을 벗기고, 새우는 데쳐서 바질 가루와 후춧가루, 소금, 아보카도 오일로 살짝 양념한 이 요리의 이름은 ‘나 좀 안아줘’입니다. 팔을 활짝 벌린 토마토가 새우를 껴안고 있어요.”

데친 제철 채소에 깨소금과 들기름으로 양념한 소면을 감은 유바카식 꽃잔치국수. 채소와 국수를 포크와 나이프로 쓱쓱 썰어 먹으며 포만감과 계절감을 풍부하게 느낀다.

“음식에 따라 어떤 대화를 할지, 분위기가 달라져요. 그래서 저는 밥을 디자인한다고 표현해요. 재료 자체가 저에게는 디자인 소재이기 때문에, 이곳 부여에서 자연의 다양한 디자인을 만날 수 있어 행복해요.”

밥 디자이너 유바카 씨는 지난해 부여의 임천향교 옆에 자리를 잡았다. 복잡한 서울을 떠나 흙을 밟고 사는 그녀는 농촌 마을에서 매일 새로운 즐거움을 마주한다.

“요리가 더 재밌어지고 다채로워졌어요. 채소가 어느 정도 자랐다 싶은 찰나에 뽑아서 상에 올리면 재료에서 빛이 확 피어나요. 이런 순간들이 너무나 행복하고, 텃밭을 하루하루 지켜보는 경험이 너무나 소중해요.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참 귀해요.”

유바카 씨는 뿌리에 흙이 묻어 있는 당근, 파의 마른 잎사귀와 꽃대와 같이 손질되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린다. 텃밭에서 루콜라, 바질, 펜넬, 딜을 직접 기르고 5일마다 서는 장도 꼬박꼬박 나가본다.

동부 콩으로 만든 탱탱한 묵, 식용유 한 방울 섞지 않고 정직하게 짜낸 들기름, 처음 보는 노란 토종 당근 같은, 할머니들이 이고지고 나온 식재료에 매번 감탄한다.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을 때 너무나 신이 난다는 그녀는 소소한 발견을 주변에 나누는 재미로 산다.

당근, 로즈메리, 토마토, 아스파라거스 등 텃밭과 주변에서 구한 식재료로 요리하는 유바카 씨의 식재료 꾸러미. 하얀 묶음은 여름에 옥수수 껍질을 삶아 말려둔 것으로 채소를 묶는 요리에 쓴다.


유바카 씨는 낡은 시골집을 고쳐 산다. 황토를 덧발라 내부를 보강하고 도배도 직접 했다. 흙벽에 페인트를 칠하고 도트 무늬를 더해 완성한 주방 모습.


아침 일찍 아는 농부의 딸기밭에 들러 딸기 넝쿨을 받아왔다. 그녀는 눈에 익은 식재료, 나뭇가지, 계절 꽃으로 파티 테이블을 연출한다.

유바카 씨는 지은 지 90년이 다 된 흙집을 직접 고쳐 사는 중이다. 20년째 방치되어 있던 집이라 쓰레기를 치우는 것부터 시작해 수도와 전기공사까지 새로 할 만큼 난도가 꽤 높은 셀프 인테리어를 경험했다. 낡은 흙집의 내부에 황토를 덧바르고, 꽃무늬 천도 직접 벽에 붙였다. 마당에는 돌을 구해다 담장을 쌓고 벽돌로 길을 냈다. 작업실이자 민박집이기도 한 이곳에서는 쿠킹 클래스, 바느질 워크숍, 원테이블 레스토랑이 열린다. 그중에서도 특히 저고리 모양의 책을 만들어 아이의 성장 과정을 적는 ‘태몽배냇저고리’ 수업이 인기다. 재주가 많은 유바카 씨는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한때는 유학 컨설턴트, 한옥 호텔리어로 일했으며 요리는 물론 공간 디자인, 데커레이션을 기획하는 스튜디오 ‘색동초가’를 운영했었다. 돌이켜보니 셰익스피어에 반해 해마다 영국을 다녀오고, 유학 컨설턴트로 미국 출장을 다니는 틈틈이 공항에서 보았던 외국 잡지들, 몇 번이고 다시 본 영화 <테스>가 그녀에게 영감을 주었다. 일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흡수해왔던 경험들이 봄처럼 꽃피는 요즘이다. “많은 여성이 건강한 웃음을 짓게 하고 싶어요. 팍팍한 삶에 찌들었던 사람, 웃음을 잃었던 분들에게 생각지 못했던 요리와 아름다움을 선보였을 때 기뻐하는 모습이 참 좋아요.”

유바카 씨의 시그니처 메뉴인 봄동 보따리쌈.


텃밭에서 캔 토종 당근은 색이 노랗다. 5일장에서 할머니에게 산 당근을 텃밭에 심었더니 이듬해 당근이 줄줄이 새끼치기했다.


사랑채의 창고 부분을 개조해 완성한 유바카 씨의 작업실. 선반에 그녀가 만든 태몽배냇저고리, 광목 동화책이 놓여 있다.

“봄동 보따리쌈이 식탁에 놓이면 기대감이 확 들어 상상력과 침샘을 자극해요. 봄동 잎을 하나하나 풀 때마다 ‘우와~’ 하며 기뻐하는 사람들과 눈을 맞춰요. 봄동은 가운데 잎들을 떼낸 뒤, 밑동은 뜨거운 물에 넣어 데치고 잎사귀는 끓는 물에 잠깐만 넣었다 빼요. 배 3쪽, 얇게 썬 생강, 은행 몇 알과 훈제 오리를 찜기에 넣고 찐 다음, 봄동 가운데에 모든 재료를 올리고 잎을 가운데로 모아 묶어서 보따리처럼 만드는 거예요.”

‘무엇이든 즐기면 보물이다’가 그녀의 철학. 오래된 집에서 발굴한 그릇, 손때 묻은 소품을 곁에 두고 아낀다.


노랗게 칠한 안채의 주방에서 나오는 유바카 씨. 그녀는 흔하지만 소박하면서도 상쾌한 향기가 진동하는 ‘박하’처럼 살고 싶어 ‘유바카’라는 이름을 자신에게 선물했다.

기획 : 김의미 기자  |   사진 : 이지아  |   요리 : 유바카(@yubaka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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