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취업 알선에..민간 위탁 국민취업지원제도 불만 폭주
"적성은 고려 안 하는 취업지원서비스 도움 안 돼"
취업 성사시 최고 300만원 인센티브에 업체들 무리수
전문가 "성과 중심 취업알선은 청년취업 방해..개선해야"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국민취업지원제도에 참여했던 김서진(28·가명)씨는 한 달 만에 구직활동을 포기했다.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영업직은 적성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김씨에게 취업알선 업체의 상담사가 최근 공고가 올라온 영업직에 지원하라고 계속 압박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저와 맞지 않는 일자리인 것 같다고 얘기했지만 상담사는 지금 이만한 일자리가 없다는 식으로 계속 얘기했다”며 “나중에는 취업이 나를 위한 일인지 상담사의 실적을 위한 일인지 헷갈릴 정도였다”고 말했다.
국민취업지원제도는 고용위기에 내몰린 취업취약계층에 최대 300만원의 구직수당과 취업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에게 인기가 높다. 그러나 현장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정부가 취업지원 업무를 위탁한 민간 취업알선 기관이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해 실적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구직자들에게 ‘묻지마’식으로 취업을 강요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서다. 정부는 청년 대상 취업지원 업무를 552개 민간 취업알선 업체에 위탁해 운영 중이다.
업체 관계자들은 정부가 취업률과 취업처 임금을 주요 기준으로 평가해 계속 업무를 위탁할 지 여부를 결정해 발생하는 부작용이라고 항변했다. 전문가들은 평가 방식을 청년의 만족도 위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1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저소득 실업자, 청년, 경력단절여성 등이 지원 대상인 국민취업지원제도는 소득 수준에 따라 최대 300만원의 구직수당과 취업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Ⅰ유형과 취업지원서비스만 제공하는 Ⅱ유형으로 나뉜다. 올해 목표인원은 총 64만명으로 Ⅰ유형 45만명, Ⅱ유형 19만명이다. 이 사업에는 추경까지 합쳐 9372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국민취업지원제도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지난 1월 처음 시행된 이후 지난 8일까지 신청자는 25만3020명에 달한다. Ⅰ유형 수급 자격을 인정받은 인원은 15만5449명, 이 중 9만807명(58.4%)이 청년이었다. 지원대상 규모가 큰 만큼 이번 사업에는 취업 알선을 하는 민간 위탁 기관도 522곳이 참여하고 있다.
특히 Ⅰ유형의 청년 특례 대상자 15만명과 Ⅱ유형의 청년 13만명 등 총 28만명에 달하는 청년들에게 제공하는 취업지원 업무는 모두 민간 취업알선 업체들이 맡고 있다.
문제는 서비스의 질이다. 청년들은 민간 취업알선 업체들이 제공하는 구직지원 서비스가 업체와 상담사에 따라 들쑥날쑥해 운에 따라 취업여부가 갈린다고 하소연한다.
국민취업지원제도에 참여했던 장연욱(27·가명)씨는 “적성에 맞는 세세한 일자리 상담이 아닌 공고 뜬 곳은 모조리 지원하라는 식의 상담이 전부였다”며 “차라리 혼자 준비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취업알선 업체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 취업지원 업무를 위탁받아 운영중인 한 업체 관계자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한 명, 한 명 상담해주고 싶지만 수많은 지원자를 감당하기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거기다 정부 평가도 취업률과 취업처의 임금 수준을 주로 보기 때문에 그쪽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기존 고용부의 취업알선 업체 평가방식은 총 100점 만점 중 취업률과 취업자 중 임금215만원 이상 일자리 취업 비율이 55점이나 된다. 2년 연속 저평가를 받으면 위탁업체에서 배제될 수 있어 업체들은 구직자 적성보다는 취업률과 취업처 임금 수준을 우선 고려할 수 밖에 없다.
정부가 취업 성공시 위탁업체 지급하는 인센티브도 취업기간과 임금수준이 기준이어서 업체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익명을 요구한 업체 관계자는“일례로 역량평가에서 취업역량 미흡 판정을 받은 지원자를 월 245만원 이상 직장에 취업시키면 인센티브가 300만원 가까이 된다”고 귀띔했다. 인센티브 기준에 청년의 적성이나 만족도 등은 포함돼 있지 않다.
고용부 관계자는 “정부에서도 교육 등을 통해 취업알선 업체의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앞으로 상담사 근로조건 처우 개선, 전문성 개발 노력 등도 업체 평가 요소로 반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당장의 취업률과 임금 수준을 취업 알선 기관의 평가 기준으로 삼는 건 청년 실업 문제에 도움은커녕 방해만 할 뿐”이라며 “현재 청년 실업의 문제는 직업과 청년 노동자의 매칭이 되지 않는 부분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취업 알선 기관이 해야 하는 역할도 청년들 모르는 일자리를 발굴하고 청년의 적성에 맞도록 연결해주는 것이어야 한다”며 “민간 기관 평가나 인센티브 기준을 청년의 만족도나 근속기간 등을 위주로 전면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정훈 (hoonis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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