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실언 폐하'..입이 문제였던 필립공

박영서 2021. 4. 15.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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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높은 여자'를 모시고 살았던 필립공(에든버러 공작)의 장례가 17일(현지시각) 치러진다. 그는 여왕의 남편으로 '내조'의 일생을 살아왔지만 공처가는 아니었다. 직설적·즉흥적이고 농담을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여왕에게 불편한 조언도 거침없이 했다고 한다. 특히 필립공은 진지한 얼굴 표정으로 실언(失言)을 종종 해 곤욕을 많이 치렀다. '실언 폐하'라는 별명을 갖게된 이유다. 살아생전 세간의 도마 위에 올랐던 그의 실언을 정리해 본다.

▲조촐한 장례식, 임신한 마클은 불참=장례식은 왕족들만 참석해 조촐하게 치러진다. 버킹엄궁에 따르면 장례식은 런던 교외 윈저 성의 성 조지 성당(St George's Chapel)에서 17일 오후 3시 거행된다. 한국시간으론 같은 날 오후 11시다. 장례식 장면은 TV로 생중계된다.

장례식은 국장이 아닌 왕실장으로 거행된다. 시작 전에 1분간 묵념이 있을 예정이다. 정부시설에서는 장례 다음날 아침까지 조기가 게양된다.

영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책으로 참가자는 30명으로 제한됐다. 손자인 해리 왕자는 참석하지만 그의 아내 메건 마클 왕손비는 불참한다. 마클이 둘째를 임신한 까닭에 거주지인 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영국으로 건너오는 데 건강상 우려가 있어 불참을 권유받았다고 한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는다. 영국 총리실은 "최대한 많은 왕실 구성원이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불참 사유를 밝혔다.

1947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결혼한 필립공은 슬하에 찰스 왕세자를 포함해 자녀 4명과 윌리엄 왕자 등 손주 8명, 증손주 10명을 두었다.

▲"치명적 바이러스로 환생하고 싶다"...폐하의 실언 모음=필립 공의 말 실수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1986년 10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나왔다. 1953년부터 영국 에든버러대학 총장을 맡고 있던 필립공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산시(陝西)성 시안(西安)대학에서 중국어 연수를 하고 있는 에든버러대 유학생들과 만났다. 그때 필립공은 한 영국인 유학생에게 "여기 더 오래 머물다가는 눈이 쫙 째진 채로 집에 갈 거요"라고 말했다. 중국에 오래 있다가는 중국인처럼 '찢어진 눈'을 갖게 될 것이란 농담이었다.

이 발언은 영국에서 큰 소동을 일으켰다, 반면 중국에선 별 문제가 없었다. 중국에도 "서양에 오래 머물면 눈동자 커져서 돌아온다"라는 비슷한 농담이 있었던 탓 같다.

2002년 5월 '개고기 발언'은 비교적 큰 파문을 일으켰다. 여왕 즉위 50주년을 맞아 영국 국내를 순회하고 있던 필립공은 한 시각장애인을 만났다. 옆에 있던 맹인안내견을 본 필립공은 즉석에서 "요즘에는 식욕증진용으로 개고기를 먹는다던데 아십니까?"라고 물었다. 이 발언은 당일 영국 신문들의 머릿기사가 됐다.

여성들을 대상으로도 말 실수를 많이 했다. 1961년 스코틀랜드 여성단체를 방문한 자리에서 "영국 여자들은 요리를 잘 못한다"고 말했다. 아마도 기록상으로 이 발언이 최초의 실언이 아닌가 싶다. 이후 '그리스 남자' 필립공의 솔직한 말투는 두고두고 화젯거리가 된다.

1984년 케냐를 방문했을 때 선물을 전달한 현지 흑인 여성에게 "당신은 여자인가요?"라고 질문했다. 2010년에는 팬티 말실수를 했다. 스코틀랜드인 여성 정치가에게 "당신은 이 옷감으로 만든 '니커스'(knickers)를 가지고 있나요?"라고 농담했다. 영국에서 니커스는 여성용 속옷, 즉 팬티를 말한다. 필립공은 에든버러에서 타탄체크(스코틀랜드의 전통적인 격자 무늬) 원단을 보면서 이렇게 말을 해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남자가 아내를 위해 차 문을 열어준다면 그건 차가 새것이거나 새 아내인 경우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2001년에는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13세 소년에게 이런 말을 던졌다. "너는 너무 살이 쪄서 우주비행사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이듬해 호주 방문 때에는 전통무용을 공연하던 원주민(에보리진·Aborigin)에게 "지금도 창을 던지고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당시 TV 화면을 보면 엘리자베스 2세가 크게 당황하는 모습이 보인다. 당시의 발언으로 인해 호주 정부는 곤란한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 호주 정부가 한때 원주민에 대한 인종차별적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었다.

1994년 영국 식민지인 케이맨제도를 방문해서는 "여러분 대부분이 해적 후손들 아닌가요?"라고 물었다. 1998년 파푸아뉴기니를 여행하고 돌아온 한 영국 학생에겐 이런 농담을 던졌다. "그 때 (파푸아뉴기니에서) 간신히 잡아먹히지 않았구나." 1999년 스코틀랜드를 방문했을 때 고장난 휴즈 박스를 보고 "이 공사는 인도 사람이 한 게 틀림없다"고 말해 구설수에 올랐다.

2008년 슬로베키아 공식 방문에서 현지 관광전문가들을 만나 '국가매춘' 운운하는 실언을 해 참석자들을 경악시켰다. "관광산업을 장려하는 것은 결국 국가매춘을 부추기는 일 아닙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하지만 일부에선 필립공의 이 발언이 상당 부분은 일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2017년 영국 양로원에 살고 있는 노인 남성에게 "당신, 아사(餓死)할 것처럼 보이네요"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또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내가 환생할 수있다면 인구과잉 해결에 기여할 수 있도록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태어나고 싶다"고 쓰기도 했다.

▲억눌린 게 많아서 그랬다= 필립공은 영국인이 아니었다. 그는 1921년 그리스 왕의 조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순탄치 않게 살았다. 그리스 왕정이 무너지면서 망명생활이 시작됐다. 아버지는 가족을 버렸고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누나와 여동생의 남편들은 독일 나치당원 또는 히틀러 지지자들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 조지 6세는 두 사람의 결혼을 극구 반대했다. 조지 6세는 이런 이유를 댔다. "점잖지 못하게 큰 소리로 웃고 직설적이고 요란스럽다. 게다가 가난한 망명자 신세에 나치 친척까지 있는 청년이다."

필립공은 1947년에 결혼해 해군 군인으로서의 장래를 포기했다. 따라서 한 맺힌 것이 많았을 것이다. 특히 자식이 그의 성을 따르지 못한다는 점을 무척 아쉬워했다. 그는 "이 나라에서 자식들에게 자신의 성을 물려주지 못하는 남자는 내가 유일할 것"이라고 신세 한탄을 하기도 했다.

억눌린게 많아서 실언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에든버러 출신으로 일간지 '타임스' 왕실 출입기자를 지냈던 앨런 해밀턴은 "전하의 농담은 왕족의 딱딱한 의례적 행위에 종종 따르는 높은 긴장 상태를 타파하기 위해서였다"고 옹호했다. 그는 "내가 정말 화가 났던 것은 농담이나 실언이 아니라 전하를 부끄러운 시대착오적 존재로 간주하는 중산층 코멘트였다"고 지적했다.

필립공이 종종 말실수로 물의를 빚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심각한 국제 문제로 발전된 것으로 없었다. 오히려 그는 여왕에게 큰 도움을 주었고 열린 왕실을 구현하는 데 주력해 국민들의 왕실에 대한 친밀감을 높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1997년 결혼 50주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칭찬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솔직히 그는 제 힘입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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