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쉴 권리' 한국형 상병수당 도입 첫발

노도현 기자 2021. 4. 15.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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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상관없이' 아플 때 소득 보장..복지부 자문위 첫 회의
재원·지급 대상 등 설계 후 연내 시범사업 모형 마련 계획

[경향신문]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하는 상병수당 도입을 위한 사회적 논의가 15일 첫발을 뗐다. 정부는 재원, 지원 대상, 보장 기간과 수준을 면밀히 따져 국내 실정에 맞는 한국형 상병수당 제도를 내놓을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제1차 ‘상병수당 제도기획자문위원회’ 회의를 열고 자문위 운영방향, 상병수당 제도 전반, 제도 설계 및 시범사업 운영방안 연구계획 등을 논의했다. 상병수당은 노동자가 업무와 관계없는 질병·부상 탓에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경우에도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일정 소득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상병수당을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아프면 집에서 쉬기’라는 방역수칙조차 지킬 수 없는 노동자들의 현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상병수당은 한국 사회보장제도의 ‘마지막 퍼즐’로 꼽힌다. 건강보험은 아프면 치료를 보장해주고, 산재보험은 업무상 원인으로 아플 때 소득을 지원한다. 하지만 ‘업무와 상관없이’ 아플 때 소득을 보장하는 방안은 미비했다. 기업의 병가제도가 있지만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다. 지난해 보건사회연구원이 493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유·무급 병가제도를 운영하는 사업장 비율은 42.2%였고, 유급병가 제도를 운영하는 사업장 비율은 7.3%에 불과했다. 유급병가 이후 소득을 보장할 방법도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병수당이 없는 곳은 한국과 미국의 일부 주가 유일하다.

제도 설계는 간단치 않다. 재원, 지원 대상, 보장 수준과 기간, 사후관리 등 국내 현실에 맞게 논의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 재원을 살펴보면 OECD 국가 중 28개국은 사회보험으로, 4개국은 조세로 마련한다. 고용보험이나 건강보험에 통합한 국가가 대다수다. 소득에 비례해 보험료를 내고, 아플 때 낸 만큼 받는 식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이전 소득의 60%를 보전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상병수당 지급 대상도 고민거리다. 많은 국가들은 임금노동자로 시작해 비임금노동자로 넓히는 추세다. 골절이 됐든 암이 됐든 얼마나 일을 하지 못하느냐가 수당 지급의 핵심 요건이다. ‘근로 무능기간’은 별도 의료인증 절차를 거쳐 산정한다. 며칠이면 낫는 질환으로 수당을 빈번하게 타는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대기기간’을 둔다.

예를 들어 상병수당 제도와 법정 유급병가 제도가 모두 있는 스웨덴은 자영업자에게 7일의 대기기간을 두고 그 이후부터 상병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임금노동자도 최대 14일의 유급병가 기간이 지난 뒤부터 수당을 받을 수 있다. 법정 유급병가가 없는 일본은 대기기간을 3일로 설정해놨다. 기업이 자율적으로 제공하는 유급병가와의 중복을 막기 위해 상병수당 청구 시 노동자·사업주·의사가 모두 신청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국가별 최대 보장기간은 주로 6개월~1년이다. 주기적인 재인증과 방문조사를 거쳐 과다한 재정 지출을 방지한다.

현재 상병수당을 지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국민건강보험법상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상병수당을 실시할 수 있다’는 문구뿐이다. 지난해 박범계·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배진교 정의당 의원에 이어 지난 1월 정춘숙 민주당 의원도 상병수당 도입을 포함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 의원안은 소득 상실 4일째부터 상병수당 지급, 질병·부상 전 3개월 소득에 비례해 산정, 최저임금액 이상 지급 등이 핵심이다.

정부는 올해 9차례 자문위 회의를 거쳐 상병수당 시범사업 모형을 마련하고 내년부터 실시할 계획이다. 연구용역과 시범사업 결과를 토대로 한국형 상병수당 제도를 완성한다. 장기요양보험이 3년간 시범사업 후 도입된 점을 고려하면 상병수당 시범사업 기간 역시 3년 정도로 예상된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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