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을 연기하는 세월호 엄마 "상처를 동력 삼아 세상으로" [세월호 7주기]

김은성 기자 2021. 4. 15.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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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연극 '기억여행' 공연 앞둔 극단 '노란 리본'

[경향신문]

대본 연습하는 배우들 지난 12일 경기 안산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대강당에서 세월호 참사 피해 학생 어머니들이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연극 <기억여행> 대본을 읽으며 연습을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치유 위해 시작한 대본 읽기
2016년 극단 결성 본격 연기
‘장기자랑’ 등 세 작품 공연
무대 연기 6년차가 되었건만
여전히 연습 첫날 ‘울음바다’
“고마운 이웃들에 웃음 주며
살고 있다는 걸 아이가 볼 것”

“어디서 납골당을 사람 사는 곳 한복판에 지어!” “납골당이 아니라 생명안전공원이에요.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의미죠.” “아 됐고! 나랑 상관도 없는 애들인데, 왜 내가 잊으면 안 되는데?”

지난 12일 경기 안산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대강당. 세월호 참사 피해 학생의 어머니들이 4·16생명안전공원 설립을 놓고 논쟁을 벌이는 안산 시민들의 모습을 덤덤히 연기했다. 이곳은 생명과 안전의 가치를 알리는 테마공원으로 진통 끝에 건립이 확정됐으며 2024년 완공된다.

“이제 7년이나 지났으니 면전에서 지겹다면서 그만하라고 해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마음은 저도 모르게 상처를 받아요. 근데 상처를 동력 삼아 다시 세상으로 한 발짝 나가 목소리를 내면 또 괜찮아지고….” 대본 읽기 연습을 마친 고 최윤민 학생의 어머니 박혜영씨(59)는 “세월호 엄마들”이라는 주문이 오늘을 살게 하는 힘이 되고 자신들의 언행에 책임감을 부여한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는 올해도 연극 무대에 올라간다. 연극 <기억여행>의 주인공은 단원고 피해(희생·생존) 학생의 어머니들이다. 의인화된 ‘노란 리본’의 시선으로 엄마들의 삶과 투쟁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세월호의 의미를 되새긴다. 엄마들이 만든 극단 이름 역시 ‘노란 리본’이다. 참사 초기 노란 리본은 추모와 염원이 담긴 상징물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정치 논쟁과 혐오의 대상으로 호출됐는데, 세월호 엄마들이 겪어야 했던 7년과 꼭 닮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쉽지 않은 때가 있었다. 이웃을 피해 남은 가족과 이사한 고 곽수인 학생의 어머니 김명임씨(59)는 이제 더 이상 숨지 않는다. 김씨는 “수인이가 떠난 후 동생이 우울증에 힘들었는지 학교를 다녀온 후에는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동네에 나가면 사람들이 저희 가족을 보며 수군거렸다.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동굴 속에 갇힌 때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우연히 대본 읽는 모임을 만났고, 엄마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먼저 떠난 아이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어 연극을 시작했다. 김씨는 “7년은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세상을 이해하는 눈이 넓어지고 깊어져 감사하다. 투쟁에 함께한 고마운 이웃들에게 웃음을 주며 살고 있다는 걸 아이가 보고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2015년 심리 치유를 위해 시작한 대본 읽기 모임은 2016년 극단 결성으로 이어져 <그와 그녀의 옷장>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 <장기자랑> 등 3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6년차 배우가 되었건만 여전히 대본 연습 첫날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음을 쏟아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7명의 엄마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연했다. 작년부터는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고 권순범 학생의 어머니 최지영씨(58)는 “진상규명이 끝나 다시 원래 검은 머리로 돌아가는 것이 삶의 목표다. 연극을 보는 관객 중에 학생들도 있는데, 제 머리를 보면서 세월호를 기억하고 진상규명이 어떻게 됐느냐고 물어봐 준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희망과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했다.

<기억여행>의 마지막 여행지는 갈 수만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2014년 4월15일 안산의 아침’이다. 수학여행을 준비하는 아들에게 발 냄새가 나니 양말을 많이 챙겨 가라는 엄마의 잔소리, 용돈을 더 많이 타가기 위해 핑계를 만드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김명임씨는 “연극이 작게는 삶에 쫓겨 놓치고 있었던 평범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크게는 우리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7명의 단원 중 막내의 나이는 48세. 몸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해 격한 동작을 연기할 때 곳곳에서 신음소리가 난다. 10대들이 쓰는 말이 입에 붙지 않고, 대본을 외우기 위해 종일 녹음을 틀어놓기도 한다. 엄마들이 말하는 이번 연극의 관전 포인트는 ‘코믹’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와 엄마들이 토닥거리는 요소를 숨겨 놨으니, 편하게 웃으며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고 했다. 직업 배우 못지않은 애드리브와 연기력을 발견하는 재미는 덤이다.

연출가 김태현씨(45)는 “6년 전 시작할 때는 관객들에게 이렇게까지 호응을 받으며 지금까지 오게 될 줄 몰랐다”며 “어머님들이 투쟁으로 사회에 생명 존중에 대한 의미 있는 변화와 공감대를 만들어 낸 것에 자긍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엄마들의 무대는 다음달 29일 안산예술의전당에서 막이 오른다. 관람료는 무료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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