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는 복제인간 .. 구원일까 재앙일까

김신성 2021. 4.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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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주 감독 9년 만의 신작 '서복'
살고 싶은 욕망과 죽음의 두려움
현실적 시선 따르며 본질 캐물어
공유·박보검 투톱 주연 맡아 화제
서로의 상처 보듬으며 감성 더해
영화 ‘서복’은 죽지 않는 복제인간과 죽음을 앞둔 한 남자의 로드무비로, 삶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을 그려낸다. ‘건축학개론’(2012)의 이용주 감독이 9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왼쪽부터 박보검, 조우진, 공유. 흥미진진 제공
‘결혼하고 싶은 남자’ 공유와 ‘간직하고 싶은 남자’ 박보검이 투톱 주연을 맡은 영화 ‘서복’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탓에 지난해 개봉이 몇 차례 연기되면서 올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손꼽혀왔다. 더욱이 ‘건축학개론’(2012)으로 국민 모두에게 첫사랑의 감정을 일깨웠던 이용주 감독이 9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영화는 복제인간을 소재 삼아 인간이 살면서 바라는 욕망과 누구나 맞게 될 죽음이 주는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복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이를 바라보는 인간들의 시선을 따라가며 생과 사 같은 본질적인 가치를 따져 묻는다.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은 끊임없이 시간의 한계를 연장하려 한다. 죽지 않는 복제인간의 탄생은 인류의 구원일까 재앙일까.

뇌종양 교모세포종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전직 정보국 요원 기헌(공유)은 줄기세포 복제와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탄생된 실험체 서복(박보검)을 안전한 장소로 이송하는 임무를 제안받는다. 복제인간의 실존이 당혹스럽지만, 그를 통해 자신의 병도 치료할 수 있다는 기대에 기헌은 임무를 수행한다.

서복을 노리는 세력들의 공격이 본격화된다. “미래를 준비하는 연구입니다. 유전자 변형을 통해 개량된 개체죠. 서복을 통해 인간의 죽음을 극복할 수 있어요. 서복은 죽지 않는 존재입니다.” 서복을 이용해 불멸의 삶을 살고자 하는 무리이다.

“죽음이 사라진다면 인간들은 오로지 욕망만을 충족시키려 들 겁니다. 죽음은 오히려 바람직한 삶을 유지하는 근본요소입니다. 인간답게 살려면 죽음이 있어야 해요.” 인류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면 재앙이 될 것이라며 서복의 존재를 지우려는 자들이다.

기헌과 서복은 양쪽 모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험난한 동행의 과정에서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게 된다. 죽음이란 숙명 앞에 발버둥 치는 인간 기헌과 영원히 죽지 않지만, 존재 이유에 회한을 갖는 복제인간 서복. 극과 극에 놓인 둘은 서로를 통해 자신을 마주한다.

기헌은 과거 트라우마에 갇혀 괴로워하면서도 생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하는 자신을 성찰하고, 서복은 영원의 시간에 갇혀 있는 운명의 의미를 캐며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토해낸다.

왜 자신을 만들었는지, 인간들은 왜 죽기 싫어하는지, 죽음이 왜 두려운지. 알다시피 이는 객석에 건네는 질문들이다.

할리우드의 복제인간 영화와는 결이 다르다. 상상력을 따라가는 SF가 아니다. 죽음과 삶을 대하는 현실 속 인물들을 찬찬히 살펴본다. 답하기 쉽지 않은 철학적인 물음들을 잔뜩 쌓아둔 영화지만, 서복이 발휘하는 초능력과 기헌의 액션 시퀀스가 보는 재미를 만들어 간다. 두 인물이 서로의 상처를 담담하게 보듬는 관계로 나아가는 여정은 영화에 감성을 더한다.

하지만 이쯤에서 호불호가 갈릴 듯싶다.

해변에서 파도를 막아내며 돌탑을 쌓아올리거나 무수한 새떼의 군무를 이끌어내는 서복의 힘은 실로 신비롭다. 교과서 같은 답을 따르기보다는 차라리 마블의 히어로들처럼, 잘 생긴 박보검을 내세워 동양의 히어로를 만들었더라면 어땠을까. 젊은 관객들일수록 이 편을 택할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이 고개를 드는 대목이다.

박보검은 복제인간을 절제된 감정 연기로 완성한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면서도 원망과 분노, 슬픔 등 복합적인 느낌을 전하며 묘한 분위기를 조성해낸다. 평소 보던 눈빛과 다른 눈연기를 보여준다.

공유는 수척해진 얼굴로 과거의 죄책감을 씻는다. 죽음을 무서워하는 인간의 모습을 거부감 없게 오버하지 않고 그려낸다.

기헌과 서복을 쫓는 안부장 조우진은 악랄한 카리스마로 극에 속도감을 붙인다.

서복의 탄생과 성장을 지켜본 책임연구원 임세은을 맡은 장영남은 비밀스러운 인물이다. 짧은 대사만으로도 인상 깊다.

이들은 영화를 보고 나면 떠오르는 삶에 대한 단상을 한 줄씩 정리했다.

“얼마나 길게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실로 중요하다.”(공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중요하다.”(조우진)

“삶은 내 존재 가치를 끊임없이 찾아가는 시간이다. 깎이거나 쌓여가는 것 아닐까.”(장영남)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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