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검찰의 뜨거운 감자..'이첩' 논란
■ '이첩' 이 뭐길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범 이후 단연 화제가 된 단어는 '이첩'이다.
일상에서 거의 쓰이지 않아 생소하기까지 한 이 단어를 표준국어대사전은 '받은 공문이나 통첩을 다른 부서로 다시 보내어 알림'으로 풀이하고 있다.
수사 실무상으로는 한 수사기관이 수사 진행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사건을 다른 수사기관에 처리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뜻한다.
■ 논란의 시작…'공소권 유보부 이첩'
논란의 시작은 공수처법 24조 3항의 재이첩 규정이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4조(다른 수사기관과의 관계)
③ 처장은 피의자, 피해자, 사건의 내용과 규모 등에 비추어 다른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범죄 등을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해당 수사기관에 사건을 이첩할 수 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은, 지난달 3일 의혹에 연루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이규원 검사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했다. 공수처 출범으로 검사의 범죄 혐의는 공수처가 수사를 전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사 인력을 아직 꾸리지 못한 공수처는 24조 3항을 근거로 사건을 다시 수원지검에 이첩했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게 '공소권 유보부 이첩'이다.
공수처가 판·검사, 경무관 이상 고위 경찰 공무원의 비리 사건에 대해 '전속 관할권'을 갖고 있는 만큼, 수사는 검찰에 맡기더라도 기소 여부는 공수처에서 판단하겠다는 취지다.
검찰은 반발했다.
공수처법 해당 규정에 공소권만 빼고 이첩할 수 있다는 명시적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형사소송법 체계가 갖춰진 이후 공수처가 주장하는 식의 '수사 따로 기소 따로' 선례는 없었다는 것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검찰이 공수처의 하청이냐'는 불만까지 터져나왔다.
그리고 지난 2일 검찰은 이규원 검사를 불구속 기소하면서 '유보부 이첩'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후 '공소권 유보부 이첩'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공수처는 여전히 '공소권 유보부 이첩' 주장을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지난 12일 발족한 공수처 자문위원회에서는 소위원회를 꾸려 '유보부 이첩' 문제를 심층 논의하기로 했는데, 참석자 중 일부는 아예 공수처법을 개정해 '유보부 이첩'의 명시적 근거를 만들자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 검찰 "강제 수사 개시하면 이첩 요청하지 말아야"
이첩을 둘러싼 논란은 공수처법 24조 1항을 놓고도 불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4조(다른 수사기관과의 관계)
① 수사처의 범죄수사와 중복되는 다른 수사기관의 범죄수사에 대하여 처장이 수사의 진행 정도 및 공정성 논란 등에 비추어 수사처에서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하여 이첩을 요청하는 경우 해당 수사기관은 이에 응하여야 한다.
공수처가 다른 수사기관과 중복 수사를 할 경우 '수사 진행 정도'와 '공정성 논란' 등을 따져 사건을 이첩받을 수 있게 돼 있는데, 공수처는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어제(14일)까지 검찰과 경찰, 해경, 군 검찰 등의 의견을 접수했다.
관심은 검찰이 어떤 의견을 표명했는지에 모아졌는데, 검찰은 압수, 수색, 체포를 비롯한 이른바 '강제 수사'가 시작되면 공수처가 이첩 요청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KBS 취재 결과 확인됐다.
강제 수사 단계에 들어서면 수사 대상자를 비롯한 사건 관계인들이 변호인을 선임해 대응에 나서는 등 수사 절차에 이미 깊숙히 관여하고 있는 만큼, 수사 주체가 바뀌면 오히려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와 인권 보장 측면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또, 강제 수사 자체가 엄정한 수사 의지를 대외적으로 밝힌 것인 만큼 이른바 '제 식구 감싸기' 같은 공정성 문제 역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같은 검찰 의견을 공수처가 수용할 지는 미지수다.
'유보부 이첩' 논란에서 보듯 '전속 관할권'을 강조하는 공수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 "국민을 위한 형사사법체계 변화 생각해야"
올해 검·경 수사권 조정 시행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으로 70여 년간 이어져 온 형사소송법 체계는 큰 변화를 맞이했다.
변화 속에 혼란을 최소화 하면서 제도를 조속히 안착시키는 것은 모든 수사기관에게 부여된 책무라고 할 수 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앞서 지난 2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방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우리나라의 반부패 수사 역량이 효율적으로 쓰여야 된다, 서로 협조하기로 원론적인 말을 많이 나눴다"면서 공수처와 검찰이 실무 채널을 가동해 협조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양 기관 간 실무 협의는 '공소권 유보부 이첩' 문제를 놓고 단 한 차례 개최됐을 뿐이다.
단어조차 생소한 '이첩'을 둘러싼 공수처와 검찰의 갈등 속에 국민적 혼란만 커지고 있다. 결국 '밥그릇 싸움' 아니냐는 불편한 시선이 적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장덕수 기자 (joanne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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