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을 받아간 그 남자가 은행으로 간 이유는?
■ 경찰 지구대 앞 지나던 보이스피싱 수거책…경찰에 붙잡혀
지구대 경찰관이 전화를 받더니 바깥을 유심히 바라봅니다. 보이스피싱을 당한 것 같은데 돈을 받아간 남성이 지구대 쪽으로 갔다는 신고 전화였습니다.
피해자는 남성이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지구대 앞을 지나가는 한 남성의 인상착의가 신고 내용과 같았습니다.
보이스피싱 용의자임을 직감했습니다. 지구대에서 경찰들이 뛰쳐나가 남성을 체포했습니다. 남성이 들고 있는 가방에는 현금다발이 들어있었습니다.
돈의 출처를 묻는 경찰에 남성은 '채권 추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이 소속 기관과 직급을 물었지만 남성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신고 내용과 정황을 종합해 볼 때 경찰은 남성이 보이스피싱 용의자가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면 앞서 피해자는 보이스피싱에 속아 돈을 건네고도 어떻게 이 남성이 수상하다며 경찰에 신고까지 할 수 있었을까요?
■ 내 돈을 받은 그 남자가 한 일은?…은행으로 달려간 경찰관
피해자는 대출금을 저금리로 바꿔주겠다는 말에 속아 남성에게 현금 1,700만 원을 건넸습니다. 대환대출 보이스피싱이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뒤 돈을 받아든 남성이 은행으로 들어가자 이를 수상하게 여겼습니다.
회사에서 나왔다던 남성이 회사로 돌아가지 않고 은행으로 들어가니 이상했던 겁니다. 남성은 현금 입출금기 앞에서 한참 동안 송금을 했습니다. 수사로 밝혀진 내용을 보면 이 과정에서 남성은 텔레그램으로 받은 계좌에 입금자명을 바꿔가며 9차례나 입금을 했습니다.
피해자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남성은 해당 은행에서 더는 입금이 되지 않자 다른 곳을 찾아 은행을 나섰습니다. 피해자는 남성을 뒤쫓아갔습니다. 남성이 지구대 쪽으로 걸어가자 해당 지구대에 전화해 신고했습니다.
남성은 곧바로 붙잡혔지만 피해자에게 받은 돈의 절반을 이미 송금한 상황이었습니다.
보이스피싱 근절을 위해 100만 원 이상 송금 시 도입한 '지연 인출' 제도는 30분입니다. 지연 인출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경찰은 일단 가까운 은행으로 달려갔습니다.
범행에 쓰인 계좌를 지급 정지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은행은 간단한 확인 뒤 곧바로 계좌를 지급 정지했습니다.
■ 구속된 남성…저금리 대환대출로 송금 요구하면 '보이스피싱'
지급이 정지된 계좌에는 1,500만 원가량이 들어있었습니다. 다른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의
돈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경찰은 이 돈을 압수해 피해자에게 돌려주고 보이스피싱 수거책인 30대 남성을 사기 방조 혐의로 구속했습니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끝까지 '의심'을 거두지 않아 돈을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같은 수법에 속고 있습니다.
보이스피싱에 주의하자는 캠페인은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지만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저금리 대환대출로 송금을 요구하면 '보이스피싱'입니다.
백상현 기자 (b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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