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뉴스+] '갓생' 살기 위해 마르고 싶다는 프로아나..우리 사회가 바꿔야 할 것들
찬성한다는 뜻의 '프로(Pro)', 거식증의 준말 '아나(anorexia)'. 이번 주 [구스뉴스]에서는 거식증에 걸려서라도 마르고 싶다는 '프로아나' 현상에 대해 다뤘습니다. (기사 바로 가기: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2000547) 마른 몸을 이상화하고 극단적인 절식을 통해 체중을 감량하는 현상은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왜 프로아나가 되고 싶은 걸까요? 소셜미디어에 프로아나 게시글을 올리는 10대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봤습니다.
"여돌 ○○○처럼 '갓생' 살고 싶어서요."
18살 A양은 '갓생'을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갓생'은 어감에서 추정되듯 '훌륭한 인생'을 뜻하는데, 노력을 통해 성공적인 인생을 꾸려나가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서 유독 마른 몸을 가진 아이돌을 지목했습니다. 해당 아이돌의 성공 원인 중 하나가 '마른 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우선 마르고 그다음 능력이 갖춰지면 '갓생'이 완성되는 것 같다"고 털어놨습니다. 지목한 연예인은 달랐지만 16살 B양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돌 몸에 시선을 돌려보니 다들 지나치게 말라 있었습니다. 발목은 여느 사람 팔목 같았고 어깨는 가냘팠습니다. 10여년 전 미용 몸무게라며 돌아다니던 '키-몸무게=110'을 훨씬 넘어 120, 130 정도가 되어 보이는 아이돌도 눈에 띄었습니다. 비단 여자 아이돌뿐만 아닙니다. 남자 아이돌도 허리가 지나치게 가늘었습니다. (프로아나 계정에서 '식욕 억제 자극 사진'으로 남자 아이돌 사진도 함께 올라오는 것을 보면 성별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책 〈살이 찌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다〉를 통해 17년 동안의 섭식장애 경험기를 풀어낸 김안젤라 작가. 마른 몸을 이상화하는 지금의 분위기를 막으려면 아이돌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Q. 아이돌 문화, 어떤 점이 문제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요?
A. 김안젤라 작가: 선망하는 아이돌이 있으면 10대들은 그 사람처럼 되고 싶어하잖아요. 그 친구들이 비정상적으로 말랐는데, 그럼 그 몸을 아이들이 따라 하게 되는 거잖아요. 한 번은 유명 아이돌이 방송에 나와서 '10일 내내 굶은 적이 있다'고 말하는 걸 봤어요. 그 아이돌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싶으면서도 팬들이 이 다이어트 방법을 따라 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됐어요. 소속사에서 아이돌 트레이닝할 때 극단적으로 식단을 조절시켜가면서 마른 몸으로 만드는데, 그 친구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더 어린 친구들은 그 친구를 선망하게 되고 악순환인 거 같아요. 패션계도 극단적으로 마른 몸을 선호하는 분야인데, 모델들이 거식증으로 사망한 일이 생긴 뒤로는 법적으로 '런웨이에 서는 모델의 몸무게가 어느 정도 이상이어야 한다'는 법이 생기기도 했거든요. 아이돌 산업에서도 최소한의 제재가 필요해졌다고 생각해요.
〈사이즈 차별 없는 패션쇼〉를 기획한 내추럴 사이즈(66~77) 모델 치도는 우리 사회 속 '마른 몸=성공'이라는 공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른 모델'이 되길 꿈꾸며 오직 마르고 예쁜 것만이 성공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가장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이즈의 모델이 되어 행복으로 한 발 더 다가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Q. 다양한 몸이 인정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치도: 어디에나 만연한 성형ㆍ다이어트 광고만 봐도, 우리에게 '이렇게 되면 인생이 바뀐대', '살만 빼면 인생이 더 완벽해질 수 있어'라고 말을 걸잖아요. 그런데 그 미의 기준을 충족하고 나면 행복해질까요? 아뇨, 저는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은 그다음이 있을 것 같아요. 또 유행하는 아름다움이 생기겠죠. 패션쇼를 기획하면서 느낀 건, 아무리 나 자신을 사랑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환경적 요소가 많다는 거였어요. '나를 사랑할 수 있도록 주변 환경을 바꾸자'는 게 제 신념인데, 그래서 바꿀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마네킹을 바꿔보려고 해요. 마네킹이라는 게 지금까지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지만 당연한 사이즈가 아니거든요. '마네킹 펀딩'을 통해서 가장 현실적인 사이즈의 마네킹을 제작해서 빠르면 이달 말 한 의류브랜드 매장에 진열할 계획이에요. '사이즈 차별 없는 패션쇼' 속 마네킹의 자리를 다양한 사이즈를 가진 모델들이 차지하는 장면처럼, '사이즈 차별 없는 마네킹'을 통해 몸에 대한 획일화된 틀을 바꾸고 싶어요.
더 나은 삶을 살겠다며 무작정 굶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길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학교 수업에서 프로아나 예방에 대한 내용을 가르치는 교사 고은비 씨가 그렇습니다. 고씨는 교육 현장도 프로아나 현상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Q. 왜 프로아나 예방에 대해서도 가르치게 되셨나요?
A. 고은비: 담임을 맡다 보면 한 학기별로 한 명씩은 밥 안 먹는 아이들이 있어요. 한 달 넘게 급식을 거르거나, 한 달여 만에 10kg씩 빼고 오는 아이도 있죠. 섭식장애를 겪었던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런 경험 때문에 아이들의 행동이 더 잘 보이는 것 같아요. 사실, 생각만 바뀌면 행동은 바꿔나갈 수 있는 거잖아요. 아니면 본인이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다고 봐요. 대부분의 기술·가정 교과에 섭식 장애의 원인 혹은 증상, 해결 방안은 간단하게 나와 있는데요, 선생님이 어느 정도의 비중을 두고 가르치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학생들이 자신과 관련 있는 것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더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스뉴스에서 만난 사람들은 섭식장애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도 했습니다. 살을 빼기 위해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거나 극단적인 단식을 하는 사람을 본다면 "그럴 거면 왜 먹어?" "안 하면 되지 않아?"라고 말하지 말라는 겁니다. 대신 "어디 아프니?"라고 물어보고 자연스럽게 치료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울증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시작된 후 인식이 많이 바뀐 것처럼, 섭식장애도 공론화 과정을 거쳐 사회적 이해도가 높아지길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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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식증은 위험하지만 예방 가능하고, 전문의료기관의 진단을 받는다면 완치가 가능한 병입니다. 섭식장애클리닉(02-2270-0063), 모즐리회복센터(02-775-1009) 등에서 상담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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