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한참 부족한" 동아제약 사과문, 면접자가 직접 '첨삭'해봤다

임재우 2021. 4. 1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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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랩> 인터뷰 출연한 동아제약 면접자
"차별 없는 일자리 창출 앞장? 뒤따라가기부터"
"성평등 문제? 성차별 문제로 고쳐야"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자가 동아제약의 사과문을 직접 첨삭했다. <슬랩> 영상 갈무리

‘성차별 면접’으로 논란에 휩싸였던 동아제약이 지난달 22일 자사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신입사원 면접 과정에서 성차별적 질문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지원자에게 사과의 뜻을 전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면접자인 ㄱ씨는 “부족한 사과문이지만 이 정도로 받아들이겠다”고 했습니다. 대신 최호진 동아제약 대표에게는 화해의 의미로 ‘82년생 김지영’을 선물로 보냈다고 했습니다.

ㄱ씨는 사과문이 무엇이 ‘부족하다’고 보았을까요? 지난주 젠더 미디어 <슬랩> 영상 촬영을 위해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를 찾은 ㄱ씨가 빨간 펜을 들고 직접 첨삭에 나섰습니다. 별도의 사전 준비 없이 현장에서 첨삭 부탁을 받은 ‘일필휘지’로 사과문의 오류와 빈틈을 파고들었습니다. (ㄱ씨가 직접 ‘불꽃 첨삭’에 나선 모습은 <슬랩>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동아제약은 차별 없는 청년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겠습니다.”(동아제약 사과문 중)

ㄱ씨는 제목부터 잘못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동아제약은 ‘차별 없는 청년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여성 일자리 창출’이라고 썼어야 맞습니다. 앞장설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차별 없는 여성 일자리 창출에 뒤따라가기부터 해야 하고...”(ㄱ씨)

동아제약 홈페이지 갈무리

“‘특정 성별에게만 유리하거나 불리한 주제에 대해 토론하거나 질문하지 않는다’는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의 ‘성평등 채용 안내서’ 기준을 위반한 질문이었습니다.”

ㄱ씨는 면접 과정에서의 성차별적 질문이 성평등 채용 안내서 기준을 넘어 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점을 사과문에 명시했어야 했다고 봤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고용(모집·채용·승진 등)과 관련해 특정한 사람을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평등권 침해의 차별 행위라고 규정합니다. “절대 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인권위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이 추가되어야 합니다.”(ㄱ씨)

“지금까지 동아제약은 남녀 동수로 구성된 인권 위원회를 운영하는 등 성평등과 관련한 다양한 제도와 원칙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문제는 그 제도와 원칙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관리, 감독이 철저하지 못한 부분에서 발생했습니다.”

동아제약의 ‘남녀 동수로 된 인권위원회’를 언급한 부분도 ㄱ씨의 빨간 펜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프로세스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전부 삭제하고 성차별 없는 조직 문화와 채용 문화를 만들 것을 약속하겠다는 내용이 들어갔어야 맞습니다.”(ㄱ씨)

동아제약의 사과문에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도 등장합니다.

“채용 이후에도 성평등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지 배치, 승진, 임금, 교육 기회 등의 프로세스를 다시 점검하겠습니다.”

ㄱ씨는 “성평등과 같은 문제”가 사과의 취지에 전혀 맞지 않는 엉뚱한 표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평등이 왜 문제에요, 성차별이 문제지. 성평등은 성차별이라고 고쳐야 합니다.”(ㄱ씨)

“다시 한 번 이번 일로 마음을 다쳤을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사과를 전합니다.”

동아제약은 성차별 면접과 관련된 사과의 대상을 ‘대한민국 청년들’이라고 호명했습니다. ㄱ씨는 이 호명이 잘못된 ‘물타기’라고 봤습니다. “이번 일로 마음을 다쳤을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사과를 전한다고, 마지막의 청년을 여성으로 고쳐야 합니다.”(ㄱ씨)

면접자의 불꽃 첨삭을 거쳐 새롭게 거듭난 ‘동아제약 사과문’ 전문은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동아제약 대표이사 최호진입니다.

동아제약은 2020년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 면접에서 여성 지원자에게 성차별에 해당하는 질문을 하고, 사건을 축소하려는 시도를 통해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자행하였으며, 공정성에 대한 사회의 신뢰를 배반하였기에, 피해자와 여성들께 사과를 드리고자 글을 올립니다.

당사는 2020년 11월 16일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 면접에서 피해자인 여성 지원자에게만 단독으로 직무와 관계없는 군 가산점 찬반 여부와 군 복무 의지를 묻는 질문을 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는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의 성평등 채용 안내서 기준과 국가인권위원회법 그리고 더 나아가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한 질문이었습니다. 더욱이, 군 가산점은 1999년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사는 위와 같은 질문을 통해 가장 공정해야 할 채용 면접에서 성차별을 자행하였고, 시간을 내어 면접에 참석하신 피해자께 소외감과 모욕감을 느끼게 하였으며, 공정성에 대한 사회의 신뢰를 배반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차별은 쾌·불쾌의 영역에 속할 수 없음에도 이를 ‘불쾌한 경험’으로 칭하여 여성들의 일상적 차별 경험에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해당 질문을 한 사람이 당사의 채용 최종책임자인 인사팀장이라는 점에서 이것은 조직적 차원의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면접관 한 명의 일탈로 칭하며 사건을 축소하려 한 사실이 있습니다. 더불어, 사과문을 당사 공식 계정이 아닌 유튜브 댓글로 작성하여 사건의 확산을 막기 위한 시도를 하였고, 언론에 사건과 관계없는 자료를 배포하고 기자에게 당사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기사를 요청함으로써 사건을 호도하고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자행하였습니다.

당사는 위 사항을 빠짐없이 전부 인정하며, 피해자께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하여, 이러한 문제의 재발 방지 및 조직 문화 개선을 위해 아래 일곱 가지를 약속드립니다.

첫째, 채용 성차별 해소를 위해 면접 매뉴얼 제작 및 면접관 교육 시 여성학 교수님께 자문을 구하겠습니다.

둘째, 채용 이후에도 사내 성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인사 제도를 점검 및 전면 개편함으로써 배치, 승진, 임금의 평등에 힘쓰겠습니다.

셋째, 수직적이고 보수적인 조직 문화 개선을 위해 기업 문화 컨설팅 업체에 당사를 의뢰하겠습니다.

넷째, 사내 성별 임금 격차에 관한 내용은 전수 조사를 통해 실태를 파악하고 금년까지 모두 동일 노동에 대하여 동일 임금을 지급하겠습니다.

다섯째, 그동안 피해자와 같은 여성들이 능력을 펼칠 기회를 고의적•의도적으로 박탈하였음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사과와 책임의 뜻으로 금년까지 여성 임원의 비율을 50% 이상으로 높이겠습니다.

여섯째, 현재 남녀 동수로 운영 중인 인권 위원회의 여성 비율을 80% 이상으로 늘리겠습니다.

일곱째, 매년 11월 16일을 자체 여성의 날로 지정하고, 여성 임직원들을 위한 행사를 기획 및 진행하겠습니다.

동시에, 당사는 늦게나마 본 사건의 심각성과 중대함을 깨달은 바, 인사팀장에 대한 징계는 기존 보직 해임 및 정직 3개월에서 해고로 변경하며, 징계 사유는 ‘면접 과정에서의 부적절한 언어 사용으로 인한 업무 태만, 회사 질서 문란 초래 및 직원 품위 손상’에서 ‘면접 과정에서의 성차별 자행으로 인한 회사 성장 방해’로 변경합니다. 또한, 언론에 사건과 관계없는 자료를 배포함으로써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자행한 홍보팀장을 보직 해임 및 정직 3개월의 징계에 처하겠습니다.

더불어, 당사는 <네고왕2>에서 재구매 가격의 2%를 저소득층 여성에게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드린 바 있습니다. 그러나 당사의 귀책사유로 인하여 재구매 비율이 낮아지고 기부액이 적어진다는 점에서, 당사는 이번 <네고왕2>에서 얻은 수익금 전액과 초기 예측했던 기부 금액을 변동 없이 그대로 기부하겠습니다. 또한, 앞서 말씀드린 내용은 전부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정기적으로 게시하여 알리겠습니다.

당사는 가장 공정해야 할 채용 면접 과정에서 성차별을 자행함으로써 공정성에 대한 사회의 신뢰를 배반하고, 여성용품 사업을 전개함에도 여성의 삶에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여, 이러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반성의 기회를 주신 피해자께 감사의 말씀을 드림과 동시에,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보다 성평등한 기업으로 거듭나겠습니다.

이번 일로 심한 모욕감을 느끼셨을 피해자와 허탈감을 느끼셨을 대한민국 여성들께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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