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으로 인생역전?.."2030, 단지 쪼들리지 않고 싶을 뿐"

서정원 2021. 4. 1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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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달까지 가자' 출간..장류진 소설가 인터뷰
코인투자 붐일던 2017년 배경
입사동기 3인의 생생한 투자
코인밖에 답없는 2030의 삶
"소설에선 돈 벌어 해피엔딩"

※ 소설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장편 `달까지 가자`를 낸 소설가 장류진 [사진 제공=ⓒ강민구]
우리 시대 '눈 밝은' 작가들을 거명할 때 소설가 장류진(35)은 빠지지 않고 꼽힌다. 2030 생활인들의 삶을 엑스레이 찍듯이 그려낸 단편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2018년 등단 때부터 또래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왔던 터다. 당시 출판사 사이트 기준 조회 수만 40만 건이 넘어 한때 홈페이지가 다운됐을 정도다. 한여름 할인가 2000원의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4500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 사이에서 고민하고, 친소관계에 따라 축의금 몇 천원 단위까지 더는 주인공들 계산법에 "내 얘기다"며 공감한 독자들은 장류진을 '하이퍼 리얼리스트'라고 부른다. '보건교사 안은영' 작가 정세랑도 "장류진을 따라 하고 싶은 사람은 많겠지만 아무도 따라 하지 못할 것이다"라며 상찬한다.

아직 신참 축이지만 이미 존재감만큼은 거물인 장류진이 첫 장편 '달까지 가자'(창비)를 냈다. '지금 그리고 우리'를 예리하게 포착하는 이답게 요즘 가장 핫한 투자수단인 '암호화폐'를 소재로. 1차 투자 붐이 일었던 2017~2018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았다. 제과회사 입사동기인 은상·다해·지송이 암호화폐 '이더리움'에 투자하며 인생역전을 노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초롱초롱한 빛나는 눈으로 과연 이번엔 어떤 리얼리즘을 담아냈을지. 지난 14일 서울 서교동 창비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보통 이런 얘기는 망하면서 끝나잖아요? 분수에 맞지 않게 욕망하고 탐냈다며 벌 받는데, 제 소설에선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월급날만을 기다리며 '누가 백만원만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던 제 20대 시절도 많이 떠올랐고요. 또 실제 제 돈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키보드만 놀리면 되니까(웃음)"

등장인물들은 적나라한 욕망을 드러내지만 이 모습이 과히 밉지만 않다. 자본소득이 근로소득을 아득히 앞지르며 노동만으론 '내 집 마련'조차 어려운 시대, 최고위험·최고수익 자산인 '코인'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요즘 청년들이 겹쳐 보여서다. 은상·다해·지송은 그 중에서도 '비공채 출신'으로 각종 차별과 빈곤에 시달리는 하층노동자다. '우리 같은 애들'이라며 스스로를 자조하는 이들이 코인을 매개로 연대할 때 투자는 단순한 '물욕'이 아니라 치열한 '생존투쟁'으로 승화한다. 장 작가는 "한 100억 쯤 벌어서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것도 아니고, 단지 너무 쪼들리고 매달리며 일하고 싶지는 않다는 게 MZ 세대 소망"이라며 "나와 내 또래들에게 힘들 때 버팀목이 돼 줄, '떡두꺼비 같은' 3억원씩은 주고 싶었다"고 했다.

초창기 '내면의 진정성이 없다'며 한국문학의 전통에 비껴서 있다는 평을 받았던 작가는 이 작품에서 냉철한 사회 인식과 입체적 인물상을 보여주며 반박한다. 코인 투자에 줄곧 반대했지만 결국엔 자신도 합류하는 '지송'을 통해서다. 코인 얘기가 싫어 단체대화방을 나가고, 여행 가서도 이 문제로 일행과 싸웠던 지송은 여행지에서 '가짜 돌탑'을 본 뒤 변심한다. 노력으로 정교하게 쌓아올린 줄 알았지만 사실은 시멘트로 돌들을 덕지덕지 붙인 돌탑을 목도하며 한국 사회와 그 안에서 자기 위치가 떠올라서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서 한땀 한땀 쌓아올려서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는 원칙적으로만 맞는 말이죠. 누가 시멘트로 붙여줘야만 자기 탑을 높이 쌓아올릴 수 있는 게 현실이 아닐까요."

전작 때부터 돋보였던 장류진 특유의 디테일도 여전히 빛난다. 각 장마다 날짜가 표시돼 있는데 이때 실제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원' 시세를 작품 속 이더리움 가격에 그대로 반영하기 위한 장치다. 또 팀장의 잔소리가 싫어 점심시간 끝나기 5분 전에 귀사하면서도, 'Ctrl+W'(탭 닫기), 'Ctrl+Shift+T'(닫은 탭 다시열기) 등 단축키를 활용하며 농땡이를 피우는 장면 등은 그의 10년 회사생활과 지인들 삶에서 길어왔다.

2019년 전업작가 전향 전까지 장류진은 판교의 IT 기업에서 서비스 기획자로 근무했다. 회사 일에 충실하고 만족하면서도, 쓰고 싶은 욕망을 주체할 수 없어 주말이면 문화센터를 찾아 소설 작법을 배우며 꾸준히 연마했다. 그는 글쓰기가 내면에 가득한 생각들을 배출하는 '숨구멍'이라고 했다. 물을 끓일 때 폭발하지 않도록 뚜껑에 조그만 틈을 내주듯이 말이다. "쓰고 싶은 게 참 많아요. 책에 대해서도 쓰고 싶고, 어릴 때 얘기도 있고요. 소재 걱정은 없답니다. 하하"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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