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쉴 권리' 부상+질병 때 받는 '상병수당' 도입 논의 시작

김지훈 2021. 4. 1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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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수당 제도기획 자문위원회 1차 회의 개최
정부·기업·노동계·전문가 모여 올해 9차례 회의
올해 시범사업 모형 설계, 내년 저소득층 대상 시범사업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을 지나 출근하고 있는 시민들. 사진 연합뉴스

아파도 쉴 수 없는 나라에서 ‘아프면 쉬는 나라’로 가기 위해 필수적인 제도로 꼽히는 ‘상병수당’ 도입을 두고 사회적 대화가 시작됐다. 전문가들은 제도 기획 단계부터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와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등에 대한 보완책을 논의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15일 서울 중구 엘더블유(LW)컨벤션센터에서 ‘한국형 상병수당 도입 논의를 위한 상병수당 제도기획 자문위원회 1차 회의’를 열었다. 올해 모두 9차례 열릴 자문위에선 상병수당의 운영방식과 재원조달 등 여러 주제를 두고 정부와 노동계, 경영계, 보건복지 전문가들이 모여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상병수당은 ‘부상’과 ‘질병’을 합쳐서 만든 용어로, 노동자가 업무와 관계없는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해 경제활동이 불가능한 경우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소득 손실을 보전하는 사회보장제도다. 그동안 한국은 질병이 발생하면 국민건강보험으로 의료 서비스는 제공했지만, 아파서 쉴 때 소득을 보장해주는 상병수당은 없었다. 현재 산업재해 보험은 업무상 질병을 얻었을 때 재해보상 등을 지원하고, 고용보험은 실업으로 일을 하지 못하게 됐을 때 실업급여 등을 지원한다. 하지만 상병수당은 업무와 무관하게 아파서 일을 못 할 때 받는 소득 지원이란 점에서 차이가 크다.

상병수당은 1883년 독일에서 최초로 도입돼 대부분의 유럽 복지국가들에선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제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가운데 한국과 미국을 빼곤 모두 시행한다. 한국은 1999년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상병수당 지급의 법적 근거를 명문화했지만 아직도 시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닥친 코로나19가 논의를 위한 분수령이 됐다. 몸 상태가 안 좋으면 쉬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선 제도의 폭넓은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아파도 당장의 소득 때문에 일하러 나가야만 한다면 감염병의 사회적 확산을 막을 수 없다.

이에 지난해 7월 문재인 정부에서 발표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 상병수당이 포함됐다. 이어 지난달부터 시범사업 모형을 설계하는 연구용역에도 들어갔다. 이 연구를 바탕으로 내년에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변성미 상병수당 태스크포스(TF) 팀장은 이와 관련해 “앞서 장기요양보험을 도입할 때는 3년간 시범사업을 거쳐 제도를 도입했는데 이를 참고해서 사업 기간을 설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에선 상병수당 도입이 필요한 이유로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의료비 지출 여력이 생기고 노동 능력 상실로 인한 빈곤층 전락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기업 관점에서도 아픈 노동자가 무리하게 참고 일하느라 발생하는 노동생산성 손실을 막고,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유행할 때 사업장 내 전파를 방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자문위에선 △재원 조달 방법과 대상자 선정 △보장 기간과 급여 수준 △보장 질환 범위와 인증 체계 △사후관리 등을 주요 과제로 두고 논의를 해나갈 예정이다. 변성미 팀장은 “앞으로 사회보험 도입을 둘러싼 쟁점으로는 재원을 조세와 사회보험 어느 쪽으로 할 것인지, 대상을 전체 근로자로 할지 임금 근로자로 할지, 유급병가와 연계할 것인지 유급병가 없이 상병수당으로 포괄할 것인지 등이 꼽힌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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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불안정 노동자 대책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아직 정부안이 나오지 않은 만큼 전반적으로 고려해야 할 점부터 당부하고 나섰다.

먼저 불안정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다. 5인 미만 사업장 등에서 일하는 불안정 노동자의 경우 몸이 아파서 일정 기간 쉬려고 하면 해고를 당하거나 스스로 그만두기를 요구받는 경우가 빈번하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지만, ‘업무상 부상 또는 질병의 요양을 위해 휴업한 기간과 그 후 30일 동안은 해고하지 못한다’는 조항 등은 시행령으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도 적용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이 조항도 ‘업무상 부상 또는 질병’이기 때문에 상병수당 운용과는 거리가 있다.

게다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 휴직, 정직, 감봉, 그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는 조항을 적용받지 못한다. 자문위원인 김인아 한양대 보건대학원 교수(직업환경의학과학교실)는 “근로기준법상 연차 적용도 안 되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를 포함해 불안정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근로기준법에 해고금지 조항을 넣는다거나 법정 병가를 신설하는 등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상병수당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 국회에 상정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남재욱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코로나19를 계기로 부각된 상병수당 도입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선 특수고용직 같은 비임금근로자와 비정규직을 제도 안에 포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도입 초기부터 보호할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급병가 제도와 연계 없이 상병수당이 도입되면, 기업들이 유급병가를 없애고 재원을 다른 사내 복지로 돌리는 단체협약을 맺을 가능성이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아직 구체화한 부분이 많지 않아 평가는 힘들지만, 적용 범위를 넓게 하겠다는 의지는 높이 평가한다”며 “다만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을 연계하면 사용자 쪽이 재정 부담을 이유로 제도를 수용할 가능성이 작아질 수 있어, 유급병가와 연계할지 아니면 고용보험 방식으로 할지 잘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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