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탐사K] 압구정 현대아파트 경비원의 '과로사'..취재중에도 사망 소식

유호윤 2021. 4. 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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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억 원 신고가 돌파' 압구정 현대아파트 … 경비원들에게 무슨 일이?

아파트 거래 가격이 최고가를 갈아 치울 때마다 기사화되는 아파트가 있다. 압구정 현대 아파다. 70년대 강남 개발의 상징인 주거 단지다.

최근 재건축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전용면적 245.2㎡(80평) 1채가 80억 원에 거래됐다. '평당 1억', 신고가 경신이라고 또다시 언론에 떠들썩하게 오르내렸다.

이 아파트가 다른 이유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경우가 있다. 바로 ' 경비원' 문제다.

2014년 10월,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주차장에서 경비원이 분신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분신한 이유는 주민의 비인격적 대우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2018년 2월에는 압구정 구현대아파트 경비원들이 입주자 대표회의를 상대로 체불임금 청구 소송을 냈다. 무급인 휴게시간 6시간 동안도 사실상 일을 해야만 했으니 임금을 제대로 달라는 주장이었다.

경비원들은 1심에서 패소했지만 지난달 항소심에서 일부 승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경비원들의 휴게 시간 중 근로 사실을 인정하고, 총 7억 3,70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아파트 측은 항소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앞 공인중개사 사무소

■ 새벽 퇴근 중 쓰러진 경비원 김 모 씨…"과로사 승인"

KBS 탐사보도부는 지난해 12월부터 경비원 과로사 취재를 시작했다. 초소를 지키는 '한가로운 일'로 인식되는 것이 경비업이지만, 뜻밖에 경비원 과로사 숫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취재에 착수한 것이다.

취재진이 기본소득당 용혜인 국회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근로복지공단 자료를 보면, 경비원 과로사 규모는 2018년~ 2020년까지 3년간 모두 74건으로 확인됐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과로사'로 승인한 건수로, 전체 과로사 발생 직업군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수치였다.

과로사 경비원의 근무지 가운데는 압구정 구현대아파트도 있었다 . 지난해 3월 58살 김문혁(가명) 씨가 과로사했다. 김 씨는 '휴게 시간에도 주차 관리나 분리수거, 민원 등 잡무를 해야 해 제대로 쉬지 못했다'며 아파트를 상대로 체불임금 소송을 진행 중이던 경비원 중 한 명이었다.

김 씨는 10년 넘게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했다. 그는 지난해 3월 22일 새벽 6시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일한 뒤 퇴근길에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

몸이 좋지 않다며 아내를 불러, 아내가 운전하는 차에 탄 채 쓰러졌다. 곧장 병원 응급실로 향했지만 결국 숨졌다. 사인은 '급성 심근 경색'이었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지난해 8월, 김 씨의 죽음을 업무의 영향을 받은 '과로사'로 판정했다.

김 씨는 간암, 폐동맥고혈압 등 지병을 앓긴 했지만 '기존 질환의 자연적 경과를 넘어 급격하게 악화시켜 급성 심근경색이 발병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업무와 상당한 인과 관계가 인정된다'는 게 판정위원들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 휴게시간 하루 11시간이라더니 … 김 씨는 왜 과로사로 내몰렸나?

아파트 경비원은 대부분 24시간 교대제 형태로 근무한다. 24시간을 일하고 24시간을 쉰다. 주말 휴일 없이 '근무-휴일'이 쳇바퀴 돌듯 반복된다.

경비원은 근무일에 24시간 동안 일터에 머무는 대신, 휴게 시간이 길다.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과로사한 김문혁(가명) 씨도 근로 계약서상 휴게시간은 11시간이었다. 2017년에는 휴게시간이 점심과 저녁 식사 시간 2시간에 수면시간이 4시간이었다.

하지만 2018년 계약서상 휴게시간이 6시간에서 11시간으로 늘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관리비 부담을 덜기 위해 무임금인 휴게시간을 늘린 것이다. 전국 아파트 단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김 씨는 계약서상 휴게 시간이 늘어난 만큼 실제 휴식을 할 수 있었을까? 과로사 심의 과정에서 근로복지공단은 김문혁(가명) 씨의 1일 휴게시간은 11시간이 아니라 4시간이었다고 판단했다.

큰 이유는 입주민들의 주차 문제로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기 힘들었다는 것이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주차 공간이 매우 협소해 이중, 삼중 주차를 하는데 안쪽 차량이 나갈 때 경비원들이 이중 주차된 차를 직접 운전해 주차 관리를 한다.

또 빈 공간이 생기면 이중 주차 차량을 옮겨 놓는 등 주차 관리는 경비원 업무의 핵심이다. 운전면허가 없으면 경비원으로 취업할 수 없고 경비 초소 한쪽에 입주민 차량 키 보관함이 설치돼 있을 정도다.

압구정 구현대아파트 주차장 모습


수면 시간에도 제대로 잠을 자기는 어려워 보였다. 근로복지공단 재해조사 담당자는 해당 아파트에 별도의 경비원 휴게실이 있긴 했지만, 정작 김 씨는 초소에서 쪽잠을 자는 등 수면 환경이 열악했다고 지적했다.

취재진이 직접 야간에 아파트를 돌아보니, 경비원들은 초소 안에 직접 만든 침상에 눕거나 의자에 앉아 잠을 청하고 있었다. 별도의 휴게실은 근무자 전원이 이용하기엔 공간이 좁았다. 실제로도 경비반장 1명만 쓰는 것으로 파악됐다.

■ "경비원이 또 죽었습니다"…취재 중 또 사망 소식

김문혁(가명)씨 과로사 취재가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2월 15일, 압구정 현대 아파트에서 일하던 60대 초반 경비원이 또 사망했다. 퇴근 후 집에 가서 샤워하다가 의식을 잃었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급성 심정지로 인한 사망이었다.

심장에 이상을 느낀 만큼 과로사 가능성이 있었다. 취재진은 빈소를 찾아가 유족을 만났다. 유족은 취재 요청을 거부했고 과로사 승인 신청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절차를 진행할 여유가 없다며 고인의 죽음을 조용히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1년 동안 2명의 경비원이 갑자기 사망한 것이다.

하지만 경비원들의 근로여건은 달라지지 않았다. 과로사로 주인이 떠난 초소엔 새로운 얼굴의 경비원이 힘겨운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잠을 자고 있었다.

경비초소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경비원


압구정 현대아파트 관리사무소는 경비원에 대한 관리 업무는 용역회사가 맡고 있으며 경비원들의 휴게 시간은 정확히 지켜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용역업체는 경비원들에게 휴게 시간에는 업무를 맡기지 않는 등 제대로 된 휴식이 보장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다고 답했다.

KBS는 오늘(15일)부터 사흘간 KBS <뉴스9>를 통해 경비원 과로사 문제를 보도한다. 오는 18일(일) 저녁 9시 40분에는 <시사기획 창 - 그림자 과로사, 경비원 74명의 죽음>을 통해 전국 경비원 과로사 실태를 집중적으로 분석할 예정이다.

유호윤 기자 (liv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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