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승리선언' 없이 철군.."아프간전은 결국 실패한 전쟁"

김용래 2021. 4. 15.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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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 "역대 미 정권들, 승리 약속만 있었고 비전 없어"
안보전문가들, 내전 격랑 우려.."철군, 중대한 과오" 지적도
2009년 아프간에서 작전하는 미 해병 장병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개시한 조지 W. 부시 대통령부터 철군을 결정한 도널드 트럼프, 조 바이든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미국 정부들이 항상 '승리'를 공언했지만, 모호한 수사만 남긴 채 아프간전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철군하게 됐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을 수행하며 대규모 병력과 물자를 투입했지만 미국이 결국 '빈손'으로 철군하게 되면서 아프간에서는 지금까지와는 수준이 다른 거대한 내전의 격랑이 몰아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미국의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15일 온라인판 분석 기사에서 "승리의 약속들만 있었고 승리를 위한 비전은 없었다"며 미국의 전 행정부들의 아프간 전략을 비판했다.

미국 대통령들은 9·11 테러 이후 아프간 전쟁을 개시하고 이끌어오면서 "승리하겠다"는 공허한 말만 되풀이했을 뿐, 어떤 것이 승리인지를 규정하지도 않고 국민에게 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WP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의 최초 목표는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궤멸, 그리고 아프간을 미국 본토에 대한 다른 테러공격의 근거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전쟁을 개시한 지 6개월 만에 미군은 알카에다의 지도부를 소탕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지만, 종전선언 대신 부시 대통령은 아프간 파견군의 임무를 대규모로 확대했다.

2002년 4월 부시는 아프간에 안정된 민주주의를 수립하고, 강한 상비군을 정비하는 한편 공교육과 의료체계를 확립하는 등 '국가 현대화'를 아프간 내 동맹 세력을 도와 이루겠다고 발표했다.

부시 대통령은 당시 연설에서 "아프간인들의 열망을 달성할 수단을 그들에게 제공할 때에만 우리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서도 군대를 이런 임무가 완수될 때까지 주둔시키겠다고 공언했다.

후임자인 오바마와 트럼프 대통령도 부시처럼 군사적 승리를 약속하면서 승리가 과연 어떤 것인지 규정하는 것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고, 이에 따라 아프간전의 종반부는 불확실한 상태였다고 WP는 지적했다.

2013년 아프간에서 작전하는 미 육군 장병들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런 상황에서 탈레반은 2006년까지 아프간에서 꾸준히 전열을 정비하며 게릴라전의 강도를 높였고, 미국의 아프간전 승리에 대한 확신은 계속 축소되어 갔다. 전황이 좋지 않은데도 국방부와 군사령관들은 속으로는 전전긍긍하면서도 겉으로는 늘 승리를 공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나아가 취임 직후인 2009년 3월 수천 명의 추가 파병과 대규모 예산 투입을 발표한다. 이때도 "테러 집단에 승리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어떤 것이 승리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WP는 특히 오바마 행정부가 아프간전과 관련해 모순적 행태를 보였다고 비판한다.

정부에서는 명백한 군사적 승리를 거두기 어렵고 정치적 해법만이 유일한 실용적 해법이라는 얘기가 나왔지만, 현지의 사령관들은 외교적 해법보다는 탈레반에 대한 군사적 승리에 치중했고, 그에 따라 병력이 10만명 수준까지 늘었다.

그러나 전황이 계속 나빠지자 '승리' 얘기는 쑥 들어가 버리고 오바마는 재선 임기 말까지 완전 철군을 약속했다가 이를 또 번복해버렸다.

오바마 재임 8년간 탈레반의 병력은 6만 명으로 늘었고, 아프간군은 전사자가 너무 많아 사기 유지를 위해 사망자 수를 비밀로 해야 했다고 WP는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프간 철군을 발표하긴 했지만, 그 조건은 역시 '승리'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아프간 파병 규모를 1만4천명까지 다시 늘리고 유례없는 대규모 공습을 통해 평화협상에서의 유리한 고지를 노렸고, 결국 미국은 작년 2월 철군을 탈레반과 합의했기에 이른다.

미국에서는 바이든 행정부의 발표대로 오는 9월까지 완전 철군을 마치면 미국의 최장기 전쟁인 아프간전이 결국 대실패로 귀결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컬럼비아대 스티븐 비들 교수는 미군이 철수하면 알카에다가 아프간에서 다시 자리잡을 수 있다면서 그동안 미국이 육성해온 아프간군이 붕괴해 1990년대보다 더 심각한 내전의 수렁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현재 상황보다 훨씬 더 나쁜 인도주의적 재앙이 될 것"이라고 AP통신에 밝혔다.

안보 전문가 데이비드 앤들먼도 CNN 온라인판 칼럼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철군 확정은 중대한 과오라고 주장했다.

그는 "아프간전을 시작한 이유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면서 "원래 있던 테러위협도 거의 없애지 못한데다가 미군의 개입 이후 생겨난 다른 위협들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yonglae@yna.co.kr

14일 백악관에서 아프간 철군 계획을 발표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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