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위험 사회'와 거리두기

노주섭 2021. 4. 1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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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 교수가 그의 명저 <위험사회>를 통해 남긴 유명한 말이다.

산업화가 가져온 물질의 풍요는 빈부 격차에 따라 차등적으로 제공되지만 기후변화의 위기와 자연재해, 환경오염 등 현대사회의 위험요소는 매우 일상적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그가 성찰과 반성이 결여된 채 성장 우선주의를 외치며 질주해온 현대사회를 '위험 사회'로 규정한 이유다. 울리히 벡의 이론은 고속 성장 부작용이 잇달아 터져 나왔던 1990년대 더욱 주목받았다. 낙동강 페놀 오염사고,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등 대규모 인명피해를 낳은 비극적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로부터 약 30여년이 흐른 지금, '스모그는 민주적'이라던 올리히 벡의 명제가 더욱 직접적이고 명료하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따뜻한 봄날 야외 나들이를 가기 전에 가장 먼저 초미세먼지 농도부터 확인해 봐야 할 정도로 심각해진 대기오염 탓이다. 편서풍을 타고 넘어오는 강력한 황사로 인해 탁한 공기의 주범으로는 늘 '대륙'이 꼽힌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를 삼면으로 둘러싸고 있는 바다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다. 실제로 2019년 부산연구원이 분석한 부산 지역 미세먼지 농도 실태에 따르면 선박과 화물차량, 항만 하역장비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의 2차 생성물질이 부산 전체 미세먼지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비단 부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 주요 해안도시의 전체 미세먼지 중 선박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는 목포 59.3%, 시흥 49.3%, 거제 42.7% 등으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바다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 역시 대기오염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방증이다. 선박 연료에서 발생하는 황산화물(SOx)과 질소산화물(NOx)은 천식과 같은 호흡기계 질병을 악화시키고 폐 기능을 저하시키는 유해물질이기에 그 여파가더욱 우려스럽다. 청정한 하늘을 되찾고 건강한 공동체를 위한 우리의 실천이 육지 뿐 아니라 당장 바다에서도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정부가 생활, 수송 등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대기오염 감축을 위한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시행과 더불어 LNG(액화천연가스), LPG(액화석유가스) 등을 연료로 사용하는 친환경 선박 개발과 보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남해지방해양경찰청은 이같은 범정부적 노력에 발맞춰 2019년부터 선박 연료유의 황 함유량 사용기준 준수여부에 대한 단속을 실시하고, 위반행위 39건을 적발해 개선조치를 하는 등 대기오염의 주범인 황산화물을 줄이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올해는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가 주관하는 해양환경 규제 위반행위 특별단속에 동참해 바다 환경의 파수꾼으로서 깨끗한 바다를 위한 국가 간 협력에도 힘을 보탤 계획이다.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성찰적 근대화'를 제시했다. 인간의 삶과 안전, 그리고 행복을 고려한 발전 방식인 '성찰적 근대화'를 이룩하는 힘은 결국 사회 구성원들의 합리적인 유대와 꾸준한 단결이다.

대기오염 문제의 해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 각종 친환경 정책을 마련하고 단속과 규제를 강화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의 행복을 위한 실천이다. 선박으로부터 비롯되는 공해를 방지할 수 있도록 항만에 정박할 때에는 육상전원공급장치(AMP)를 사용해 불필요한 선박엔진 공회전을 자제하고 정기적으로 연료유 필터를 점검하는 등 해양종사자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해양경찰도 해양종사자, 관계기관과의 간담회 등을 통해 대기환경 개선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한편 해양공간에서의 미세먼지 저감 방법 등을 적극 홍보함으로써 국민의 안전한 일상을 만들어 나가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다.

해양환경을 위한 끈끈한 민·관 협업과 사회적 연대가 꾸준히 이어진다면 다소 더딜지언정 따스한 봄날의 하늘은 조금씩 본연의 색채를 조금씩 되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를 할퀴었던 '위험 사회'는 이제 마주하지 않을 때도 됐다.

서승진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

roh12340@fnnews.com 노주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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