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공포'부터 '불가리스'까지, 코로나19 보도의 '두 얼굴'
‘불가리스’ 때문에 이틀간 꽤 시끄러웠다. 남양유업의 발효유 제품인 불가리스에 코로나19 바이러스 억제 효과가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질병관리청이 이를 반박하는 기사가 이어지고, 이 때문에 남양유업 주가가 급등락하면서 주가 조작 논란까지 제기됐다.
최초 보도는 뉴시스였다. 뉴시스가 첫 보도에 이어 종합 기사를 내자 다른 언론들도 남양유업 측의 주장을 그대로 제목으로 뽑은 기사를 쏟아냈다. 연합뉴스, 조선일보, 서울신문 등 주류 언론들이 가세하면서 확산은 더 빨라졌다. 인체 대상 실험이 아니므로 효능을 입증할 수 없다는 질병청의 반박자료가 나오기 전까지 그랬다.
뉴시스 보도는 코로나19 기사가 아닌 산업 기사로 분류됐다. 때문에 남양유업 연구원 측에서 설명한 연구 방법 등에 대해 당연히 가졌어야 할 ‘왜?’라는 질문이 생략됐고, 결과적으로 많은 혼란을 초래했다. 이를 그대로 따라 쓴 다른 언론도 마찬가지다. 김준일 뉴스톱 대표는 “작은 언론사도 통신사와 전재 계약을 맺거나 (기사를) 보고 있기 때문에 통신사가 쓰면 취재 안 하고 받아쓴다”며 “통신사들이 이 혼란스러운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은 항상 잘못해왔다. 팬데믹에도 변하지 않았을 뿐’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가 공동 주최한 ‘코로나19 보도 점검’ 토론회가 15일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 공동 주최로 15일 열린 ‘코로나19 보도 점검’ 토론회. 이날 부제가 ‘미디어와 백신: 방역과 방해 사이’로 정해진 것에서 보듯 언론은 방역 상황에서 종종 ‘방해꾼’ 취급을 받는다. 앞서 언급한 불가리스 보도는 한 예일 뿐이다. 지난해 한국기자협회 등 주도로 제정된 감염병 보도준칙을 지키지 않는 기사는 포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임동준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모니터팀장은 “팬데믹에도 변하지 않는 언론”에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이상 반응에 대해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전문가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인데, 언론은 서둘러 속보를 쓰고, 성급히 제목을 뽑는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가 “너무 야속할 정도”라고 한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메르스 때) 보도보다는 훨씬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조동찬 SBS 의학전문기자는 말했다. 다만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보도를 하고 있는가, 취재원이 다양한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조 기자는 덧붙였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사태를 당장이라도 끝낼 것 같던 신약 관련 보도, 그리고 자가 진단 키트에 대해 엇갈리는 전문가 의견. 조 기자는 “보도는 물론 전문가 발언에도 마찬가지로 의구심이 든다”며 “이해관계에 대해 조금 더 명확히 떨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선 획일적인 취재원에서 벗어나야 한다. 조 기자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은 20대의 혈전 신고 사례가 나온 날, 대부분의 보도가 백신과 관련 없다고 나갔다. 우리도 그렇게 보도하려고 했는데, 언론에 잘 등장하지 않는 우리나라 백신 최고 전문가가 저한테 보내 준 논문을 보고 ‘드물긴 하지만 가능성이 있겠구나’ 싶어 그날 리포트 중에 정상적 면역반응으로 (혈전이) 생길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결과적으로는 그 전문가의 의견이 맞지 않았나. 그럼에도 백신 접종의 사회적 이득이 크니까 맞아야 하지만, 성급하게 (백신 때문이) 아니라고 해서 더 불신을 부추긴 게 아닌가 반성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김준일 대표도 “전문가 풀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정재훈 교수는 하루 50통씩 기자들의 전화를 받고 있다고 말했는데, 김 대표는 “정상적이지 않다”며 “저분의 관점이 틀렸다기보다 다양한 관점이 있기 때문이다. 언론이 습관적으로 말 잘 해주는 사람에게 전화를 많이 하는데, 이건 언론이 게으른 것”이라고 말했다.
‘백신 보도’ 불안을 부추기는가, 위험성을 경고하는가
의사이면서 기자인, 두 가지 정체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조 기자는 백신 보도와 관련한 현실적인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고 사망한 사례가 나왔을 때, 정말 위기라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중요한 사람을 인터뷰해서 관련 없음을 보도해야겠다, 이게 독감 백신 접종률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는 생각에 (리포트) 두 꼭지를 준비했다. 설령 만약 백신 부작용이라 하더라도 이득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보도했다. 댓글을 보니 100% 악플이었다. ‘너네 그럴 줄 알았어. 기저질환 탓이라고 할 줄 알았어’, ‘아니라고 할 거면서 왜 조사하냐’ 이러는데 답을 못하겠더라.”
조 기자는 “무엇을 잘못했나 반성했는데, 아직 결론을 못 내렸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국민이 이런 정보를 알면 불안해하거나 혼란스러워할 거라고, 우리가 너무 지나치게 걱정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있는 그대로 보도하면 기자와 똑같이 ‘이 정도면 위험성이 확실하지 않네, 맞는 게 이득이네, 지켜봐야겠네’ 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데, 국민 수준을 애당초 낮춰 봐서 이런 게 아닐까, 지금 그 고민을 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가 공동 주최한 ‘코로나19 보도 점검’ 토론회가 15일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이나연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경제 기사를 예로 들어 “위기를 부추기는 거냐, 경고하는 거냐, 이건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경제는 심리라고 하는데, 언론이 부정적이고 위축되는 기사를 쓰면 경제 위축을 부추긴다는 비난을 받지만, 반대로 경제 위기에서 충분히 경고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논문도 많다”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해 처음에 위험이 전혀 없다고 보도하는 게 맞았느냐, 그건 아닐 수도 있다. 어려운 문제인데, 비용과 효과 개념이 우리 머릿속에 항상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키워드로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언론의 아젠다 세팅이 국민에 회자하고 이어지는 경향이 확인됐다고 설명하며 “이런 상황을 볼 때 언론의 방제 기능, 공익적 기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백신 관련 작전은 종합작전이 아니면 (코로나19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며 “같이 합심해야 하고, 그 첨병 역할을 언론이 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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