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조원 평가 카뱅, 혁신보다 규제 특혜 값?
[편집자주] '카카오식 혁신'이 시험대에 올랐다. 5000만 국민이 활용하는 카카오톡이라는 압도적 플랫폼을 앞세워 다양한 산업군으로 공격적 확장에 나서는 가운데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온다. 이른바 '갑카오' 논란이다. 카카오모빌리티의 유료화에 택시업계가 반발하는 게 대표적이다. 금융권에서도 카카오페이·카카오뱅크 등이 기존 업권과 충돌하고 있다. 혁신기업으로 주목 받아온 카카오가 본격적인 포식성을 드러냈다는 평가와 함께 카카오 경계령도 커졌다. 카카오의 사업확장 과정에서 빚어진 마찰상과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을 들어본다.
장외시장 시가총액 34조원. 월 순수 이용자 수(MAU) 1위. 은행권 ‘메기’ 카카오뱅크가 올린 기록이다. 하지만 인터넷전문은행의 설립 목적과 명분에 비춰 볼 때 취지를 살리지 못한 ‘절반의 성공’이란 평가다. 바꿔 말하면 ‘절반의 실패’다. 금융업 본질보다는 플랫폼 면에서 혁신을 이뤘지만 금융상품과 서비스에서의 혁신은 미흡했던 탓이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2019년 1월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을 시행하면서 ‘금융혁신과 은행업의 건전한 경쟁, 금융소비자의 편익 증진’을 목적으로 내세웠다. 국회를 설득해 특례법까지 제정한 명분은 ‘중금리대출 활성화와 이를 통한 포용금융 확대’였다.
카카오뱅크는 ‘금융소비자의 편익’ 면에서는 진전을 이뤄냈다. 간편하고 직관적인 서비스로 소비자에게 신세계를 열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패턴, 숫자 비밀번호 인증은 기존 은행이 시도조차 못한 로그인 방식이었다. 단순한 화면 구성을 선보인 점도 복잡한 은행업무에 지친 소비자를 유인할만 했다. 기존 은행들도 ‘카뱅 따라잡기’에 나서면서 소비자 편의성이 덩달아 좋아졌다. 카카오뱅크는 이런 점에서 기존 은행과 달랐다. 하지만 각종 규제에 얽힌 은행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이러한 플랫폼, IT(정보기술) 면에서의 혁신 말고 상품군 구성, 서비스 등 금융업의 본질적 측면에서는 기존 은행권과 차별점이 뚜렷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는다. ‘금융혁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소비자 편익을 끌어올린 건 분명하지만 아직 은행이라고 하기엔 한계가 있다”며 “이제는 기존 은행 앱과 기능 면에서 차이도 없다”고 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카카오뱅크는 등장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예·적금, 대출 등 상품군이나 서비스 면에서는 기존 은행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은행업의 건전한 경쟁’이란 점에서 첫 단추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는 게 기존 은행의 시각이다.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하는 거대한 플랫폼, 넓은 고객 저변, 막강한 캐릭터 자산이 있었기에 고객을 단숨에 끌어모았고, 여기에 당국의 규제 특혜가 더해져 독주체제가 가능해졌다.
금융당국은 규제 특혜를 준 취지와 달리 중저신용자를 외면하고 고신용자를 우선한 것에 대해 불만이 많다. 카카오뱅크는 지난해 1조3800억원의 중금리대출을 취급했다. 전체 대출(20조3133억원)의 6.79%에 해당한다. 전년의 경우 중금리대출 규모는 9800억원으로 총대출(14조8803억원) 대비 6.59%였다. 카카오뱅크가 기존 은행과 마찬가지로 고신용자 대출을 주로 공급한 것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금융감독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카카오뱅크 신용대출에서 신용등급 1~4등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건수 기준 93.59%, 금액 기준 98.46%로 압도적이었다. 5~6등급의 비중은 건수 기준 5.54%, 금액 기준 1.37%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혁신적 신용평가 모델로 다른 영업방식을 기대했던 금융당국이 칼을 빼 들 수 밖에 없었다. 금융위원회는 인터넷전문은행이 중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확대하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대출 계획과 현황을 주기적으로 점검해 개선점을 찾기로 했다. 금융위는 카카오뱅크에서 받은 계획서를 토대로 피드백을 내놓을 예정이다. 권대영 금융위 금융산업국장은 “인터넷전문은행이 중금리대출 면에서 상당히 미흡하다고 보는 게 정부의 판단”이라며 “이제는 기본적인 체계를 갖췄기 때문에 올해부터는 집중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카카오뱅크는 중금리대출 확대를 약속하면서 대출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고 있다. 지난 2월 고신용자 신용대출 최저금리를 0.34%포인트 올린 반면 카카오뱅크 자체 신용에 따른 중신용대출 금리는 최대 0.6%포인트 내리기로 했다. 하반기 중저신용자 전용 상품 출시를 준비하면서 자체 신용평가 모델도 고도화하고 있다. 윤호영 대표는 “지난해와 비교해서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혁신적 신용평가 모델로 기존 시중은행과 차별화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늦어질수록 혁신의 속도보다 특혜의 속도가 빨랐다는 비판을 정부도 뒤집어 쓸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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