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인사이트] 4번째 '고난의 행군'의 의미

서재준 기자 2021. 4. 1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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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고난의 행군' 발언 두고 "또 기근" 예상 나오기도
총련 "인민 아닌 당과 일꾼들에게 주문한 것" 반박

[편집자주]2018년부터 북한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동북아시아 정세는 급변했다. '평양 인사이트(insight)'는 따라가기조차 쉽지 않은 빠른 변화의 흐름을 진단하고 '생각할 거리'를 제안한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서재준 기자 = "1990년대를 경험한 사람들은 가슴이 철렁했을 것."

최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고난의 행군' 발언을 본 한 탈북자가 전한 소감이다.

김 총비서는 북한의 네 번째 고난의 행군을 선언했다. 최근 열린 당 세포비서대회 결론에서 "나는 당 중앙위원회에서부터 각급 당 조직들, 전당의 세포비서들이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을 결심했다"라고 발언하면서다.

경제난과 기근으로 '붕괴론'까지 직면해야 했던 90년대 중반의 고난의 행군 이후 이 말은 곧 북한의 경제난을 상징하는 말이 됐다.

그런데 사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고난의 행군은 반드시 경제난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북한의 첫 번째, 두 번째 고난의 행군은 김일성 주석 시기에 있었다. 북한은 김 주석의 항일 빨치산 활동 시기인 1938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중국 몽강현에서 압록강 연안으로 행군한 것으로 '고난의 행군'이라고 부른다.

실제 '행군'이었던 이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은 이때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며 '고난의 행군 정신'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두 번째 고난의 행군은 1956년의 '8월 종파사건' 때를 말한다. 당시 '소련파, 연안파'로 불린 김 주석의 반대파는 당 전원회의에서 김 주석을 비판하며 정치적으로 갈등을 겪었다. 결국 이들은 모두 숙청됐고, 북한은 이후 '천리마 운동'을 전개해 내부 결속을 도모했다.

세 번째 고난의 행군이 우리에게 익숙한 1990년대 중반의 경제난, 기근이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신년사(공동사설)를 통해 언급한 내용을 보면 북한이 말하는 고난의 행군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김 위원장은 공동사설에서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은 백두밀림에서 창조된 고난의 행군 정신으로 살며 싸워 나가야 한다"라고 언급했는데, 북한의 '고난의 행군'이 어디서 유래됐는지 새삼 확인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니까 '고난의 행군=경제난'이라는 공식은 엄밀히 말하면 틀린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경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대북제재의 장기화, 비핵화 협상의 고착,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여기에 자연재해까지 겹쳐 북한의 상황 개선은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북한은 외부에서 '경제난'을 지적하는 시선에 더 예민하다. 북한 당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14일 자 보도에서 "전체 인민에게 고난의 행군 정신으로 무장할 것을 호소한 것은 과거지사"라며 김 총비서의 발언으로 북한 주민들이 다시 고생길에 들어섰다는 해석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조선신보는 "'고난의 행군 정신'에 대하여 알지도 못하는 세력들이 '고난의 행군'이라는 술어를 경제난, 생활고의 동의어로 쓰면서 조선(북한)의 현황을 제재와 코로나, 자연재해의 이른바 3중고의 맥락에서 거론하고 있는 것은 과거에도 있었던 불순한 여론 오도술의 변종에 불과하다"면서 불쾌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번 고난의 행군 발언은 인민을 위한 '심부름꾼'인 당, 당의 일꾼들을 향한 언급이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럼에도 탈북자의 저 발언처럼, 너무나 어려웠던 시절의 강력한 기억은 많은 이들에게 트라우마처럼 남았을 것이다. 북한이 비록 '공식 입장'은 아니어도 외부의 해석에 즉각적인 반박을 내놓은 것 역시 이 같은 '예민함'을 잘 알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김 총비서는 지난 9일 고난의 행군 발언과 함께 "우리 인민의 앞길을 개척하고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가는 위대한 목표, 위대한 이상을 실현하는데서 우리 당은 그 어떤 우연적인 기회가 생길 것을 절대로 믿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지금 추구하고 있는 '자력갱생'은 외부적 요인(지원)을 고려하지 않고 철저히 자체의 계획에 따라 이뤄낼 것이라는 말로 들린다.

동시에 정부가 기대하고 있는 대외 행보도 자신들이 원하는 때가 오면 '주체적으로' 움직일 것임을 내포한 말이기도 하다. 정부는 계속 메시지를 내고 있지만, 북한의 대외 행보 재개는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seojiba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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