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고구려 (2) - 압록 이북 방어망이 뚫리다.
[고구려사 명장면-121] 667년 9월 14일에 고구려 서북 최대의 거점성인 신성(新城)이 당군 손에 들어갔다. 이세적 군이 8개월이나 공격해도 함락시키지 못했던 신성이 내부 반란으로 결국 당군에 투항한 것이다. 최대의 난관을 돌파하게 된 이세적이 거느린 당군은 이후 여러 갈래로 진군해 갔다.
그런데 이후 기록은 자료마다 착종과 혼란이 심해서 당시 당군의 행적 및 고구려군의 대응을 제대로 파악하기 쉽지 않다. 관련 기록을 종합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몇몇 전투가 등장한다.
① 이세적은 군대를 거느리고 진군하여 16개 성을 함락시켰다.
② 이세적은 글필하력(契苾何力)에게 신성을 지키게 하였는데, 정작 기록상에는 신성에서 글필하력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글필하력의 좌우 부장이었던 방동선(龐同善)과 고간(高侃)이 신성을 지키고 있었는데 천남건(泉男建)이 보낸 고구려군이 당의 군영을 습격하였고, 뒤를 받치고 있던 설인귀(薛仁貴)가 고구려군을 공격하여 깨뜨렸다.
③ 고간이 거느린 당군이 금산(金山)에 이르러 고구려군과 전투를 벌였다가 패퇴하였고 고구려군이 승세를 타 북쪽으로 쫓아왔는데, 설인귀가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군을 대파하여 5만[5천] 명이 전사하였다.
④ 당군이 남소성, 목저성, 창암성 3성을 함락시키고 천남생 군대와 합류하였다.
⑤ 설인귀가 (금산 전투의) 승세를 타고 2천명을 거느리고 부여성을 공격하여 고구려군을 크게 이겨 만여 명을 전사시키고 부여성을 함락시켰으며, 이에 부여천(扶餘川)에 있는 40여 성이 모두 항복하였다.
이 전투 기사 중 ②, ③, ④ 기사가 '구당서' 설인귀전 등에서는 전해인 666년에 벌어진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아무래도 착오인 듯하다. 역시 667년 9월 신성 함락 이후 전개되는 전투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중 가장 마지막으로 추정되는 전투가 ⑤ 기사, 즉 부여성을 함락시키고 그 주변의 40여 성을 항복을 받은 상황인데, '자치통감'에서는 부여성의 함락이 이듬해인 668년 2월 28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②~⑤의 전투는 신성 함락 시점인 667년 9월 14일부터 668년 2월 28일까지 대략 5개월여 동안에 벌어진 셈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각 전투를 살펴보자.
② 기사를 보면 신성 함락 이후 고구려군의 반격이 있었고, 당군이 어려움을 겪다가 당군의 후방을 이끌던 설인귀의 분전으로 고구려군을 패퇴시킨 전투이다. 이때 신성을 되찾기 위해 공격한 고구려군을 중앙에서 파견한 군대로 보기는 어렵고, 신성과 방어체계를 공동으로 구축하는 성에서 보낸 군대로 짐작된다. 이전까지는 전방의 신성과 후방의 국내성이 하나의 방어네트워크를 구성했지만, 이때는 남생이 국내성을 들어 당에 투항하였기 때문에, 국내성은 제외된다. 그렇다면 신성을 공략할 군대를 파견한 성으로는 요동성이나 오골성이 가장 유력해 보인다.
그런데 요동성은 당군과 맞서는 최전선에 위치한 성이기 때문에 군대를 차출하여 신성을 공격할 여유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골성이 신성을 되찾기 위한 군대를 보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오골성은 지금의 중국 요녕성 봉성에 위치한 성으로서 요동 전선 전체를 후방에서 후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압록강 이북에서 최고의 요충성이었다. 그러기에 '천남생묘지명'에 의하면 동생들에게 쫓겨 국내성으로 물러난 남생이 평양으로 진군하기 위해 처음에는 오골성을 공략하려다가 실패해서 결국 당에 투항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고구려군 반격에도 신성을 지켜낸 당군은 신성 주변 지역을 공략함으로써 신성 장악을 보다 안정시키려는 군사활동을 전개한 것이 기사 ③, ④, ⑤에서 전하는 전투이다. 먼저 ③ 기사를 보면 당군과 고구려군이 금산(金山)에서 대접전을 치렀다. 금산의 위치는 알기 어렵지만, 금산 전투에서 승리한 고구려군이 북진하다가 설인귀의 역습으로 대패하였다는 내용에서 보건대, 금산은 신성보다 남쪽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신성과 오골성을 잇는 교통로상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사 ②, ③을 종합하면 오골성의 고구려군이 신성을 되찾기 위해 신성을 공격하다가 설인귀의 반격으로 패퇴하였고, 뒤쫓던 고간의 군대를 금산에서 격전을 벌여 격퇴시키고 다시 신성 쪽으로 진격하다가 설인귀의 역습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고간과 설인귀 등 당군은 신성 남쪽 방어선이 안정되었다고 보고, 신성 북쪽의 부여성을 공략하여 이를 함락시키는 상황이 기사 ⑤의 전투이다. 여기의 부여성은 길림시 일대가 아니라 지금의 요녕성 서풍(西豊)이나 요원(遼源) 일대로 추정된다.
기사 ④는 신성을 함락시킨 당군이 소자하 유역의 주요 거점인 남소성, 목저성, 창암성[오녀산성]을 차례로 장악하고, 국내성에 머물던 남생과 합류하였음을 보여준다. 항복한 남생과 국내성 세력을 접수하려는 당군의 군사행동은 666년 9월부터 시작되어 이때에 비로소 완결되었으니 대략 1년여가 넘게 걸린 셈이다. 아마도 소자하 유역을 장악해서 국내성까지 진군하는 당군을 이끈 인물이 글필하력으로 추정된다.
애초 666년에 남생의 구원 책임을 맡았던 인물이 글필하력으로서, 그는 방동선과 고간, 설인귀와 이근행을 부장과 후위로 거느린 대군을 통솔하고 있었는데, 그 뒤 이세적이 총사령관이 되어 신성 함락을 지휘하고, 신성 수비와 남생의 구원을 글필하력의 임무로 맡겼던 것이다. 이때 글필하력은 방동선, 고간 등에게 신성 수비의 책임을 맡기고, 자신은 당군을 이끌고 국내성까지 진격한 것이다. 이후 글필하력은 자신이 거느린 당군과 남생군을 이끌고 압록강 하구로 진격하여 이세적의 군대와 합류하여 평양성 공격의 선봉에 서게 된다.
이러한 당군의 군사 행동으로 결국 신성에서 소자하 유역을 거쳐, 국내성까지를 관통하는 지역이 당군에 의해 장악되었다. 그리고 신성의 우익이었던 부여성도 당군의 손에 넘어갔고, 신성의 남쪽 일대도 당군의 통제력에 들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고구려 대당 방어망에서 가장 북쪽에 있던 신성~국내성 방어망이 통째로 당군에게 넘어갔다. 645년 당태종의 원정 때에서도 당군은 고구려 요동 방어망의 최전선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그런데 남생의 항복으로 인하여 신성에서 국내성까지 이어지는 교통로를 완전하게 당군에게 내어주게 된 것이다. 고구려 북방 영토의 한복판이 그대로 당군에 뚫리면서 요동에 이중 삼중으로 구축하였던 방어망의 한 축이 그대로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기사 ①에서 이세적은 군대를 거느리고 진군하여 16개 성을 함락시켰다는 내용은 과연 어떤 상황을 가리키는가? 신성~국내성 루트 말고 또 다른 공격로를 당군이 장악했던 것일까?
이와 관련한 중국 측 기록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지만,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신라 측 자료가 전해지고 있다. 667년 9월에 신라 문무왕이 김유신 등 30여 명의 장군과 대군을 거느리고 지금 서울 일대에서 당군으로부터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10월 2일에 이세적이 평양성 북쪽 200리 되는 곳에 도착하여 신라군의 북진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내왔다. 이에 문무왕은 신라군을 거느리고 임진강을 건너 11월 11일에 장새(獐塞)에 이르렀다가 이세적군이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회군하였다.
이세적이 도착한 평양성 북쪽 200리 지점이 어디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압록강을 도하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어쨌든 신성에서 남하한 이세적군이 10월초에는 압록강 가까이 진군하였다가 11월 초에 철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겨울철 공세가 쉽지 않아서 일단 신성이나 국내성 등에서 겨울을 지내고 이듬해 공세를 취하려는 전략으로 짐작된다. 앞서 기사 ①에서 이세적이 공취한 16개 성이 아마도 신성에서 압록강으로 이어지는 교통로 상에 위치한 성들로 짐작된다.
이제는 당군이 고구려 영역 안에서 겨울을 나고 이듬해 전투를 준비할 수 있는 거점들을 확보했다. 수양제와 당태종의 대규모 침공을 물리쳤던 요동의 견고한 방어망도 무력화되었다. 평양성이 무너지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였다.
[임기환 서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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