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사람과 어울린다고? / 조이스 박

한겨레 2021. 4. 1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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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 조이스 박영어교육가·에세이스트

자기계발서 등에서 곧잘 만나볼 수 있는 표현 중에 그런 말이 있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어야 주변에 좋은 사람이 모여든다는.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말을 하고, 좋은 행동을 하며 웃으면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으며 살면, 비슷한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든다는 말. 이 말은 절반은 맞다. 사람들의 관계를 모두 수평적인 관계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면 아마 100% 맞는 말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이들과 수평적인 관계로 살지 못한다. 누군가는 갑이고 누군가는 을인 수직적인 관계 속에 많이 갇혀 살아간다. 또 <승자의 뇌>에서 뇌과학자 이언 로버트슨이 말했듯이, 누군가는 알량한 권력이나 부를 조금이라도 움켜쥐면 뇌가 공감 능력이 떨어지도록 변한다. 또 어디를 가도 굉장히 권력 지향적인 사람은 꼭 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사람이 모여든다는 저 말은 절반은 틀렸다. 어떤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는 구조, 나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있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구조는 권력자가 큰 파이를 차지한 후, 남은 작은 파이를 여러 사람에게 나누라고 던져주면 생겨난다. 작은 파이를 여럿이 나누어야 할 때 당연히 옥신각신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럴 때 더 큰 파이를 혼자 가진 이는 “왜들 싸우고 그래? 사이좋게 나누어 가져” 이런 말을 하며 혼자 ‘좋은 사람’이 되기란 또 얼마나 쉬운지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굳어진 오랜 구조 중 하나가 바로 고부 관계이다. 영미권에서는 장모와 사위의 갈등이 첨예하게 일어나는 것만 봐도, 한국의 ‘고부 갈등’이 사람 본성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에 뿌리박힌 구조의 문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갈등은, 여성들을 사회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외부로 나가는 채널을 모두 막아서 외부의 파이에서 배제한 채, 집안에 여성들을 가두어두고 ‘곳간 열쇠’ 같은 작은 파이를 두고 여성들끼리 다투게 내버려둔 상황에서 빚어진다고 보면 된다. 사실 곳간 열쇠도 쌓인 곡물에 접근할 권리일 뿐이지, 곡물의 소유권은 아니지 않은가. 이 갈등 밖에 서서 더 큰 파이를 가진 이들을 보지 않고, 시어머니만 나쁜 사람이 되기 일쑤이다. 원래 지주보다 마름이 소작인들에게 더 독하게 구는 법이기도 하다.

이 구조는 비정규직들이 처한 상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비정규직들은 나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 수밖에 없다. ‘지주’를 직접 볼 일은 별로 없지만, ‘마름’들은 바로 옆에서 보기 때문이다. 마트에서 같이 월급을 받는 처지이면서 본사에서 나온 정직원과 계산대에서 근무하는 캐시어 사이에는 권력관계가 생기고, 정직원이 현장에서 가진 권력은 어쩌면 캐시어와 같은 비정규직들에게는 아주 크게 다가올 수 있다. 유통센터에서 일하는 비정규직들은 근무 중 물 한잔 마시지 못하는 조치가 얼마나 피부에 와닿을지, 저 물 한잔을 못 마시게 하는 정직원이 얼마나 나쁜 사람으로 보일지 한번 생각해보라.

현장에서 권력을 가지고 일하는 이 ‘마름’들 중에 ‘나에게 잘하면 작은 특혜를 주지!’라는 신호를 보내는 이들이 꼭 있다. 좋은 근무시간, 일하기 편한 작업대 등등 이런 배분을 두고 사적인 선호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겠노라고 나서는 마름들이 있으면, 그 작은 파이를 두고 비정규직들 중 누군가 자기 혼자 받겠노라 나서고, 특혜가 개인에게 그런 식으로 주어지는 걸 다수가 보는 순간, 그 비정규직들은 나쁜 사람들을 겪게 되고, 또 서로에게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 혼자 특혜받은 사람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하는 나쁜 사람이 되는 건 어쩌면 굉장히 쉬울 수도 있다.

정규직들이라고 이런 일을 안 겪는 건 아니지만, 훨씬 덜 겪는다. 이 일을 그만두면 고용보험도 퇴직금도 없는 비정규직보다는 덜 절박하기 때문이다. 더 절박한 사람들이 작은 권력을 휘두르는 마름들에게 더 비굴해질 수 있다. 나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무시한 채,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마련이라고 하는 말은 그래서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으로 환원시키는 독 같은 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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