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뇌출혈 2개월 여아..위기가정 보호망 빈틈

홍현기 2021. 4. 1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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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위탁 불발에 어린이집은 망설여..부모는 중간에 연락두절
모텔서 남매 돌보던 아버지의 학대.."기관간 협력체계 필요"
생후 2개월 여자아이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객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인천=연합뉴스) 홍현기 기자 = 아내가 구속된 뒤 모텔에서 혼자 자녀 2명을 돌보다가 생후 2개월 딸을 학대해 뇌출혈에 이르게 한 아버지의 사건이 알려지면서 위기가정 보호망에 빈틈이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방자치단체는 이들의 사정을 알고 아이들의 보육을 위탁할 가정을 물색했으나 희망자가 없었고, 아이들을 임시로 맡아줄 어린이집을 구하는데도 일주일의 시간이 걸리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학대까지 발생했다.

생후 2개월 너무 어리다는 위탁 가정·어린이집

15일 인천시 남동구와 부평구 등에 따르면 남동구는 지난 7일 인천시 부평구 한 모텔에서 생후 2개월 A양과 아들(2)을 혼자서 양육하는 아버지 B(27)씨의 사례를 확인하고 가정위탁을 추진했다.

B씨의 아내(22)가 사기 혐의로 지명수배를 받다가 지난 6일 경찰에 체포돼 구속되면서 B씨가 혼자 좁은 모텔 안에서 아이 둘을 양육하기는 어렵다고 본 것이다.

남동구는 B씨의 동의를 받아 8일 인천가정위탁지원센터와 접촉했고, 처음에는 대기자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이튿날인 9일 알 수 없는 이유로 해당 대기자가 가정위탁 의사를 철회했다.

인천에 가정위탁 대기 세대가 4곳 정도 있었으나 A양을 맡아주겠다는 곳은 없었다. 인천에서는 모두 57세대가 아동 68명을 위탁받아 돌보고 있다.

인천가정위탁지원센터 관계자는 "A양이 생후 2개월로 어려 24시간 돌봐야 하다 보니 희망하는 가정 위탁 세대가 없었던 것 같다"며 "인천에서 위탁 가정을 구하지 못해 서울이나 경기도권도 알아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남동구는 차선책으로 24시간 어린이집에 임시로 아이를 맡기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남동구가 접촉한 한 어린이집은 A양의 나이가 어리고 심장판막 질환이 있다는 이유 등을 들어 A양 남매의 입소를 망설였다.

그러던 어린이집이 아이들을 받아주기로 한 것은 지난 12일. 지난 6일 B씨가 아이 둘과 함께 모텔에 남겨진 지 6일만이다.

13일 아이들의 어린이집 입소를 위한 건강검진이 예정돼 있었으나 결국 당일 새벽 A양은 모텔에서 뇌출혈 증상과 함께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A양을 학대해 머리를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 B씨는 최근 경찰 조사에서 "(아내가 구속된 이후 혼자 모텔에서 두 아이를 돌보는데) 자꾸 울어 화가 나서 딸 아이를 탁자에 던졌다"며 학대 행위를 자백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B씨는 내동댕이치는 정도로 아주 강하게 던지지는 않았지만 아이 머리가 나무 탁자에 부딪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동구 관계자는 "A양의 나이가 어려 최대한 가정 위탁을 알아보면서 임시로 어린이집에 맡기는 방안도 함께 추진했다"며 "결국 건강검진일 새벽에 사건이 발생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사기 혐의를 받는 A양의 어머니를 굳이 체포해 구속했어야 했느냐는 동정론도 일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사정은 안타깝지만 지명수배자로 확인돼 체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법원에서 이미 구금영장까지 발부된 수배자를 체포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모텔 전전하는 가족…모텔 주인들도 우려했던 비극

B씨 가족이 머물렀던 모텔의 주인들은 하나같이 이들의 비극을 우려하며 지자체에 도움을 요청했다.

B씨 가족은 A양이 지난 2월 16일 인천시 부평구 한 모텔에서 태어난 뒤 일정한 주거지 없이 인근 다른 모텔 2곳을 옮겨가면서 생활했다.

A양이 태어난 부평구 한 모텔의 주인은 "지난해 여름부터 (B씨 부부가) 어린아이(A양 오빠)를 데리고 20번 넘게 하루 이틀씩 모텔에 와서 지냈다"며 "모텔에서 아이까지 낳아 동사무소에 여러 번 연락해 큰일 날 거 같다고 꼭 도와달라고 했는데 결국 이런 일이 났다"고 말했다.

아기를 모텔에서 출산한 부부가 남기고 간 각종 물품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부평구 한 행정복지센터는 지난달 초 B씨 가족이 머물던 인근 다른 모텔 주인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현장 확인과 지원에 나섰다.

아기 띠·기저귀 등 아기용품과 밑반찬 등을 전달하고, 출산지원금 등 270만원 가량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이들이 제대로 된 주거지를 구할 수 있도록 대한적십자사에 주거비 보증금 지원도 신청했다.

그러나 돌연 지난달 22일쯤 이들과 연락이 두절되면서 추가 지원으로 연계되지는 못했다.

당시 B씨 부부의 휴대전화 전원이 모두 꺼져있었고, 이들은 부평구에서 보낸 문자메시지에도 답장하지 않았다고 한다.

부평구 관계자는 "모텔 주인으로부터 최초 도움 요청을 받고 지속해서 개입해 각종 지원 물품을 전달하고 지원금도 받을 수 있도록 했다"며 "안전한 주거지를 구할 수 있는 보증금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으나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남동구 관계자는 "B씨 가족의 주소지로 등록된 빌라에도 찾아갔으나 문이 잠겨 있어 경찰에서 수소문 끝에 이들이 부평구 한 모텔에서 지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에는 아동학대 정황이 확인되지 않아 자녀와 부모를 분리하는 등 강제 개입에는 어려움이 있었다"며 "B씨의 동의를 받아 가정위탁과 어린이집 입소를 동시에 추진하던 중 결국 사건이 났다"고 말했다.

이충권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이 특히 안타까운 것은 개별 기관은 각자의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으나 협력체계가 탄탄히 구축되지 않아 사각지대가 발생했다는 점"이라며 "기관 간 서비스 분절이 해결돼야 중간에 놓칠 수 있는 이번과 같은 위기가정 사례를 막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h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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