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윤 소환조사 해놓고.. 1호 사건 아직 못정했다는 공수처

양은경 기자 2021. 4. 15. 13:5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15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종합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14일 김진욱 공수처장이 이규원 검사 사건에 대해 “수사중”이라고 답변했다가 뒤늦게 공수처가 “기록 검토중”이라고 번복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당시 김 처장은 기자들이 ‘수사중이냐’고 재차 확인해 묻자 “수사의 정의를 한 번 보라”고 청사로 들어갔었다.

형사소송법 교과서는 ‘수사’를 “범죄 혐의 유무를 명백히 하여 공소의 제기와 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하여 범인을 발견·확보하고 증거를 수집·보전하는 수사기관의 활동”으로 정의한다. 법조계에서는 이 정의에 들어맞는 ‘공수처 1호’ 사건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사건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사건번호 붙이고, 면담, 서류작성에 이첩까지 “수사 맞다”

공수처는 지난달 3일 이 지검장과 이규원 검사 등의 사건을 수원지검으로부터 이첩받았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공수처는 당시 검찰이 접수사건에 대해 붙이는 ‘형제’번호가 아닌 독자적인 사건 번호를 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처장은 당시 “기록 분량이 쌓아 놓으면 사람 키만큼 높다”며 빠른 시간 내에 기록을 검토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김 처장과 여운국 차장은 일요일이었던 3월 7일 핵심 피의자인 이성윤 지검장을 한 시간 넘게 면담했다. 조사 내용은 전혀 남기지 않아 ‘황제·밀실 면담’ 논란이 있었지만, 독자적인 사건 번호와 면담 시간, 장소를 적은 ‘수사보고서’도 작성했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이 공소의 제기와 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범인을 발견·확보하고 증거를 수집 보전하는 ‘수사’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이 지검장 사건은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지난달 12일 사건을 다시 수원지검에 이첩했다. ‘이첩’은 처분권한이 있는 다른 기관으로 사건을 보내는 최종적인 처분이다. 김 처장은 ‘기소 권한은 공수처에 남아 있다’며 ‘유보부 이첩’을 주장했지만 법조계에선 “법적 근거가 전혀 없는 무리한 주장”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수원지검도 이를 고려하지 않고 이규원 검사를 기소했고, 이성윤 지검장도 조만간 기소할 예정이다. 결국 공수처는 이첩받았던 사건을 ‘재이첩’이란 형태로 종결한 셈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황제조사'등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형사소송법상 수사의 의미에 들어맞는 ‘공수처 1호’사건은 이성윤 지검장 사건”이라고 했다. ‘이성윤 황제조사’로 신뢰가 추락한 공수처가 회복을 위해 출범 이후 접수된 고소·고발 사건을 중심으로 ‘1호 사건’을 선정한다고는 하지만, 이미 이 지검장 사건이 1호 사건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 ‘1호 후보' 중앙지검 이규원 사건은 한 달째 묵혀, “수사 방해”비판도

서울중앙지검 형사 1부(부장 변필건)도 지난달 17일 이규원 검사의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했다. 이 사건은 한 달 째 공수처에서 잠자고 있다. 김 처장은 사건 처리 방향을 묻는 취재진에 ‘검토 중’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공수처가 이 사건을 ‘1호 사건’으로 유력하게 검토중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검찰 안팎에선 공수처의 행태는 이 사건의 수사가 아닌 ‘수사 방해’에 가깝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수처 이첩 전 수사가 사실상 완성 단계였기 때문이다.

윤갑근 전 고검장이 ‘김학의 전 차관 관련 허위 보도로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고소하면서 시작된 이 사건은 법원이 지난 2월 해당 방송사에 대해 7000만원의 배상판결을 내리면서 수사에 탄력이 붙었다. 윤중천씨를 소환조사하는 것은 물론 허위보도를 한 방송사 기자들을 비롯한 다수의 참고인들을 소환조사하면서 추가 범죄까지 인지했다. 이규원 검사가 ‘김학의’를 겨냥해 만든 면담보고서를 친여(親與) 매체에 유출한 공무상 비밀누설까지 잡아낸 것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첩 전 수사 단계로 볼 때 공수처가 재이첩하면 당장 기소가 가능하다”며 “공수처가 한 달째 붙들고 있으면서 수원지검에서 수사한 이 검사의 ‘불법출금’사건과 병합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기회까지 놓쳐버린 셈”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수처가 이 사건을 직접수사 1호 사건으로 하겠다고 하면 검찰수사가 사실상 끝난 사건을 시간만 끌다 구속영장 청구 혹은 기소 등으로 ‘숟가락 얹기’만 하겠다는 데 다름 아니라는 비판이다.

또다른 관계자는 “김진욱 처장이 밝힌 ‘수사’의 의미에 따르면 한 달째 기록검토중인 이규원 중앙지검 사건이 ‘2호 사건’인 셈”이라며 “‘봐주기'와 ‘묵히기’논란에서 자유로운 다른 사건을 지정하지 않으면 공수처의 위상 정립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