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천 칼럼] 깨어진 약속-다시 촛불이 묻는다

한겨레 2021. 4. 1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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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천 칼럼]

통상 중도성향 개혁정부 앞에는 두 갈래 길이 놓여 있다. 하나는 콘크리트층에 더해 사회경제적 약자와 보수층의 지지까지 끌어와 확장적 다수자 정치 또는 헤게모니 정치로 올라가는 길(높은 길)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 정체성이 희미해지고 원심력이 강화되는 길이다. 산토끼를 잃을뿐더러 집토끼마저 흔들리는 축소지향적 소수자 정치로 떨어지는 길(낮은 길)이다.

|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한국 정치는 실로 다이내믹하다.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참패했다. 지난해 4·15 총선에서는 민주당이 무려 180석이나 차지했었다. 농담 같았던 민주당 ‘20년 장기집권’이 진짜 실현되는 게 아닌가 생각도 했다. 착각이었다.

한국 정치는 다이내믹하고 변화무쌍하면서도 지독히 잘 변하지 않는다. 4·7 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정당인즉 국민의힘으로 간판을 바꾼 보수 세력이다. 국정농단과 탄핵으로 대타격을 입었던 세력이 알 듯 말 듯 한 보수(補修) 작업을 하더니 4년 만에 거의 완벽하게 부활했다. 도돌이표 한국 진영정치의 풍경을 다시 본다. 이 한국판 기득권 양당정치 구도에서 진보좌파 정당은 주변화되고 존재감이 미미하다.

한국에서 운동정치와 제도정치 사이에는 간극이 크다. 87년 6월항쟁 이후 대선에서 군부세력이 재집권함으로써 항쟁의 염원이 아프게 좌절된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다. 2016년 촛불항쟁 이후에는 다행히 중도성향 민주정부(3기 민주정부)가 성공적으로 출범했고 이 정부는 촛불민심을 실현하겠다며 ‘촛불정부’를 자임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출범이 6월 항쟁이 완성된 의미를 갖는다는 해석을 내리기도 했다.

그럴듯하지만 우리는 사회경제 정책에 집중해 좀 다른 두 가지 부분에 주목하고자 한다. 먼저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진보적 정책 공약은 외환위기를 분기점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97년 체제’의 궤적과 방향을 달리하는 전향적 지점을 갖고 있었다. 사람중심-노동존중을 내세운 경제정책 기조가 대표적이다. 이와 대비되는데 촛불정부는 부동산과 자산불평등 문제에서 처음부터 준비가 태부족했을뿐더러 매우 안이했다. 이 부분에서는 오히려 노무현 정부에도 미달한다. 두 정책의 실행에서 보인 실력 부족, 무능과 안이함이 촛불정부 사회경제 개혁 좌초의 중요 대목을 설명하지 않을까 싶다.

정부의 부동산 실정에는 여러 요인들이 겹쳤다. 정권심판 민심을 폭발시킨 엘에이치(LH) 사태는 공직자 부패와 함께 신도시 개발을 둘러싼 온갖 투기 행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청와대 정책실장 등 여권 고위인사들의 내로남불식 행태는 설상가상이었다. 공직자의 비리부패 방지 문제, 엄격한 자기규율 문제는 박근혜 국정농단을 심판하고 국가권력의 정상화 임무를 부여받은 촛불정부 자격의 마지노선과 같은 것이다. 투기에 공권력 부패와 위선이 합쳐져 정부가 약속한 공정 가치와 신뢰의 마지노선이 무너졌으니 치명적이지 않은가.

본래적 부동산 정책을 돌아보자. 투기를 차단하고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문제와 주거기본권을 보장하는 문제, 사회경제 정책의 성패가 달린 이 양대 중대사안에 대해 촛불정부다운 분명한 원칙과 목표 없이 시장 꽁무니를 따르는 대증요법으로 흘러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 정부는 처음부터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보유세를 강화할 방침이 없다”고 기자회견을 하면서 부동산 투기와 불로소득 기반 성장체제를 유지할 거라는 강력한 의사를 표명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고, 종부세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중장기적 시야를 갖고 뚝심 있게 추진해야 할 보유세 강화 정책의 철학을 갖지 못했다. 이 때문에 ‘핀셋증세, 핀셋규제’ 정책과 단기적 시장조절 정책이 기조가 됐다. 또 집값 상승과 임대료 상승을 막겠다고 해놓고도 대규모 도시재생 사업과 투기적 소유에 ‘꽃길을 깔아준다’고 비판받은 임대주택등록제를 시행했다.

부동산 정책의 허약함은 주택공급 정책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국공유토지 보유를 확대하고 서민과 중산층 주거안정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정책, 더불어 심각한 지역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할 정책은 이 정부 안중에 없었다. 부동산 공개념과는 거리가 먼 이런 정책 지향은 엘에이치 사태로 비틀거리는 2·4 대책에서 더욱 명확해졌다.

다른 한편, 이 정부는 사람중심-노동존중 정책을 자기 정체성이 담긴 대표적 간판 정책으로 내세웠다. 이 정책 패러다임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그리고 일자리중심경제의 네 바퀴로 짜여 있었는데 특히 소득주도성장이 새로운 것으로 네 바퀴 정책의 대표 격 위치에 있었고 가장 많은 주목도 받았다.

확실히 소득주도성장 정책(소주성)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그것은 이윤주도 낙수효과 성장정책과 대비되었다. 나아가 시장 자유화와 노동 유연화를 통해 성장을 도모하고 그로 인한 구조적 모순을 ‘생산적 복지’로 해결하려 한 민주정부 10년의 정책과도 결이 달랐다. 소주성은 재분배복지 이전에 시장소득의 불평등 자체를 개선하면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려는 것이었다. 또 사회적 약자에게 견제력을 부여하며 공정경제와 동행해 효과를 발휘하도록 짜여 있었다. 이를 통해 가계소비 증대와 기업투자 확대가 일어나 성장과 분배의 거시적 선순환이 이뤄지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소주성은 경제학 족보에 없는 게 아니었다. 이른바 ‘고용참사’가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이 정책으로 고용률 및 청년고용률이 상승함과 동시에 분배구조 면에서 노동소득분배율 증가, 저임금계층 축소 및 임금격차 감소, 가계가처분소득 불평등 감소 등 무시할 수 없는 성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싸고 집중포화를 받은 이후 정책 설계자가 물러났다. 결국 시장소득의 불평등 개선에 기반한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은 실현되지 못했다. 3년차 ‘2020년 경제정책방향’에 오면 정책 기조가 이전 정부와 크게 다름없는 낙수효과 정책으로 후퇴한다. 코로나19 시기 한국판 뉴딜의 지향은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촛불정부의 소주성과 사람중심 경제정책은 왜 좌초했을까. 왜 옹색하게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공방에 매몰되고 을과 을의 싸움이 전면에 부각됐을까. 저임금 기반뿐만 아니라 과도한 임대료, 가맹본부의 횡포에 시달리는 자영업자의 복합적 상황, 원하청 수탈관계로 고통받는 중소기업 문제 등을 정조준하는 정책을 왜 처음부터 시행하지 못했을까. 경제학 족보 문제보다는 한국의 맥락에 맞추어 현명하게 정책을 구현하는 개혁세력의 역량의 부족 문제가 컸던 게 아닐까.

통상 중도성향 개혁정부 앞에는 두 갈래 길이 놓여 있다. 하나는 콘크리트층에 더해 사회경제적 약자와 보수층의 지지까지 끌어와 확장적 다수자 정치 또는 헤게모니 정치로 올라가는 길(높은 길)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 정체성이 희미해지고 원심력이 강화되는 길이다. 산토끼를 잃을뿐더러 집토끼마저 흔들리는 축소지향적 소수자 정치로 떨어지는 길(낮은 길)이다. 촛불정부는 케이(K)방역의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사회경제적 결과는 후자의 길로 간 듯하다.

촛불정부가 낮은 길로 미끄러진 데는 정책 실패보다 오히려 정치 실패, 4·15 총선 이후 검찰개혁(‘조국 수호’와 동일시되었다)을 1번 순위로 올리고 사회경제 개혁을 부차화한 그 실패와 정체성 혼란이 더 큰 요인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촛불정부의 좌초 이유를 밝히고 이를 통해 복합위기 시대 내일을 위한 교훈을 이끌어내려는 이 글의 물음과 진단은 제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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