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첨 없는 로또', 확률형 아이템에 분노하는 게이머들

이상원 기자 2021. 4. 15.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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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게이머들의 불만이 높다. 게임사가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속였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메이플스토리〉가 대표적이다. 국내 게임사에 대한 오래된 불신도 있다.
2월25일부터 3월1일까지 <메이플스토리> 이용자들이 넥슨 본사 앞에서 확률형 아이템 관련 시위를 벌였다. ⓒ메이플스토리 인벤 자유게시판

국내 게임사들을 향한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게이머들은 “수년간 게임사에게 기만당해왔다”라며 분통을 터트린다. 맹폭을 받는 것은 ‘확률형 아이템’이다. 일종의 도박성 콘텐츠인데, 게임 머니가 아니라 현금이 드는 것도 있다. 문제는 그 ‘확률’에 오류가 드러난 것이다. 분개한 게이머들은 시위에 나섰다. 게임사가 간담회를 열어 해명하고 보상 방안을 내놓았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단발성 사건이 아니라 국내 게임사에 대한 오래된 불신이 원인이다.

확률형 아이템은 돈을 내고 사는 게임 속 장비다. 다만 일반적 상품과 달리 확률형 아이템은 가치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지 않는다. 뽑기 방식에 가깝다. 5000원짜리 상자를 구매해 열어보면 100원짜리 장비가 나올 수도, 100만원짜리 장비가 나올 수도 있다. 모든 게이머가 100만원짜리 장비를 얻기 위해 이 상자를 사지만 결과는 대개 ‘꽝’이다. ‘상자 까기’ 자체를 일종의 콘텐츠로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축구 경기를 하거나 괴물을 죽이는 게임 영상보다 수백만 원어치 확률형 아이템을 개봉하는 유튜브 영상이 조회수가 더 높다.

최근 확률형 아이템 문제가 불거진 게임은 여럿이지만, 여론의 집중포화는 넥슨의 〈메이플스토리〉에 쏠린다. 〈메이플스토리〉는 2003년부터 서비스해온 장수 게임이다. 국내 누적 가입자 수는 1800만명에, 최근까지도 PC방 점유율 순위권을 다툰 인기 게임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2005년 국내 최초로 확률형 아이템 시스템을 도입한 게임이 바로 〈메이플스토리〉다. 비판의 요지는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속였다는 것이다. 넥슨의 해명은 좀처럼 먹히지 않는다. 게이머들은 확률형 아이템 전반으로 의혹을 키우고 있다.

〈메이플스토리〉 확률형 아이템 논란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무작위’ 용어와 관련된 논란이 있다. 이 게임의 몇몇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메이플스토리〉는 결과가 ‘무작위’로 나온다고 적었다. 그런데 지난 2월18일 공식 사이트에 이 확률형 아이템의 결과물이 모두 ‘동일한 확률로 수정된다’고 공지를 올린 것. 일부 게이머들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상 무작위란 ‘통계의 표본추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동등한 확률로 발생하게 함’이라며 넥슨을 비판했다. 게임상 설명대로라면 애초부터 ‘동일한 확률’이었어야 했던 것을, 시스템 도입 후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바꿨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일부 게이머들은 ‘경험적으로 더 좋은 아이템이 적게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반박한다. 더 큰 문제는 게이머들의 항의를 받은 넥슨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전반을 공개하면서 뒤늦게 터져 나왔다. 3월5일 〈메이플스토리〉는 공식 홈페이지에 유료 확률형 아이템 ‘큐브’의 확률을 공개한다. 큐브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장비를 강화하는 아이템이다. ‘몬스터 방어율 무시’ ‘아이템 드롭률 상승’ 등 능력이 올라간다. 그런데 이날 공지에서는, 게이머들이 가장 선호하는 옵션인 ‘보스 몬스터 공격 시 데미지 상승’ 옵션은 3개 중 2개만 추가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이 옵션이 3개 붙은 아이템은 이른바 ‘보보보’라 불리는 1등 장비였다. 그런데 사실상 ‘로또에 1등이 없다’는 공지를, 2011년 이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10년 만에 처음 하는 셈이었다.

2005년 국내 최초로 확률형 아이템을 도입한 온라인 게임 <메이플스토리>(왼쪽)의 유료 확률형 아이템 큐브(오른쪽)는 캐릭터가 가진 장비를 강화시킨다.

울며 겨자 먹기로 산다

〈메이플스토리〉 측은 논란을 해명했다. ‘무작위’ 문제에 대해선 2월19일 “서비스 초기부터 랜덤, 임의, 무작위는 ‘정해진 조건에 따라 난수를 발생시켜 결과를 결정하는 행위’를 통칭하는 단어”로 써왔다고 적었다. ‘단순히 여러 가지 사건이 발생한다’는 의미일 뿐 개별 확률이 같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무작위’ ‘랜덤’과 같은 표현을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큐브 문제에 대해서는 “밸런스 기준점을 과도하게 초과하는 상황을 방지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라고 적었다. 하지만 ‘보보보’가 불가능하다고 10년간 공지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게임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모금을 통해 트럭을 대절해 넥슨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집단소송도 준비하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을 둘러싼 소동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메이플스토리〉에서만 터지는 일도 아니다. 언젠가부터 ‘한국 게임은 걸러야 한다’고 말하는 게이머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국내 게임계 전체에 확률형 아이템 상술이 만연해 있다고 본다. 게이머들이 비판하는 확률형 아이템은 정확히 말해 페이 투 윈(pay-to-win) 방식이다. 아이템에 현금을 들여야 좋은 장비를 얻어 게임 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시스템을 말한다. 미국에서 개발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도 확률형 아이템을 팔지만, 게임 내 경쟁력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치장형’ 아이템에 그친다. 반면 국내 게임은 대부분 돈을 들이지 않으면 온전히 즐기기 어렵다. 축구 게임은 선수와 계약을 할 수 없고, MMORPG 게임은 돈을 들인 게이머에게 학살당한다. 그렇다고 ‘돈을 들이는 만큼’ 원하는 장비를 얻는다는 보장도 없다. 유료 아이템 대부분이 확률형이기 때문이다. 대다수는 도박성 콘텐츠가 좋아서가 아니라, 울며 겨자 먹기로 확률형 아이템을 산다.

확률형 아이템은 한국 게임 전반의 대세가 되었지만, 오랜 기간 이 분야에서 악명을 쌓아온 업체가 넥슨인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메이플스토리〉뿐만 아니라 〈던전 앤 파이터〉 〈마비노기〉 〈피파 온라인 4〉 등 넥슨이 서비스하고 있는 게임 가운데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지 않는 게임은 없다시피 하다. 지난해 넥슨의 매출은 3조원. 2001년(약 289억원)의 100배다. 전문가들은 오늘날 넥슨 성장의 밑바탕에는 확률형 아이템 수익모델이 있다고 본다.

게이머들이 확률형 아이템을 두고 갖는 스트레스는 단순히 ‘돈을 써야 한다’는 것만은 아니었다. 얼마나 써야 할지 가늠이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뽑기로 좋은 아이템을 얻을 확률이 낮다는 건 경험으로 알지만, 얼마나 낮은지를 모른다. 게임 회사들이 ‘영업비밀’을 이유로 확률 공개를 거부해왔기 때문이다. 게이머들이 여러 경로로 문제를 제기하자 2015년 업계는 ‘한국게임산업협회를 통한 자율규제’를 선언했으나 실효가 없었다는 평이 다수다. 한국게임학회 회장인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마찬가지로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를 천명하고 있는 일본과 한국을 비교했다. “일본에서는 자율규제가 작동한다. 업계 이익단체인 일본 게임협회가 실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자율규제를 어기는 회사는 여기서 퇴출되고, 협회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법적 분쟁 등에서 여러 불이익을 받는다. 한국은 넥슨, 엔씨소프트 등 대형 게임사들의 힘이 너무 강해 이런 식의 규제가 먹히지 않는다.” 그간 확률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던 이유가, 〈메이플스토리〉처럼 ‘1등상’이 없거나 현격히 낮기 때문 아니냐고 추측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판매가 과하다면 이용자들이 게임을 떠나는 게 정상이다. 그 결과 게임사들의 매출도 감소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 게임산업은 지속적으로 덩치가 커졌다. 특히 넥슨을 비롯한 대기업은 매해 성장을 거듭했다. 소액을 결제하는 다수가 아니라 천문학적 금액을 쏟는 극소수에 기대는 전략이 먹히기 때문이다. 대다수 게이머가 떠나더라도 핵심 이용자들이 계속해서 돈을 낸다면 게임은 망하지 않는다. 한 대형 게임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확률형 아이템을 사는 사람은 많지만 주기적으로 엄청난 금액을 ‘지르는’ 사람은 아주 적다. 그런데 이 상위 5~10% 개개인이 쓰는 돈이 초고액이다. 나머지 전부보다 많을 때도 있다.” 게임사의 ‘주 고객’이 소수이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생긴다. 다수 이용자들이 만족하도록 게임 방향을 바꾸려다가도, 수십억 원을 쓴 한 사람이 반대하자 철회하는 일이 생긴다. 이런 과정에서 더 많은 이용자들이 게임을 떠나고, 게임사는 다수를 끌어들일 콘텐츠 개발보다는 극소수 이용자가 만족할 만한 유료 확률형 아이템에 더욱 매진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확률형 아이템 논란은 점차 게임 이용자와 운영진 사이의 문제를 넘어서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 유정주 의원 등이 규제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골자는 ‘확률 정보 공개 의무화’다. 그런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여기서 더 나아가 “확률형 아이템 자체를 금지해달라”는 의견이 적잖이 나온다. 이들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 ‘판돈’을 걸어야 하는 피로감을 호소한다. “확률형 아이템은 도박과 다를 바 없다”라고 말한다.

3월22일 황희 문체부 장관이 게임산업계 현장 간담회에 참석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우회로 통해 환전 가능한 아이템

게이머들의 바람과 달리 법을 따져보면 확률형 아이템 전면 규제는 쉽지 않다.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는 게임과 도박 사이에 큰 차이가 있어서다. 환전 여부다. 강원랜드의 슬롯머신은 게임에서 획득한 칩을 현금으로 바꿔준다. 그러나 온라인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은 이용자 사이 거래만 가능할 뿐 현금화할 수 없다. ‘환전’ 여부가 충족되지 않으면 사행성이 없다는 것은 대법원의 태도다(2003도8245). 확률형 아이템으로 악명 높은 게임들도 이 기준에 따르면 모두 사행성이 없다. 예컨대 2018년 국정감사장에서 자사 게임 〈리니지M〉의 사행성에 대한 질문을 받은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리니지M〉은 사행성을 유도하지 않습니다. (…) 아이템은 게임을 위한 아이템일 뿐입니다.”

여전히 문제가 있다. 사실 확률형 아이템은 우회로를 통해 환전이 가능하다. 사람들은 ‘아이템베이’ ‘아이템매니아’ 등 거래 중개 웹사이트를 통해 게임 머니와 게임 아이템을 현금으로 매매하고 있다. 〈바다이야기〉 문제가 터진 후 2007년 현금거래를 규제하는 법안이 제정되었지만, 이 법을 위반한 환전상이 승소해 개정됐다. 법정에서 그는 ‘슬롯머신처럼 우연적 방법으로 돈을 딴 게 아니라 게임상에서 노력을 통해 번 게임 머니이기에 사고팔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개업도 합법이다. 이들은 직접 게임이나 매매에 관여하지 않고 중개만 한다. 게임사 역시 직접 환전해주지 않고 약관을 통해 아이템 매매를 금지한다. 실질적으로 확률형 아이템에서 운 좋게 ‘대박’을 터트리면 실제 현금을 벌 수 있다. 그러나 게임사가 직접 환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행성 게임’으로 규정되지는 않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게임사가 확률형 아이템을 파는 것, 개인이 게임 아이템을 현금으로 파는 것, 이 거래를 중개하는 것 모두 위법이 아니지만, 일련의 과정을 결합하면 불법도박장과 흡사한 광경이 보인다.

3월22일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한국게임산업협회와 한 간담회에서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법정화를 통해 이용자의 불신을 해소하고 게임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중소 게임사 관계자는 “2년 전 조치를 생각하면 영이 서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2019년 정부는 월 50만원으로 정해져 있던 PC용 온라인 게임 결제한도를 무제한으로 풀었다. ‘판’을 키운 데에 정부가 일조한 셈이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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