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제도 10년,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졌다
2011년 7월부터 시행된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설립 허용제도(이하 복수노조 제도)가 10년을 맞았다. 기업별노조 체제와 일부 기업의 반노동조합주의 등이 결합되면서 복수노조 제도는 한국 노사관계에 여러 변화를 가져왔다. 연구에 따르면 초기부터 우려되던 기업들의 노조 분열 전략은 대체로 확인되는 반면, 미조직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노동조합 설립이라는 효과는 아직까지 확인되고 있지 못하다. 물론 2017년 이후 문재인 정부가 ‘노동존중 사회’를 표방하면서 노동조합 활동에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가 조성되고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 효과로 노동조합 설립이 활발해진 점 등을 고려하면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복수노조 제도와 교섭창구 단일화 등에 관한 대응은 주로 사용자의 노동조합에 대한 부당한 지배개입과 어용노조의 문제점을 중심으로 논의되어왔다. 그러나 이 제도들은 노동자 사이에서 세대, 고용형태, 리더십 등과 연동되며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최근 일부 기업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는 노동조합 집행부에 불만을 품은 젊은 조합원들이 집단으로 뭉쳐 경쟁 노조로의 이탈 가능성을 무기 삼아 집행부를 노골적으로 압박하기도 한다. 기업 내에서 힘 있는 특정 직종이 자신들만을 위한 복수노조 설립을 추진하거나, 퇴직 연령에 가까운 선배 그룹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별도 노조를 추진하는 경우도 있다. 노동조합 집행부 선거에서 패배한 쪽이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 현장으로 돌아가 새로운 항의를 조직하기보다는 복수노조를 만들어 이탈하는 현상도 자주 일어난다. 그렇다.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졌다.’
20세기 경제사상가이자 진보와 보수 양쪽의 맹점을 잘 지적한 것으로 유명한 앨버트 O. 허시먼은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Exit, Voice, and Loyalty)〉에서 시장주의자들이 말하는 이탈(Exit)의 방식을 통한 경쟁이 늘 조직을 건강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며 항의(Voice)와 충성심(Loyalty) 등을 고려한 다양한 방식이 활성화되는 게 조직의 발전과 지속에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허시먼의 문제의식을 빌려와 현재 노동조합을 보면 다양한 조합원의 의견이 노동조합 안에서 조율되어 조직을 풍성하게 하기보다는 단기적 이익을 좇아 이탈을 감행하는 경우가 더 많아지고 있다. 문제는 시장에서 다양한 상품이 가격과 품질 경쟁을 통해 소비자 후생을 높이는 것과는 달리, 노동조합의 분열은 사용자에 대항하는 노동의 힘을 약화시켜 시민들 삶의 질을 떨어트린다는 점이다.
손쉬운 이탈이 초래하는 문제는 사업장 단위를 넘어서도 일어난다. 최근 순위가 바뀐 제1노총의 지위를 두고 벌이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간 치열한 조합원 수 경쟁은 긍정적으로 작동한다면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를 둘러싼 건전한 경쟁으로 전체 노동의 힘을 증가시킬 수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손쉬운 복수노조를 통한 상대 조합원 빼내기에 열중하게 되면 1930~1950년대 미국의 양대 노동조합 AFL과 CIO가 경험한 것처럼 노동계 내부에 상처와 갈등만 남길 수 있다. 한국 양대 노총은 1954년 그동안의 소모적인 조합원 빼가기 경쟁을 반성하고 AFL과 CIO가 맺었던 ‘조합원 빼가지 않기 협정(No-Raiding Agreement)’을 전략적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노조를 투기 조직으로 인식하는 조합원들
현재 한국의 노동운동은 안타깝게도 허시먼이 ‘이탈’과 ‘항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로 지적한 ‘충성심’이라 할 만한 것을 조합원들에게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을 단기 이익을 극대화시켜주고 언제든지 차익을 실현해 이탈할 수 있는 투기 조직과 같은 것으로 인식해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노동운동이 지금 고심해야 하는 것은 ‘국유화’나 ‘총파업’ 같은 공허한 단어의 나열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충성심을 가질 수 있고 시민들은 신뢰할 수 있는 조직으로 노동조합을 다시 탈바꿈시키는 ‘스스로를 향한 개혁’이 먼저 필요한 때이다.
조성주 (정치발전소 상임이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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