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 보탤 수 없는 정인이..양부모는 끝까지 '살인' 부인했다
檢, 정인이 양모에 법정 최고형인 '사형' 구형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피해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입양돼 초기부터 귀찮은 존재가 됐고, 수시로 방치당하고 감당 못할 폭행을 당한 뒤 치료받지도 못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어린 피해자는 누구에게도 구조 요청을 하지 못하고 어떠한 저항도 반격도 못 했다. 뼈가 부러지고 췌장이 끊어질 만큼의 어떠한 잘못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고통 속에서 생명을 근근이 이어가는 게 전부였다"
입양과 동시에 지옥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정인양의 짧았던 생은 법정에서 검사가 읊은 단 몇 개의 문장으로 요약됐다. 생후 16개월 만에 양부모의 모진 학대 끝에 생을 마감한 정인양은 생전의 사진과 영상으로 자신이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증명해야 했다. 처참했던 아이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뒤로 하고 양부모는 결심 공판에서도 살인 혐의를 부인했다.
"학대를 뉘우치고 있으며 벌 받아 마땅하다"면서도 살인 혐의만은 극구 인정하지 않았다. 아이의 췌장이 끊어지고 온 몸이 으스러질 정도의 고통을 가했지만, 고의적인 살인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양부모의 인면수심 학대는 일상이었으며, 아이의 사망이 충분히 예견되는 수준의 폭행이었다며 양모에게 법정 최고형을 구형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판사 이상주) 심리로 14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정인이의 양모 장아무개씨에게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아동학대치료프로그램 이수명령과 아동관련기관 취업제한명령 10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30년, 보호관찰 5년도 요청했다. 양부 안아무개씨에 대해서는 징역 7년6개월을 구형했다. 검찰은 안씨에게도 아동학대치료프로그램 이수명령과 아동관련기관 취업제한명령 10년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확보된 증거들을 보면 피고인은 피해자의 건강과 안전에 대해 무심하고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지속적인 학대로 아이의 건강이 악화한 후에도 아무런 병원 치료도 받게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의학자와 부검의들의 소견에 따르면, 피고인은 이미 심각한 폭행으로 복부 손상을 입은 피해자의 배를 사망 당일 또다시 발로 밟아 치명상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며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살인 혐의 빠져나가려는 피고인들
정인양의 양부모 측 변호인은 이날 공판에서 시종일관 살인 혐의를 빠져나가는 데 초점을 맞추고 변론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이정빈 가천대 의대 석좌교수가 정인양이 강력한 외력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술하자 심폐소생술(CPR)로 인한 손상을 거론하며 맞서기도 했다.
이 교수는 "부검을 통해 파악된 아이의 사인은 장간막 파열로 인한 실혈사"라며 "복부에 멍과 같은 상처가 없는 것을 보면, 때리는 듯한 순간적인 충격보다는 강하게 미는 듯한 힘이 가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수술을 받아 팔에 힘이 없었다는 피고인의 진술 등을 토대로 보면 맨발로 무게를 실어 피해자의 복부를 밟았을 것"이라는 추정을 내놨다.
그러자 변호인은 아이를 살리기 위한 양부모 또는 의료진의 CPR 과정에서 장기 손상이 발생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질문을 던졌다. 이 교수는 "아무리 몰라도 배에다 CPR을 하는 사람은 없다. 정말 복부에 CPR을 했다면 간에도 손상이 발생했을 것"이라며 변호인 측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팔을 들고 옆구리를 각목 등으로 가격하거나, 팔을 비틀어 부러뜨린 듯한 상처도 발견됐다"며 "절단된 췌장 역시 사망 당일 이전에도 손상을 입었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양부모 측 변호인은 마지막까지도 "장씨의 지속적인 폭력은 인정하지만, 사망 당일 아이의 배를 발로 밟았다는 사실은 인정하기 어렵다"며 "사인이 된 장간막·췌장 파열이 누적된 단순 폭행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즉 누적된 폭행까지는 인정하지만, 그 폭행이 사망으로까지 이어질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 양부모 측 입장이다.
"정인이 사랑했다" 악어의 눈물 흘린 양부모
이날 공판에서는 정인양 사망 당일을 전후한 상습 학대 증거와 양부모의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정인양 사망 당일 장씨는 병원 의료진으로부터 "아이가 사망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도 어묵 공동구매를 하거나 태연히 인터넷 커뮤니티에 댓글을 남긴 것으로 드러났다. 장씨는 정인양 사망 이튿날 지인에게 "하나님이 천사 하나가 더 필요하셨나 봐요"라고 했고, 또 다른 지인과는 어묵 주문이나 공동구매 관련 대화를 나누는 상식 밖의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검찰의 이같은 증거 제시에도 불구하고 양부모는 공판 과정에서 여러차례 눈물을 흘리며 "정인이를 사랑했다"고 거듭 호소했다. 피고인 측 변호인도 정인양 입양 초반에 작성했던 육아일기를 제시하며 양부모들이 정인양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은 양모의 행위를 양부 역시 알고 있었다며 '학대의 공범'으로 판단했다. 검찰은 장씨와 남편 안씨가 나눈 메신저 대화 내용을 토대로 이들이 경찰 조사 이후 진술 맞추기를 한 정황도 있다고 주장했다. 과거 장씨는 정인양을 차량 안에 혼자 방치했고 시민의 신고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에 장씨는 "경찰에 10분 정도 (아이를) 차에 뒀다고 말했는데 사실 더 둔 것 같다"며 "차량 블랙박스에 영상이 남아있는지 확인해달라"고 안씨에게 부탁했다. 블랙박스에 영상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장씨는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이들은 "신고한 X이 누구냐. 또 신고하면 신고자를 생매장하겠다"는 내용의 대화도 나눈 것으로 조사됐다.
남편 안씨는 이밖에도 부인 장씨가 정인양 육아의 어려움을 토로하자 '귀찮은 X'이라고 지칭하면서 장씨의 학대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등 학대를 알고도 방관하고 묵인한 정황이 여러 군데서 확인됐다.
이들 부부는 정인양에 대한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애가 미쳤나봄. (밥을) 안 쳐먹네(장씨)" "쌍욕 나오고 패고 싶은데 참는다(장씨)" "종일 굶겨봐라(안씨)" 는 등의 대화를 장기간에 걸쳐 수 차례 나눴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400건이 넘는 메시지를 삭제한 정황도 발견됐다.
그러나 양부모는 결심 공판이 끝날 때까지도 형량을 줄여보기 위해 자신들의 '억울함'만을 강조했다. 최후진술에서 장씨는 "완벽했던 우리 공주를 제가 꺾어버리고 세상 빛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무책임하고 짐승보다 못한 엄마 때문에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딸 대신 죽고 싶다"면서도 "절대로 애가 죽기를 바란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안씨는 "염치 없지만 정인이를 많이 사랑했다"며 "아빠를 찾는 첫째 딸만 아니면 목숨으로 제 죗값을 대신하고 싶다. 어떤 처벌이든 달게 받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했다.
검찰이 구형한 장씨에 대한 법정 최고형을 1심 재판부도 그대로 받아들일 지 여부는 선고 공판이 열리는 5월14일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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