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숲속에 들어가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

조성관 작가 2021. 4. 1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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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나무들. 조성관 작가 제공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겉바속촉'

요즘 젊은 세대의 입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의 줄임말이다. '겉바속촉'은 TV예능프로그램에서도 자막으로 빈번하게 등장한다.

최근에 대형마트에서 새우튀김을 사다 먹었다. 20마리에 1만5000원. 에어프라이어에 돌려 하나씩 먹으면서 감탄을 했다.

"바사삭~ 바사삭~"

이 소리에 승부는 싱겁게 끝났다. 소리가 맛있으면 그다음은 볼 것도 없다. 프라이드치킨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전지현이 먹는 치킨은 왜 그렇게 바삭거리는 소리가 클까. 바삭거리거나 아삭거리는 소리는 청각 신경계를 활성화한다.

튀김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본어로 뎀푸라. 튀김의 생명은 겉면을 얼마나 바삭하게 튀기느냐로 좌우된다.

여기서 근원적인 질문을 해보자. 왜 우리는 씹을 때 입천장을 울리는 바삭거리는 소리를 갈망하는가. 왜 우리의 침샘은 그 ASMR 앞에 속절없이 침을 분비하는가.

새우튀김. 조성관 작가 제공

이 질문에 명쾌한 해답을 내린 사람이 있다.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1926~2001)다. 그의 저서 '음식문화의 수수께끼'를 오래전에 밑줄을 그으며 읽은 적이 있다. 마빈 해리스에 따르면 인간은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려 각각이 처한 생태학적 조건에 적응하면서 나름의 합리적인 음식문화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특정 조건에서 형성된 합리적인 관습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는 괴기하게 보일 수도 있다.

마빈 해리스에 따르면 바삭거리는 식감의 선호는 수렵·채집 문화와 관련이 있다. 인간은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는 일환으로 오랜 세월 메뚜기를 비롯한 곤충을 잡아먹었다. 메뚜기를 튀겨먹거나 구워 먹어본 사람은 안다. 입안에서 바사삭 부서지는 식감이 기분을 좋게 한다. 고소한 몸통은 말할 필요도 없다. 바삭거리는 메뚜기 식용 관습이 오랜 세월 두뇌에 축적되었고, 이것이 식문화 DNA로 자리 잡아 21세기 인간에게까지 전달되었다는 것이 마빈 해리스 이론의 골자다.

식품회사들은 마빈 해리스의 주장을 무슬림의 코란처럼 숭배한다. 감자칩을 위시한 모든 스낵류는 바삭거림을 기본으로 한다. 소비자들은 스낵류가 비만의 주범이라는 걸 알면서도 바삭거림에 취해 그 사실을 망각한다. 햄버거 가게에서 파는 프렌치프라이를 보자. 감자튀김이 숨죽은 상추처럼 축 처져 있으면 소비자들은 인상을 찌푸린다. 어디 튀김과 스낵뿐인가. 베이징덕의 바삭한 오리껍질 맛은 어떤가. 이거 생각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나 역시 마빈 해리스의 학설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칠갑산이 있는 충남 청양에서 자란 나는 소년기의 대부분을 냇가와 논두렁에서 보냈다. 학교가 파하면 가방을 내팽개치고 냇가로 나가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물고기를 잡았다. 맨손으로 '사투' 끝에 혼자 메기도 잡아보았다. 어렸을 때 가을철 논에 나가면 메뚜기 천지였다. 유리병에 한가득 메뚜기를 잡아 논두렁에서 볏짚에 불을 피워 동무들과 구워 먹곤 했다. 그 바삭거리는 고소한 맛을 아직도 나의 뇌가 기억한다.

인류는 지금까지 99% 시간을···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따뜻한 봄날 기온은 대략 섭씨 25도다. 이런 날씨에는 누구나 집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진다. 걷기만 해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카페에서도 에어컨 온도가 섭씨 25도에 맞춰질 때 이용자들의 불만이 줄어든다. 왜 우리는 섭씨 25도에서 쾌적하다고 느끼는가.

섭씨 25도는 인류의 조상이 살던 아프리카 케냐 중서부 지역의 평균 기온이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가 살던 곳이다. 아프리카 초원지대를 떠나 제각각 흩어진 지 까마득한 시간이 흘렀건만 인간의 생리적 반응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인류학자들의 결론이다. 선조시대 기후를 되살리려는 인간의 본능적 시도가 섭씨 25도에 쾌적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온열중성대(溫熱中性帶)라는 용어가 있다. 사람이 편안하게 느끼는 주위 온도 조건 범위를 뜻한다. 섭씨 25도가 온열중성대의 최적 온도다.

4월의 숲. 조성관 작가 제공

녹색을 신(神)의 색이라고 한다. 왜 우리는 숲을 보면 왜 눈이 편안해지나. 왜 우리는 주말마다 강원도를 향해 차를 모는가. 왜 산속 펜션에서 바비큐를 해 먹으면 더 맛있고, 참외 한쪽도 더 달콤하게 느끼나. 숲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어린이도 숲속에 들어가면 들뜬다. 칼 융은 이를 '집단무의식'으로 설명한다.

집 소개해주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다. '구해줘 홈즈'가 인기가 높자 유사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집 구경은 언제나 즐겁다. 살 집을 선택하는 몇 가지 기준 중에서 영순위가 전망이다. 누구나 막히지 않은 탁 트인 전망을 선호한다. 그런 전망 속에 숲이 들어온다면 의뢰인은 99.99% 그 집을 선택한다. 이런 흐름을 반영해 건설회사는 '숲세권'이라는 조어를 만들어 아파트 브랜드를 홍보한다.

다시 자문해본다. 왜 우리는 숲을 눈에 담아두려 안달인가. 고대 생물학자들에 따르면 인류가 숲속에서 산 기간은 인류 탄생 이래 99%에 해당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고생물학자들은 영장류와 인류 최초의 조상이 갈라져 나온 시기를 700만년 전으로 본다. 숲속에서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하던 인류 최초의 조상이 숲에서 나와 공동체를 이루며 집단생활을 하기 시작한 것은 1만년에서 5000년이다. 인류가 숲에서 나와 농경 생활을 하며 마을공동체를 이룬 기간은 최대한 길게 잡아야 1만년이다. 그러니까 현생 인류가 탄생한 이래 인간은 99.9%의 시간을 숲속에서 살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숲을 그리워하는 것은 인간의 DNA에 숲속 생활의 유전자가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융의 '집단 무의식' 개념의 배경이다.

맥스 애덤스의 책 '나무의 모험'.

영국의 고고학자이자 숲 전문가인 맥스 애덤스의 저서 '나무의 모험'이 최근 번역되어 나왔다. 이 책의 부제는 '인간과 나무가 걸어온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정'이다. 맥스 애덤스는 이 책에서 '인간은 나무의 자식'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나무를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나무에 대해 알고, 나무라는 재료를 다룰 줄 알게 되면서 인류가 생존을 위해 갖춰야 할 거의 최초의 지식을 얻었다."

'나무의 모험'을 넘기다 보면 여러 곳에서 번득이는 통찰이 짜릿한 지적 쾌감을 선사한다. 장작불에 관한 서술에서는 경탄이 절로 나온다.

"장작불을 바라보는 일은 단순한 쾌감을 자아낸다. 마치 조상에게 대대로 물려받아 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모종의 정서를 자극하는 듯하다. 크고 어두운 숲에 대한 두려움과도 극적으로 대비되는 감정이다. 유혹적이면서도 위험한 그 모습은 맹수와도 같아서 우리를 끌어당기면서도 함부로 범접할 수 없게 만든다. 불은 집단의 일부라는 소속감을 일깨우는 동시에, 완벽하게 혼자가 된 기분을 선사하며 영혼 깊은 곳으로 침잠해 사색하게 만든다.···"

프랑스 식물학자인 자크 타상 역시 나무와 인간의 관계를 오랜 세월 천착했다. 타상은 '나무처럼 생각하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나무와 멀어지면서 괴로움을 겪게 되었고, 나무와 가까운 삶으로 돌아갈 때 인간의 삶은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

창문으로 나무가 보이는 병실에 있던 환자들이 더 빨리 회복하고 진통제 또한 적게 복용한다고 한다. 인간은 나무와 가깝게 지내서 나쁠 게 하나도 없다.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쓰다듬으면 믿음직한 게 나무다. 나무는 언제나 아낌없이 주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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