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MBC 성희롱 사건에 2차가해 발언 논란까지
'가해자 비취재부서 전보해 피해자 보호' 심의위 권고 불이행
양찬승 사장, 피해 기자에 "부서이동은 보복성" "정치적 의도 끼어들면 안돼"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포항MBC가 소속 기자에 성적 괴롭힘을 가한 국장급 기자를 경징계하는 한편 사내 조사위원회가 권고한 가해자 부서이동 조치는 이행하지 않아 '솜방망이' 논란이 인다. 양찬승 포항MBC 사장은 노동조합과 여성인권단체 반발이 인 뒤 피해 기자에게 “이 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거나 “(부서이동은) 분리효과 없이 보복성”이라는 등 발언을 해 2차 가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취재에 따르면 양찬승 사장은 지난 8일 포항MBC 사장실에서 직장 내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신고했던 피해 기자 A씨를 면담하면서 가해자 B 국장에 대한 회사 조치를 설명하면서 “이 (성희롱) 건을 이용해서 다른 정치적인 의도가 끼어들면 안 된다”며 “(징계가) 지나치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양 사장은 가해자를 비취재부서로 전보하라는 사내 성희롱 고충심의위원회 권고를 따르지 않은 데에 “지금 보도부에 사람이 없다”며 “1층에 있으면 어차피 오다가다 마주치게 돼 있다”, “부서는 그대로 두더라도 회사에 안 들어오게 (하는 게) 현실적이지 인사발령을 내달라는 건 분리효과는 고려하지 않고 약간 보복성”이라고 말했다. B 국장 징계 결과인 감봉 형량을 두고는 “정직 2~3개월하고 감봉 6개월은 효과가 종이 한 장 차이”라며 “인사위원회가 결정을 그렇게 했다는 걸 이해해 달라”고 했다.
앞서 포항MBC 보도부 소속 28년차 B 국장은 지난 3월 1년차 A 영상기자와 차량으로 취재 현장 이동하는 과정에서 성생활을 언급하는 등 성희롱 발언을 했다. A 기자는 회사에 피해를 신고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B 국장의 업무 중 성희롱 발언도 함께 보고했다. 포항MBC는 B 국장에게 사무실이 아닌 현장 출근을 지시하고 외부위원을 포함한 성희롱 고충심의위원회를 꾸렸다.
심의위는 만장일치로 조직 내 위계관계에서 발생한 성희롱이란 결론을 내리고 “피해자 보호 조치 일환으로 가해자와 분리 및 가해자와 업무가 중복되지 않도록 적절한 인사 조치와 징계를 권고한다”고 밝혔다. 특히 “현재 피해자가 현업 부서 업무를 강하게 희망하는 만큼 가해자의 기자직 배제와 타부서 발령을 권고”했다.
그러나 포항MBC는 심의위 권고를 따르지 않았다. 인사위원회는 지난달 31일 B 국장에 감봉 6개월 징계를 의결했다. B 국장 기자직 배제와 타 부서 발령은 이행하지 않았다. B 국장은 전과 같이 현장 출근 중이다. 포항MBC 사규상 감봉액은 최대 임금 총액의 10%로, 포항MBC 민주언론노동조합은 총 감액을 100만원 안팎으로 추산한다.
심의위 외부위원으로 참여했던 포항여성회는 다음날인 지난 1일 양 사장에게 피해자 보호 조치를 이행하지 않은 데 공개 질의하며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이후 8일 양 사장과 피해자의 면담이 이뤄졌다. 포항MBC민주언론노조도 사측 담당자를 만나 심의위 권고 수용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포항MBC 민주언론노조는 13일 성명을 내고 “양 사장은 심의위 권고를 무시하고 어떠한 인사 조치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피해자의 면전에서 비상식적이고 명백한 2차 가해 발언까지 했다”며 “직장내 성희롱 사건을 엄중하게 처리할 것을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양 사장이 직접 정치적이라는 딱지를 붙여 매도하며 회사의 미흡한 대처를 수용하라고 압박한 것”이라고 했다.
노조는 “공영방송사 사장에게 요구되는 성인지 감수성에 비춰보면, 양 사장의 이번 성폭력 사건에 대한 대처는 사회적 기준에 한참 못 미치고 부끄러운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사측에 심의위 권고에 따라 가해자를 타 부서에 발령할 것을 요구했다. 양 사장의 2차 가해 행위도 엄정하게 조사해 처벌하라고도 밝혔다.
양 사장은 15일 통화에서 해당 발언에 대해 “사내 노조가 2개로 갈려 있는 상황에서 필요 이상의 가혹한 징계가 나왔을 때 정치적으로 이용될 여지가 있고, 그래서 인사위가 공정하고 합당한 징계를 내렸다고 얘기한 것”이라며 “2차 가해라니 황당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가해자 전보' 권고를 불수용한 뒤 피해자 문제 제기에도 조치하지 않은 데에는 “피해자가 원한다면 심의위 권고를 전격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면서도 “B 국장을 (기존에 출입하던) 울진·영덕에 배치하는 게 여전히 경영자 입장에서 맞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양 사장은 “보도부에 부장을 제외하고 취재기자는 5명인데 1명은 대기발령 중”이라며 “B 국장을 타부서로 발령하면 울진·영덕에 보낼 사람이 없다”고 했다.
양 사장은 또 “회사는 피해자 의견을 구하고 조치 방향을 알리려 거듭 연락했지만 피해자가 계속 전화를 받지 않고 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록에 따르면 A 기자는 심의위 조사 과정에서 사건에 대한 의견을 밝힌 상태였다. A 기자는 사측 직원의 연락에 이같이 알리고 '이외에 밝힐 의견은 없어 비공식 자리는 거절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양 사장은 “피해자의 힘든 점을 청취하는 자리였고, 피해자가 최근 힘든 일을 겪었으니 회사 측 진행상황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2차 가해 의도는 없었으나 피해자가 심리적 압박이나 좌절감을 느꼈다면 제 전달 방식이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민주언론노조는 14일 박성제 MBC 사장에게 해당 성명을 전달했고, 피해자 보호 조치와 양 사장 발언에 대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시 여성인권단체 등과 기자회견을 여는 등 문제 제기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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