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입구 '택배 탑'..주민도 기사도 "고단한 하루하루"
안 찾아간 물건 99개 다시 놓여
택배기사 밤 10시까지 고객 응대
입주민 손수레 끌며 "이송 어려워"
택배노조 '대화 촉구'공문 다시 전달
“입주민들에게 오전 10시부터 다시 물건을 찾아가시라고 말했습니다. 전날 전달 안 된 배송품과 오늘 새로 배송되는 물품들을 다시 이곳에 쌓아놓을 예정입니다.”
15일 오전 10시 서울 강동구의 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앞 지하철역 부근. 전날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의 ‘아파트 앞까지만 배송’ 방침 시행 이후,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택배 물품 99개(전날 전체 약 800개)가 다시 이곳에 놓였다. 전날에 이어 이날에도 택배노조 기사들은 이곳에 물품을 적재할 예정이다.
주인을 찾지 못했던 99개의 물품은 전날 오후 10시께 택배 차량에 실려 보관됐다. 이날 늦은 밤까지 입주민들이 찾아가지 않은 신선식품(닭갈비, 수산물, 물만두 닭발, 굴비 등)도 25개 가량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조합원들이 오후 9~10시 사이에 입주민 집 앞까지 직접 배송했다.
한 조합원은 “음식이나 그 외 생물의 경우 유통기한이 있어, 입주민들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예외적으로) 직접 배송했다”고 설명했다.
전날 택배기사와 입주민 모두 고단한 하루를 보냈다. 택배노조 조합원 8명과 아르바이트 직원 3명이 물품 배분 작업에 투입됐고, 퇴근 시간대부터는 기온이 급격히 낮아져 입주민들이 손을 ‘호호’ 불어가며 손수레를 끌고 나와 물건을 싣기도 했다.
택배기사들은 밤 늦게까지 고객들의 연락에 대응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입구까지만 배송하게 돼 퇴근 시간을 다소 앞당길 수 있었으나, 오후 10시까지 현 상황이 생소한 고객들의 택배 관련 문의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기사들은 전날 오후 내내 고객용 문자를 작성하는데 애를 먹었다. 원래 택배 물품이 도착 장소에 오면 기사가 물품 바코드를 기기로 스캔하고, 이후 자동으로 고객에게 도착 알림 문자가 전송된다. 그런데 이번 단체행동에 속한 택배사의 경우 이 도착 알림 문자 내용을 수정하는 기능이 없다. 택배 기사들은 각각 250명 가까이 되는 입주민의 휴대폰 번호를 일일이 기입하며 “지하철 역 앞에 오시면 된다”는 추가 문자를 보냈다. 기사들이 문자를 보내고 있는 와중에는 “왜 다른 택배사 직원들은 배송해주는데 당신들만 이러느냐”는 항의 전화에도 응해야 했다.
입주민들 역시 택배 물품이 바깥에 놓여 애를 태웠다. 한 입주민은 신선식품을 찾아가며 “길바닥에 이걸 두면 어떻게 하냐”며 강하게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또 다른 입주민은 “식품이 변질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부피가 큰 물품에 대한 이송 불편 호소도 이어졌다. 70대 한 입주민은 “쌀 등 큰 물건은 내가 와도 직접 운반할 수 없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대형 화분을 여러 개 시켜 이를 끌고 가기 어려웠던 한 입주민은 택배 노조 아르바이트생이 손수레에 화분을 실어 집앞까지 배송해주기도 했다. 입주민들은 단체행동에 참여한 택배회사 명칭을 두고 혼동을 겪기도 했다. 딸이 택배를 가지러 오라고 해서 무작정 나왔다는 한 60대 입주민은 “무작정 나왔는데 이곳에 없다”며 “택배회사 이름을 모르는데 딸이 지금 또 전화가 안 돼 당황스럽다”고 했다.
현장을 바라보는 입주민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다. 한 손에 아기가 탄 유모차를 끌고 다른 손으로는 택배 물품을 든 한 30대 여성 입주민은 “많이 불편하다. 그래도 택배 기사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응원한다”고 했다. 택배기사들을 위해 마실 것을 사다 주는 입주민도 있었다.
어떤 입주민들은 강하게 항의했다. 한 70대 입주민은 “우리가 하는 게 왜 갑질이냐”고 했고, 또 다른 입주민은 술을 마신 뒤 오후 9시가 넘어 3차례 찾아와 “이런 짓 하지 말라”며 기사들에게 욕설을 했다.
한편 지난 14일 오후 6시18분과 8시께에는 두차례 관할 파출소 경찰관이 출동하기도 했다. 택배 물품이 바닥에 쌓여있다는 신고를 받은 경찰관들이 출동해 “최대한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하지 말아주길 바란다”는 의사를 전했다.택배노조는 이날(14일) 오후에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입주자 대표회가 대화와 협상에 참여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전달했다.
김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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