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업, 투자 실패로 빚더미 30대.. 죽음의 문턱에서 구조되다
“철컥.”
지난 7일 오후 8시 30분,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한 모텔 방. 경찰이 마스터키로 방문을 따고 들어가자, A(31)씨가 그곳에 있었다. 극단적 선택을 하기 직전이었다. 경찰과 함께 온 이는 친형이었다. A씨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죽음의 문턱에 있던 A씨는 경찰과 친형에 이끌려 집으로 향했다.
A씨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경찰과 A씨 가족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의 한 회사에 근무하는 A씨는 2년여 전부터 1인 디자인 업체를 부업으로 운영해왔다. 작년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지인들로부터 모은 투자금 3000만원과 본인 돈 2000만원을 들여 마스크 유통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다 작년 말 물건을 떼오는 과정에서 거래처가 보내준 사진만 믿고 5000만원을 송금했다가 물건을 받지 못하는 사기를 당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투자를 한 지인으로부터 “네 잘못이니 돈을 돌려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A씨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결혼 자금을 포함한 전 재산과 은행 대출을 더해 비트코인에 투자했다. 모험은 1억8000만원 손해로 끝났다.
A씨는 심리적인 압박이 커져갔다. 사기, 투자 실패에 더해 여자친구와도 사이가 소원해졌다고 한다. A씨의 형은 “최근 들어 머리가 빠져 집 화장실에 머리카락이 수북히 쌓일 정도로 동생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고 했다.
A씨는 7일 오전 9시쯤 집을 나선 뒤 행적이 묘연해졌다. 동생 회사로부터 ‘A씨가 출근하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은 A씨 형은 오전 11시 50분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A씨 형에게 “A씨 컴퓨터에서 인터넷 접속 기록, 유튜브 시청 기록 등을 확인해보고 전에 살던 집 등 갈만한 곳을 모두 뒤져보라”고 했다. A씨의 유튜브 계정에는 그날 새벽 4시 32분부터 4시 55분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과 관련된 영상을 시청한 기록이 남아있었다. A씨 가방에 들어있던 공책에는 ‘투자 실패 때문에 고통스럽다’ ‘가족과 여자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메모가 적혀있었다.
A씨 형은 동생 회사, 전에 살던 집, 인근 PC방 등을 샅샅이 뒤졌지만 동생을 찾지 못했다. 오후 8시 A씨 형이 ‘설마 죽기야 하겠어’라며 체념하려던 순간, 경찰이 집으로 찾아왔다. “한번만 더 단서를 찾아보자”는 경찰의 말에 A씨 형은 동생이 평소 현금 대신 카드를 많이 사용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형은 동생의 카드 내역을 확인하려 했지만 카드사에선 ‘영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소문한 끝에 동생의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는 동생 친구의 도움을 받아 내역을 확인할 수 있었다. A씨는 집에서 나선 직후인 오전 9시 7분 걸어서 5분거리의 모텔에서 3만5000원을 결제한 기록이 있었다.
A씨 형은 “실패를 비관해 청년들이 목숨을 끊는다는 언론 보도를 보면서도 내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길 거란 생각은 못했다”며 “마지막 순간 ‘밤이 깊으면 더 위험하다’며 포기하지 말자고 이끌어준 경찰관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A씨 형은 지난 8일 서울경찰청 ‘칭찬합시다' 홈페이지에 “대한민국 경찰분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할 수 있는 것이 칭찬글을 작성하는 것 밖에 없었다”고 했다. A씨 형을 도와 A씨를 구조한 서울 강북경찰서 정민호 경위는 “코로나 사태 이후 실업이나 투자 실패를 겪던 청년들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늘고 있다”며 “청춘들이 조금 더 희망을 갖고 버텨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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