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결국 그사람 방식대로 되지? 가스라이팅 의심하세요
배우 서예지와 김정현이 연애 당시 나눴던 카톡 대화 내용이 공개되며 서씨 행동이 ‘가스라이팅 범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씨가 김씨에게 ‘다른 이성에게 딱딱하게 굴라'고 하거나 스킨십 장면을 삭제하도록 요구했다는 이유에서다.
‘가스라이팅'이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들고, 이로써 타인을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네 말이 틀렸어’ ‘네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거야’ 등의 말을 반복함으로써 피해자 스스로 자존감을 잃고 자신이 비합리적이라고 느끼게 만든다.
또 정신적으로 약해진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의존하도록 만들어 가해자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가해자는 이런 수법으로 피해자의 재산이나 기타 이득을 취득할 수도 있다.
이 용어는 1938년 ‘가스등(Gaslight)’이라는 연극에서 유래했다. 부부가 등장하는 이 연극에서 남편은 집안의 가스등을 일부러 어둡게 만들고는 부인이 ‘집안이 어두워졌다'고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아내의 말을 부인한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자 아내는 점차 자신의 현실인지능력을 의심하면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결국 남편에게 의존하게 된다.
가스라이팅은 피해자의 심리 자체를 조작한다는 면에서 친밀한 관계에서 주로 벌어진다. 연인이나 부부 관계에서 데이트 폭력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직장, 친구 관계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 작년 1월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 2호로 발탁됐던 원종건씨도 가스라이팅 논란으로 탈당했다. 원씨 전 여자친구는 “원씨가 최고 기온 35도가 넘는 여름에도 긴 와이셔츠에 청바지만 입으라고 했다”며 “치마를 입더라도 다리를 다 덮는 긴 치마만 입도록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가스라이팅의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 스스로 판단력을 잃어버리게 해 본인이 피해자라는 자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신체적·언어적 폭력을 가하거나 감금, 협박하는 것과 달리 흔적이 남지 않기 때문에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피해 사실을 확인하기도 어렵다.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는 다음 6가지 중 한가지라도 해당한다면 스스로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지 않은지 의심해봐야 한다고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스스로 가스라이팅 피해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제3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가족문제 전문 주식회사 케어앤로 박선영 가족문제 전문 상담사는 “스스로 가스라이팅 피해가 의심된다면 주변에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자신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며 “가해자와의 관계를 바로 완전히 끊어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스라이팅 피해를 자각했다고 해도 이를 법적으로 처벌하기는 매우 어렵다. 정신적, 심리적 지배를 당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데이트 폭력 중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생긴 개념이다보니 처벌 근거나 요건도 미비하다. 길인영 변호사는 “가스라이팅이 스토킹, 폭력, 감금, 협박 등 다른 형태의 데이트폭력으로 나타나게 되면 비로소 처벌이 가능해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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