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화된 코로나 검사, K방역이 흔들린다
그동안 팬데믹에서 한국은 선방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월23일자 기사 ‘코로나19 유행에 대한 글로벌 최고의 대응, 1년 후’에서 한국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한국은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부문에서 선진 산업 민주국가들 사이에서 계속 두각을 나타내왔다.”
올해 들어 백신의 등장으로 팬데믹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집단면역 형성까지는 긴 시간이 걸린다. 극단적 봉쇄 조치 없이 유행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K방역’은 여전히 세계적으로 코로나 대응 모범 공식으로 통한다.
진단검사는 그 출발점이었다. 한국은 조기에 대규모 진단검사 시스템 구축에 성공하면서 검사(Test)-추적(Trace)-치료(Treat)로 이어지는 ‘3T 전략’을 완성했다. 팬데믹 초기 정부가 내린 몇 가지 결정이 한국식 모델의 향방을 잡았다.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 질본)와 국내 진단키트 제조사가 모인 지난해 1월27일 서울역 회의는 상징적이다. 이 자리에서 질본은 제조사들에 코로나19 진단키트 개발과 생산을 독려했다. 중국에서 귀국한 50대 남성이 세 번째 확진자로 막 판정받던 무렵이었다. 지역 전파 가능성은 미지수로 남아 있었다. 회사들 처지에선 쉽사리 투자를 결정하기 어려웠다. 코로나 유행이 심각해지지 않을 경우 기껏 양산한 코로나19 진단키트가 곧바로 창고행이 될 수도 있었다. 보건복지부는 그렇게 되어 재고가 발생한다면 그 재고를 떠안겠다고 약속했다. 정부에서 책임질 테니 믿고 생산라인을 돌리라는 신호였다.
이어서 질본은 당시 질본 산하 17개 보건환경연구원에 한정돼 있던 코로나19 검사실을 늘리기 위해 학계와 함께 민간 의료기관 평가에 나섰다. 2월 초 평가를 통과한 46개 민간 검사실에서 코로나19 검사가 시작되었다. 검사실은 이후 지속적으로 추가돼 현재 200여 개 기관이 코로나19 검사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보다 먼저 코로나19 진단키트를 개발한 나라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방역에 뚜렷한 성과를 낸 곳은 드물다. 초기부터 코로나19 대응에 참여해온 한 진단검사 전문가는 그 차이를 ‘정치적 결단’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진단시약을 만드는 외국 업체들의 기술력이 결코 국내 회사보다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잘한 것은 ‘대규모 검사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결정을 적시에 내린 것이다. 서울역 회의에서 회사들에게 대량생산을 독려했던 건 어떻게 보면 도박이자 베팅이었다. 그 책임을 지겠다는 방향으로 정치적 결단을 한 것이다.”
도박이자 베팅인 이유는, 코로나 유행이 심각해지지 않아 진단키트 제조사의 재고를 정부가 떠안게 될 경우, ‘재정을 방만하게 썼다, 책임지라’는 비판이 뒤따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각국의 방역 성적을 가른 지점은 진단키트 개발 그 자체가 아니라 빠르고 정확하게 검사를 확대하는 능력이었다. 한국 정부는 기민하게 정치적 판단을 내리며 이 일을 해냈다. 방역이라는 과학적 전문성과 정치적 리더십이 결합한 성공 사례가 바로 한국식 대규모 검사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그 후 1년, K방역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진단검사’가 흔들리고 있다. 검사를 흔드는 곳으로는 다름 아닌 정치권이 지목된다. 코로나19 초기, 방역과 정치가 내던 시너지가 사라졌다는 소리다. 지금은 정치를 위해 검사라는 방역의 큰 축이 ‘활용’되고 ‘동원’되는 모양새가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1년 사이 코로나19 진단검사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장면 1. 깨진 균형
지난해 5월 에콰도르 연구팀은 한국산 코로나19 진단키트 하나를 평가해 유럽 임상바이러스학회(ESCV)의 공식 학술지에 발표했다. 논문 요지는 해당 제품의 민감도(양성 환자를 잡아내는 성능)가 회사에서 밝힌 데이터보다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평가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긴급승인을 받은 검사와 한국산 진단키트의 성능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시험용 검체 54개 중 CDC 긴급승인 검사를 통해 33개가 양성으로 확인되었다. 반면 한국 제품이 잡아낸 양성 검체는 22개에 그쳤다. 11개는 놓친 셈이다. 에콰도르 연구진은 해당 제품의 민감도를 66.7%로 계산했다.
이 제품은 국내 한 진단시약 회사가 개발한 코로나19 ‘신속 PCR’ 검사 제품이다. 지난해 7월 응급용 선별검사 진단키트로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질병관리청으로부터 긴급사용승인을 받았다. 심사를 받기 위해 이 회사가 식약처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신속 PCR’ 검사의 민감도는 100%이다. 에콰도르 연구진이 평가한 민감도와 크게 차이가 난다. 왜 이렇게 다른 수치가 나왔을까? 설마 중간에 조작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작이 아니다. 의료계 검사 전문가들 설명에 따르면, 같은 진단키트라도 시험 세팅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과값이 나올 수 있다. 코로나19 중환자에게 채취한 검체처럼 바이러스 양이 많은 검체로 검사를 돌리면 민감도가 낮은 진단시약도 양성 검체를 100% 잡아낼 수 있다. 반면 무증상, 경증 환자처럼 바이러스 양이 적은 검체는 진단키트의 성능에 따라 양성을 잡아낼 확률이 크게 달라진다. 이 회사는 〈시사IN〉에 “에콰도르 연구팀이 우리가 권장하는 조건과 장비로 평가를 진행하지 않았다. 정정 요청을 해놓은 상태이고 다시 한번 테스트를 진행해서 결과를 취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회사만 민감도 100%라는 결과를 제출한 것은 아니다. 이 업체와 함께 긴급사용승인을 받은 코로나19 ‘신속 PCR’ 제품 9개 가운데 7개 업체가 자사 제품의 민감도·특이도를 100%라고 보고했다.
의약품에 대한 임상평가는 제품을 출시하려는 회사가 의료기관과 계약을 맺어 자체적으로 수행한다. 진단검사뿐만 아니라 백신과 치료제도 마찬가지다. 다만 체외진단 의료기기로 분류되는 진단키트(진단시약)는 인체에 직접 투여되는 약물만큼 규제 당국의 기준이 높지는 않다. 한 대학병원의 진단검사 전문의는 “(식약처 심사를 통과한 제품이) 실제 필드에 나왔을 때 성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풍토가 일부 있다”라고 말했다. 실전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임상평가에 모두 포함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이런 빈틈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식약처 허가를 받은 진단키트가 시장에 나오면 여러 병원의 검사실에서 이 제품을 써보고 평가한 뒤 논문으로 발표하는 것이 일반적인 과정이었다. 의료계와 학계 내에서 일종의 자정작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실제 성능이 떨어지는 제품은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걸러지는 과정을 밟아왔다. 이와 같은 일련의 프로세스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숨 가쁘게 전개되는 팬데믹 앞에서 이 같은 자정작용은 작동하기 어려웠다. 그간 업계를 지켜왔던 느슨한 균형이 코로나19 검사 시장에서는 깨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점을 염려해 지난해 2월 질병관리청은 처음으로 코로나19 진단키트에 대한 긴급사용승인을 심사할 당시 회사로부터 임상평가 데이터를 받지 않았다. 대신 질병관리청 검사실과 대한진단검사의학회 소속 병원 4곳에서 진단키트에 대한 임상평가를 실시했다. 심사 대상은 코로나19 검사의 표준으로 통하는 ‘유전자증폭 검사(일반 PCR)’로 한정했다. 이런 방식의 심사를 통해 코로나19 ‘일반 PCR’ 검사 진단키트 7개가 시장에 나왔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유행 초기 대규모 검사 시스템을 조속히 구축해야 할 필요성에서 나온 한시적인 방법이었다.
그 이후 코로나19 진단검사에 대한 허가·심사는 통상적인 방식으로 굴러갔다. 업체는 자체적으로 수행한 평가 데이터를 식약처에 제출했고, 심사 조건을 충족한 진단키트가 대거 시장에 나왔다. ‘일반 PCR’ 검사보다 진단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는 진단검사들이 긴급사용승인이나 정규 허가를 얻어내기 시작했다. 식약처에 낸 임상평가 데이터에 따르면 민감도와 특이도가 90% 이상인 ‘신속항원검사’ ‘신속 PCR 검사’가 속속 등장했다. 수치로만 봐서는 ‘일반 PCR 검사’에 크게 뒤질 것 없는 정확도였다.
그래도 승인 과정이나 검사의 특성, 회사의 기술력 등에 대해 아는 전문가라면 업체가 밝힌 숫자를 분별 있게 가려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진단검사는 의료계의 울타리 안에 머무르는 다른 검사들과 달랐다. K방역이 크나큰 성공을 거두며 그 핵심으로 평가되었던 진단검사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진단검사 업체들이 손에 쥔 성적표는 표면적인 숫자로만 봐서는 흠잡을 데 없었다. 민감도·특이도가 90% 이상이라는 평가는 강력한 주술과 같았다. 이는 두고두고 위력을 발휘하며 코로나19 진단검사 판을 뒤흔들게 된다.
장면 2. “정확도 90%”라는 발언
3차 대유행 곡선이 가팔라지던 지난해 12월7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소통수석실을 통해 방역 관련 지시사항을 밝혔다. 감염세를 꺾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주문하는 내용이었다. 그 가운데 ‘신속항원’ 검사가 언급되었다. “최근 들어 정확도도 높아졌고 검사 결과를 즉각 확인할 수 있는 신속항원검사 활용도 적극적으로 추진하라”는 지시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90% 이상 정확도가 나오기 때문에 빨리빨리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 분류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신속항원검사를 대체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지시”라고 설명했다.
청와대가 거론한 제품은 국내 진단시약 회사인 SD바이오센서에서 개발한 신속 진단키트다. 이 제품은 지난해 11월11일 식약처 정식 허가를 받으며 당시 유일하게 국내에서 사용 가능한 ‘신속항원검사’가 되었다. 유전자증폭 장비를 돌리는 ‘일반 PCR’ 검사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6시간이 걸리는 데에 비해, 임신 테스트기처럼 쓸 수 있는 신속항원검사는 30분 내에 검사 결과를 알 수 있다. 이런 장점을 들어 신속항원검사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적지 않았지만 정부는 정확성이 낮다는 이유로 그동안 반대 방침을 고수해왔다. 신속항원검사는 검사 원리상 ‘일반 PCR’ 검사 대비 정확도가 50~70%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식약처 심사에서 SD바이오센서가 제출한 자사의 신속항원검사 정확도는 이런 통념을 뛰어넘었다. 식약처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제품의 민감도와 특이도는 각각 90%와 96%에 달했다. “최근 들어 정확도가 높아지고” “90% 이상이 나온다”라는 문 대통령과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은 여기에 기인했다. 이후 당에서도 방역정책에 신속항원검사를 적극 도입하자는 취지의 발언이 연달아 나왔다. 지난해 12월14일 이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 누구나 손쉽게 신속진단키트로 1차 자가 검사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추가 정밀검사를 받도록 하면 어떨지 논의할 시기가 됐다”라며 당 정책위원회에 방역 당국과 신속진단키트를 이용해 자가 진단하는 방안을 협의하라고 지시했다. 실제 임시 선별검사소에도 신속항원키트가 보급돼 쓰이기 시작했다. 검사 결과를 30분 내에 알 수 있는 데다 정확도 역시 기존 ‘일반 PCR’ 검사법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는다면, 분명 코로나19 방역 태세를 획기적으로 전환할 카드였다. 하지만 SD바이오센서는 어떻게 검사 원리의 한계를 극복하고 높은 정확도의 키트를 개발해낼 수 있었을까? 이는 식약처 허가 사항을 꼼꼼히 읽으면 짐작할 수 있다. 식약처는 해당 제품의 사용 시 주의사항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밝혀놓았다. “본 제품은 코로나19 증상이 발현된 이후의 환자 검체로 임상 평가가 실시되었으며, 무증상자에 대한 평가는 실시되지 않았다.” 제한된 환경에서 비교적 바이러스 양이 많은 검체로 임상 평가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신속항원검사’ 도입 논의가 무르익던 지난해 12월23일 대한진단검사의학회는 이 제품에 대한 대규모 임상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평가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3만명의 바이러스 배출량을 반영한 양성 380개, 음성 300개 검체로 성능을 측정했다. 그 결과 SD바이오센서 신속항원키트의 민감도는 ‘일반 PCR’ 검사 대비 41.5%로 나타났다. 한국은 코로나19 검사 역량이 충분하고 선별진료소 접근이 용이해 감염 초기에 검사를 받는 경우가 많아 확진 당시 바이러스 배출량이 적은 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국내 검사자의 바이러스 분포도를 반영한 검체로 평가를 하자 성능이 확 떨어지게 나타난 것이다. 41.5% 민감도는 기존 ‘일반 PCR’ 검사로 잡을 수 있는 확진자 중 절반을 놓치게 된다는 뜻이었다. SD바이오센서는 〈시사IN〉에 “브라질·독일·스위스에서 평가를 진행한 결과 민감도는 77~89%로 여전히 높게 나왔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방역 당국의 지침으로는 지금도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신속항원검사’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발표 이후 보건의료 현장에서는 이 검사법이 거의 쓰이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장의 한 방역 요원은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신속항원검사를 시작할 때 중앙정부에서 직접 진단키트를 나눠줬는데 물량이 많지는 않았다. 그 이후부터는 국비가 아니라 지자체 예산으로 신속항원키트를 조달해야 하는데 정확성이 낮은 검사를 굳이 할 필요가 없어서 대부분 이 키트를 쓰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장면 3. ‘나이팅게일 센터’의 뒷면
‘신속항원검사’ 이슈가 일단락되어갈 무렵 ‘신속’을 약속하는 또 다른 코로나19 검사가 떠오르고 있었다. ‘신속유전자증폭 검사(신속 PCR 검사)’였다. 경기도 여주시 소재 진단시약 업체인 AMS바이오는 자사의 ‘신속 PCR’ 제품이 ‘일반 PCR’ 검사의 정확성과 ‘신속항원검사’의 신속성을 모두 갖춘 검사로 1시간 안에 결과를 알 수 있다고 홍보한다. 여주시는 지난해 12월 이 업체와 위탁계약을 맺고, 여주시청 앞에 ‘나이팅게일 센터’라는 코로나19 신속 PCR 검사소를 설치해 의욕적으로 이 사업을 시작했다. 여주시청의 보도자료를 통해 이항진 시장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국민들의 피로 누적과 경기침체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은 ‘신속 PCR’뿐이다”라고 강변했다.
여주시의 남다른 행보는 금세 관심을 불러 모았다. 1월19일 더불어민주당 이광재·황희·신현영 의원이 공동 주최한 ‘코로나19 안심 ZONE, 안심 도시, 방역과 경제활동 두 마리 토끼 잡기’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발제 및 토론자로 초대된 사람은 총 5명. 이항진 여주시장, 한지연 여주시 전략정책관, 박혜린 AMS바이오 대표, 김지효 AMS바이오 연구소장,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였다. 사실상 여주시가 ‘신속 PCR’ 검사를 모범 사례로 소개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시사IN〉 취재 결과, 여주시가 운영하는 신속 PCR 검사소는 방역 당국의 승인 사항과 감염병 예방법을 어긴 불법 검사시설이었다(〈시사IN〉 제706호 ‘찬사받은 ‘신속 PCR’ 알고 보니 허점투성이’ 기사 참조). 1시간 만에 신속한 검사가 가능하다는 설명은 사실과 달랐다. 여러 명을 대량으로 검사할 경우에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가장 중요한 정확도 역시 의심스러운 지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이런 사실을 파악한 질병관리청은 3월 초 AMS바이오 측에 ‘신속 PCR 제품이 승인 범위를 벗어나 오사용(잘못 사용)되고 있으니 시정하라’는 취지의 경고성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여주시는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3월22일 이 업체와 계약을 연장했다. 1차 계약금 14억원에 2차 계약금 12억원이 추가돼 여주시 예산에서 AMS바이오에 지불하는 총 금액은 26억원으로 불어났다. 검사 횟수가 늘어나거나 기간이 길어지면 이 금액은 더 커지게 된다. 적지 않은 예산을 들이는 사업임에도 해당 검사는 양성·음성 판정을 내리는 법적 효력이 없다. 이 때문에 여주시는 3월 중순 경기도 내 외국인 노동자 전수검사 행정명령이 내려왔을 당시, 외국인 대상으로는 이 검사를 사용하지도 못했다.
AMS바이오를 비롯해 국내 업체들이 개발한 ‘신속 PCR’ 검사는 ‘일반 PCR’ 검사 원리를 그대로 따르되 시간만 줄인 일종의 약식 형태다. 1시간30분에서 2시간가량 걸리는 유전자증폭 시간을 30분으로 단축했다. 시간이 짧아진 만큼 증폭 반응이 충분하게 일어나지 않을 수 있기에 검사 원리상 일반 PCR보다 정확성이 낮아진다. 질병관리청과 식약처는 지난해 7월 응급용 선별검사로 사용 범위를 제한해 ‘신속 PCR’ 검사 제품 9개에 긴급사용승인을 냈다. 코로나19 유행이 장기화하면서 의료기관에서 응급수술이나 빠른 처치가 필요한 환자를 위해 정확도는 다소 낮더라도 검사 시간을 단축하는 검사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AMS바이오의 제품이 이때 바로 이 ‘응급용’ 긴급사용승인을 받아 국내 시장에 출시되었다. 즉 AMS바이오의 ‘신속 PCR’ 검사는 규정상 병원 응급실에서만 써야 하는 제품인 것이다. 여주시처럼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쓰는 건 허가 사항 위반이다. 사실 AMS바이오가 문을 두드린 지자체는 여주시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12월20일 강원도 원주시청에서는 ‘코로나19 종식 플랜’ 차담회가 열렸다. 이 역시 이광재 의원이 주최한 자리였다. 원주시는 이 의원의 지역구다. 원주시장과 원주의료원장, 원주세브란스 기독병원장, 보건소장이 참석한 이 자리에 코로나19 신속검사 업체 두 곳의 대표가 초청되었다. 그중 한 명은 AMS바이오의 박혜린 대표.
이날 차담회에서 원주시 보건소장이 부정적인 의견을 비쳤고, 원주시는 ‘신속 PCR’ 검사를 도입하지 않았다. 그 밖에도 AMS바이오가 의사를 타진한 지자체 몇 곳이 있지만 검토 단계에서 접은 것으로 알려진다. 병원 응급실용으로 승인받은 ‘신속 PCR’ 검사를 일반 시민 대상의 광범위한 스크린 검사로 쓰기에는 위험부담이 따랐다. 정확성이 떨어지는 검사를 전면적으로 썼다가 방역망에 구멍을 낼 위험도 있었다. 〈시사IN〉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여주시에서 '신속 PCR' 검사에서 나온 양성 반응 가운데 40%는 가짜 양성이었다('[단독] 코로나19 신속 검사, 양성예측도 60%에 그쳐' 기사 참조). AMS바이오 측은 검사의 정확도가 낮다는 지적에 “임상시험 결과는 공인인증 받은 SCL이라는 곳에서 절차대로 진행했다. 그 결과 저희 것이 민감도, 특이도 100%로 나온 것이다”라고 답했다. 허가기준을 어겨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는 해외로 수출만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여주시에서 사용하고 있지 않느냐고 물으니 “여주시는 시범 뭐 그런 사업으로 지정돼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답했다.
익명의 관계자에 따르면 여주시에서도 ‘신속 PCR’ 도입을 주도한 쪽은 코로나19 검사의 주무부서 격인 여주시 보건소가 아니라 시장실과 정무 라인이다. 시장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뜻이다. 여러모로 무리가 따르는 이 검사를 이 시장은 왜 밀어붙인 것일까.
장면 4. 정치적 열망이 방역을 관통할 때
한 지자체 관계자는 “신속 검사는 정치인들 입장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도구”라고 말했다. “정치인과 지자체장을 찾아온 많은 업체들이 ‘일반 PCR’ 검사의 민감도와 특이도가 99%인데 우리 신속 검사 제품도 90%는 된다는 식으로 홍보를 한다. 의학적으로 검사 정확성의 10% 차이가 얼마나 큰지, 회사가 가져온 수치가 어떻게 나온 건지 잘 모르는 비전문가로서는 혹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검사를 도입한 건 상당한 정치적 성과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신속 PCR’ 사업을 시작한 이후 이항진 여주시장은 중앙 정계에 등장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1월19일 국회 토론회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신속 PCR’ 검사와 관련해 이 시장을 찾았다.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장들 사이에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월25일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가 주최한 ‘코로나 1년, 경제의 봄을 맞이하자’ 토론회에서 이 시장은 코로나19 극복 사례 발제자로 나섰다. 염태영 수원시장,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이 직접 여주시청 나이팅게일 센터를 찾아 ‘신속 PCR’ 검사소를 견학하고 갔다. 이윽고 3월16일에는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진행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이 시장은 여주시 사례를 소개할 기회를 얻었다. 빠른 데다 정확성까지 보장한다는 ‘신속 PCR’ 검사 도입이 여주시의 방역 성과로 떠오르면서 이항진 시장의 정치적 위상은 단시간에 뚜렷하게 각인되었다.
이 불똥은 타 지자체의 방역 일선으로 튀었다. 지역의 한 보건 관료는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여주시에서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고, 중대본 회의에서 총리의 칭찬까지 받다 보니 다른 지자체장들도 신속 검사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왜 우리는 여주시처럼 못하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많이 걱정스럽다.”
정치와 과학이 만나면
K방역이 각광을 받으며 어느새 진단검사는 방역 수단을 넘어 정치적 활용 도구와 성과물의 위치에 올랐다. 뜨겁게 달궈진 진단키트 시장이 이를 더욱 부채질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 속에서 방역의 무게중심이 필요 이상으로 검사 쪽에 기울게 되었다고 말한다. 검사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일종의 ‘검사 만능주의’가 팽배해졌다는 것이다. 검사를 많이 하면 거리두기 단계를 높이지 않아도 유행을 관리할 수 있고, 검사를 많이 해서 양성자를 걸러내면 경제를 일정 부분 재개할 수 있으며, 검사를 주기적으로 하면 안전하게 학교 문을 열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이러한 열망 속에서 ‘신속항원검사’나 ‘신속 PCR’ 검사처럼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검사법들이 지자체와 국회를 가리지 않고 여러 경로로 정치권에 유입되고 있다. 2월8일 국회 대정부 질의의 한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이 자리에서 이광재 의원은 정세균 총리에게 “여주시에서 ‘신속 PCR’ 검사를 지시했는데 성과를 어떻게 보나?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확대를 요구하면 허용하겠나?”라고 물었다. 정 총리는 “가능하면 빨리 확진자를 찾아내 전염을 막아야 한다. 지자체에서 솔선수범해서 이러한 노력을 하면 좋겠다”라고 답했다. 여주라는 한 도시 사례가 결코 여주에만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어떤 방식이든 검사를 늘리면 방역에 도움이 된다는 시각도 있다. 한 감염병 검사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진단검사 분야 종사자로서 검사의 비중이 커지는 게 나쁠 리 없다. 하지만 각각의 검사에 분명한 특성과 그에 따른 한계가 있다. 전문가가 보기에는 불가능한 일을 회사의 홍보만 믿고 하겠다는 움직임이 적지 않다. 국가적 자원은 자원대로 낭비하고, 부정확한 진단은 진단대로 남발될 수 있다.”
방역은 과학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해야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불확실성 속에서 정책적 결단을 내리고 한정된 자원을 적재적소에 배분하는 것은 정치의 역할이다. 어떤 정치는 공동체를 구하고, 어떤 정치는 위기에 빠트린다. 팬데믹 초기 대규모 진단검사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결정을 내린 한국 정부는 명백히 전자에 속했다. 1년이 흐른 지금도 그러할까? 두 개의 정치가 코로나19 진단검사를 관통하고 있다.
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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