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카드 수수료-금리도 靑-정치권이 쥐락펴락?
이미 민주당은 4.7 재보궐선거을 앞두고 금융위원회와 함께 무주택자에 대해 각각 10%포인트씩 올려 60%로 올리는 방향으로 당정 협의를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위는 이에 대한 초안까지 마련해 두고, 다음 달 혹은 늦어도 6월경 실시하기로 일정을 조정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유력한 당대표 후보가 90%까지 올리자고 주장하니 당정이 모두 당황해하고, 10% 올리는 방안도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는 국토교통부는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무주택자 2030 ‘벼락거지’ 만들기 일조한 대출죄기
2017년 8.2 대책은 현 정부 주택 수요억제 대책의 종합판이다. 일단 서울 전역과 경기 과천, 세종특별자치시 등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했다. 그리고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을 각각 60%와 50%에서 40%로 일괄 하향 조정했다.
곧바로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불과 열흘 뒤 금융위원회는 부부 합산 연소득이 7000만 원 이하인 무주택 세대주가 서울, 세종시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6억 원 이하 주택을 살 때 담보인정비율(LTV) 50%, 총부채상환비율(DTI) 50%로 다소 완화했다.
현금이 없으면 집을 살 수가 없게 되자 예비신혼 부부 등 젊은 층에서는 말 그대로 ‘영끌’ 영혼을 끌어 모으듯이 주변에서 현금을 빌려 집을 샀다. 이런 고생을 하고서라도 집을 산 경우는 다행이다. 현금동원능력이 안되는 무주택자들은 집 사기를 포기하고 집값 떨어지기를 기대했지만 다락같이 치솟는 집값 상승곡선을 지켜봐야만 했다. 이제는 돈을 끌어 모은다고 해도 당시 가격으로는 접근조차 불가능한 ‘벼락거지’ 신세가 됐다. 이는 여당의 참패, 특히 2030 남성 유권자들이 등을 돌린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대선을 1년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여당으로서는 물려받거나 모아둔 현찰이 없는 젊은 세대에게는 특별히 불공정하게 느껴지는 LTV, DTI 비율을 그냥 그대로 둘 수 없는 노릇일 것이다. 오히려 이 비율을 높이는 것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의미도 있다.
● 정치가 민간 금융을 마음대로 하겠다는 인식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마치 국회의원들이 민간 은행들의 대출 비율을 자기들이 마음대로 올리고 내리고 내릴 수 있다는 인식이다.
기본적으로 개인이나 기업에 대해 대출을 얼마나 해줄 것인가는 은행이 스스로 정할 일이다. 주택구입자금도, 주택담보대출도 그 범위 안에 있다. 다만 가계대출처럼 자칫 국가적인 금융시스템 리스크를 불러올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때 금융당국이 나서 대출규모 조정에 나설 수는 있다.
집값 안정이라는 목표도 나라경제를 뒤흔들 사안이라고 정부가 판단하면 대출 비율을 죄고 푸는 정책을 민간은행에게 강제할 수 있다. 선진국의 경우에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최근에는 금융당국이 아닌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적 목적에 따라 민간은행을 자기들 마음대로 주무르는 사례가 너무 잦다.
정부와 여당이 나서 최저임금을 2년간 30%가까이 올리자 자영업자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이를 달래기 위해 2018년 말 청와대가 신용 카드수수료 인하를 들고 나왔다. 신용카드 수수료는 카드회사와 가맹점들이 자체적으로 협상해서 결정하는 것이 옳다. 금융 선진국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금융당국이 카드사들의 적정원가를 계산하고 정책적 고려를 해 결정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향후 3년간 적용될 카드 수수료율을 결정하기 불과 며칠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금융위원장에게 “카드 수수료부담 완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민주당의 주문 사안이었다. 금융위원장은 그 다음날 카드사 사장을 소집했고 이해찬 당대표는 “매출 10억 원 이하 가맹점은 거의 0% 가까운 수수료율로 당정간 합의됐다”고 발표했다.
● 정치적 명분에 퇴보하는 자율금융
정치권이 나서 LTV,DTI 비율을 올리는 것도, 내리는 것도 모두 나름대로 이유를 갖다댈 수 있다. 카드 수수료율을 낮추라고 카드회사의 팔을 비트는 것도 나름 명분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정치인 시장이 자영업자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제로페이라는 결제 회사(시스템)를 차리는 놀라운 경우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간편결제시장은 이미 카카오페이 삼성페이 같은 간편결제 같은 민간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이다. 정부가 발을 들일 이유가 없는 무한 자유경쟁 시장이다. 정치인들의 서슬에 민간 금융의 경쟁을 유도하고 효율성을 높여야 할 기획재정부나 금융위는 한마디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 한국 금융은 관치 시스템이었다. 기준금리를 정하는 한국은행은 재무부 남대문출장소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시중금리는 재무부 이재국이 정했다. 민간 정부로 넘어온 뒤에도 한 동안 크게 변하지 않았다. 민간 자율로 정하도록 했지만 사실상 정부 지시에 따라 한 은행이 금리를 정하면 다른 은행들이 줄줄이 따라 올리는 웃지 못할 현상도 한동안 이어졌다. 이른바 ‘관치(官治)_금융’ 시대였다. IMF를 겪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한국의 금융 산업은 어렵게 관치금융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중이다.
이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무소불위의 위력을 휘두르는 정치인이다. 민간 은행들이 경영상 점포 수를 줄이려는 움직임에도 법안으로 이를 저지하겠다는 으름장을 놓아 은행들의 발목을 잡는 게 현재 대한민국 입법부 주도의 당치금융의 현주소다.
●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가져올 또 다른 사례 당치금융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말 국무회의에서 “신용이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신용이 낮은 사람은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구조적 모순이 있었다”고 발언했다. 단순 말 실수나 해프닝으로 넘기기에 국무회의는 너무나 중대한 자리다.
돈이 없이 신용이 낮은 사람에게 높은 이자를 물리고, 반대로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고 신용이 높은 사람들에게 이자까지 낮게 받는 것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에 어긋나는 ‘구조적 모순’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고신용 저이자, 저신용 고이자’는 동서고금 신용경제의 기본 원리다. 이것에 구조적으로 모순이 있다는 것은 아무리 좋게 해석을 하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신용경제를 포기하고 금융시스템을 국유화하자는 것밖에 안된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이런 원고를 그대로 읽게 한 참모들은 도대체 뭘 하는 건지…)
이런 인식이 은행에 주택관련 대출 비율조정 압박, 민간 카드회사에 대한 수수료 인하 압박, 제로페이 운영, 법정 최고금리 인하 같은 시대에 맞지 않는 정책들의 배경이라고 볼 수 있다. 시대는 바야흐로 관치를 넘어 청와대가 직접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청치(靑治)금융’, 당이 금융정책을 결정하면 은행들이 따르는 ‘당치(黨治)금융’의 시대다.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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