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 '면역검사시스템' 6년째 입찰중..전문가들 "국산도 공평한 기회를"

이영성 기자 2021. 4. 15.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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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입찰 과정서 불거진 '외산 특혜' 의혹
전문가 "국내기업 배제의혹, 경쟁해야"..적십자 "특정업체 특혜 제공없어"
강원원주혁신도시에 위치한 대한적십자사 신사옥 조감도. © News1

(서울=뉴스1) 이영성 기자 = "국산 면역검사시스템도 외산과 동등한 환경에서 평가돼야 한다."

정부의 물자 구매 계약을 관장하는 조달청 관계자의 전언이다. 올해 다시 진행하는 대한적십자사(이하 적십자)의 면역검사시스템 입찰 과정에서 국산에도 도입 길을 연 공평한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외산을 배제하고 국산을 도입하자는 게 아닌, 공정한 경쟁을 통한 신기술 사용으로 국가 면역검사법을 발전해 나가자는 취지다.

적십자는 지난 2016년부터 4가지 바이러스를 검사할 수 있는 면역검사시스템(장비, 시약) 도입 입찰 공고를 수차례 냈다. 하지만 이후 계속된 유찰로 현재까지 사업이 시행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선 외산 특혜 의혹 등이 불거졌다. 적십자는 특정업체에 특혜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 "기술 발전, 혈액주권 확보 위해 국산도 기회를"

수요기관이 입맛에 맞는 장비를 도입하기 위한 입찰공고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적십자의 입찰 과정에서 규정 위반 등의 사례가 불거지면서 보건복지부와 국회 등이 문제제기를 해왔고, 이 과정에서 외산 특혜 의혹까지 제기됐다.

15일 조달청 관계자는 "입찰은 규정대로 적법하게 진행돼왔지만, 몇 번의 입찰에서 국내 기업이 배제된 것으로 보이는 의혹이 있다"면서 "(입찰 전) 평가도 못받았다는 것은 경쟁시스템이 제대로 가동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국가적으로도 불이익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코로나19 상황을 보더라도 국내 중소기업이 없었다면 실시간 대응이 가능하지 않아 진단키트를 바로 사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국산 제품이 입찰되기 어려운 환경으로, 국산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기회는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한 혈액전문가도 국산에 공평한 입찰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그는 "(입찰 과정에서) 경쟁을 통한 품질개선 유도가 필요하다"며 경쟁 입찰의 중요성을 부각했다.

그는 국산 도입의 필요성에 대해선 "국내에서만 특이한 감염원들이 발견될 수 있어 제때 (바이러스를) 검출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국내 기업이 훨씬 빠르다"며 "이러한 관점에서 혈액안전 주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입찰 시작 전부터 국내 기업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환경이 조성되기도 한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수요기관이) 사전 규격을 작성할 때 외산 위주로 만들어 놓고 국내 제조사는 이를 고지하는 시점에 인지하게 되는 경우"라며 "이미 만들어진 규격과 평가기준을 국내 기업에 맞추라고 하면 불리한 상황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전 규격 공고는 업체가 공고의 수정 방안이 있으면 미리 의견을 달라는 일종의 공지문이다.

그는 "(결국) 국내 제조사를 배제하기 위한 규격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여러 공공기관들이 이렇게 진행하고 있고, 불법은 아니지만 국산 활용의 기회가 없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2016년부터 수년째 유찰…국감에서도 지적, 무슨 문제?

면역검사시스템 입찰 관련 논란은 첫 공고가 났던 해인 2016년부터 시작됐다.

국회와 업계 등에 따르면, 적십자는 4가지 면역검사시스템 도입을 위해 2016년 9월 국가 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를 통해 입찰 공고를 냈다. 면역검사 장비와 에이즈, C형간염, B형간염, 백혈병 등 4종의 바이러스를 검사할 수 있는 시약까지 묶음(패키지)을 일괄 구매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경쟁 입찰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당해 4차례의 입찰, 재입찰 공고가 모두 유찰됐다. 이 입찰에는 기존 장비를 설치한 외국계 기업 지멘스와 국내 제약사 한독의 컨소시엄이 단독으로 참여했다.

적십자는 2016년 11월 25일 수의시담을 공고했다. 경쟁 입찰 대신 임의로 업체를 선택하는 수의계약이다. 외국계 기업 한국애보트, 그리고 지멘스 컨소시엄이 경쟁했다.

성능평가 기간인 같은 해 12월 13일 감사원에 적십자가 한국애보트에 특혜를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담긴 심사청구서가 접수됐다. 이후 복지부는 2017년 2월 적십자를 특별감사했다. 당시 복지부는 해당 사업이 적십자 총재 결재가 이뤄져야 하지만 혈액관리본부장 전결로 처리됐다는 점을 확인, 경고 조치를 내렸다.

또 성능평가를 앞두고 평가용 검사장비를 미리 입고한 사실에 대해 경고했다. 입찰 공고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2016년 5월 한국애보트의 평가용 면역검사 장비가 적십자 중앙혈액검사센터에 설치됐다는 것이다.

2018년 10월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관련 의혹들이 조명됐다.

당시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6년 면역검사시스템 교체 사업계획 수립 후 입찰 공고가 이뤄졌지만, 공정성 민원 제기로 특별감사가 실시돼 4년째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적십자사의 면역검사시스템이나 혈액백 입찰 사업과 관련해 (적십자) 혈액관리본부가 주도하고 있다"면서 "적십자는 규격이 안 맞아서 떨어진 업체가 일방적으로 하는 이야기라고 하지만, 입찰기준이 특정업체에 따라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적십자는 2018년에도 입찰 공고를 냈지만 또 유찰됐다. 당해 7월 한국애보트와 수의시담이 진행됐으나 전년도에 적십자가 면역검사시스템 사업비가 높게 책정된 것을 확인하고, 사업비를 832억원에서 677억원으로 가격을 줄인 영향인 것으로 알려졌다.

적십자는 2019년 한국애보트, LG화학, 한독까지 3개 업체에 수의시담을 실시한다고 통보했고, 서류평가에서 한국애보트만 통과했다.

하지만 한국애보트의 무허가 시약 의혹이 제기됐다. 적십자가 자체 조사한 결과 한국애보트 시약은 입찰 참여 장비용으로 허가된 게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식약처에 조사를 의뢰를 한 결과, 2016년과 2018년 입찰 때 관련 규정 위반이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달청. © 뉴스1

◇작년 12월 다시 사전 규격공고…"특수분야, 조달청 평가기능 강화" 의견도

적십자는 지난해 2월 한국애보트에 대해 6개월간 '부정당업체'로 지정, 이 기간 입찰 참가를 제한했다. 그러나 2~8월 입찰 공고가 없다가 12월 15일 사전 규격공고가 나왔다.

하지만 이 사전 규격마저도 특정 외산 장비가 들어맞는 스펙이란 게 업계 설명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해당 사전 규격은 11시간 동안 장비 1대당 880 검체, 4개 항목을 검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라며 "현재 혈액센터에서 쓰고 있는 외산 장비가 딱 들어맞고, 결국 다른 신기술은 기준에 맞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규격에는 납품 실적도 중요한 평가 항목에 들어간다. 배점이 15점이 할당돼 있다보니 1~2점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상황에서 신규 업체는 쳐다도 볼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신기술 개발 업체의 경우 납품 실적 자체가 없는 새로운 기기로 높은 배점을 받기 어렵다"며 "해외진출을 위해, 해당 국가에 가면 국내 납품 실적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굉장히 험난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번 입찰에는 국내 기업들이 상당 수 구성된 '지멘스 헬시니어스·LG화학·동아에스티·피씨엘' 컨소시엄이 참여하는 것으로 공개가 돼 있다. 한국애보트와 로슈진단측도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적십자 측은 그간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적십자 관계자는 "혈액 안전성 확보를 최우선으로 면역검사시스템 도입 사업을 추진 중"이라며 "특정업체에 특혜를 제공한 바는 없다"고 밝혔다.

이번 입찰에 대해선 이 관계자는 "적십자 면역검사시스템 입찰과 관련해 외국산 또는 국산을 구분한 입찰참여 제한은 없다"며 "다만 사전규격 공개와 관련해 감사원 등에 접수된 검사 처리속도 및 수행실적 항목 등 민원에 대해서는 조달청 등 유관기관과 협의를 통해 관련규정 내에서 합리적으로 반영해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조달청 측이 앞으로 혈액관리와 같은 특수분야에 대한 평가권한이 더욱 강해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조달청 관계자는 "수요기관이 성능 등 평가를 하더라도 조달청도 이를 평가해 적절성을 검토할 수 있도록 일부 개선이 됐지만, 일단 수요기관 요청이 없으면 사실상 시행이 어렵다"면서 "특수분야는 국민 건강과 직결된 만큼, 의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ly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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