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노트] 파평윤씨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

노자운 기자 2021. 4. 15. 08: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보합니다. A사 대표가 윤씨인데요, 파평윤씨 맞나요? 시간 날 때 취재좀 해주세요."

며칠 전 받은 익명의 이메일 내용이다. 최근 이처럼 테마주를 ‘제보’하는 메일이 많이 들어오는데, 대표이사가 파평윤씨가 맞는지 취재해달라는 내용은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깊었다.

지난달 주식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파평윤씨 찾기’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모양이다. 이른바 ‘파평윤씨 테마주’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관련주다. 대표이사와 윤 전 총장을 같은 집안 사람이라는 연결고리로 묶어 주가 상승을 꾀하는 것이다.

일러스트=유현호

크라운제과(264900)도 최근 파평윤씨 테마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 6일까지만 해도 주가가 1만원선에 머물렀으나, 윤영달 회장이 파평윤씨라는 설이 나오며 이틀만에 1만7000원대까지 급등했다. 그러나 "알고보니 파평이 아니라 해남윤씨"라는 얘기가 나와서인지, 주가는 다시 하락해 1만3000원대에 머물고 있다. 그 과정에서 투자자가 해남윤씨 족보를 뒤져봤다는 웃지 못할 사연까지 있었다.

우리조명(037400)역시 최대주주가 파평윤씨라는 소문에 12~13일 이틀 연속 급등했다. 지난 9일까지만 해도 2000원대 중반에 거래됐으나, 이틀 후 두 배가 넘는 4800원대까지 올랐다. 그 외에도 NE능률(053290)TJ미디어(032540), 성보화학(003080)유화증권(003460)까지 파평윤씨 테마주는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테마주 투자자들이 찾아 헤매는 대상이 어디 파평윤씨 뿐이겠는가. 제2, 제3의 파평윤씨는 증시 곳곳에 숨어서 기회를 노리고 있다. 14일에는 요거트 ‘불가리스’가 파평윤씨의 뒤를 이을 뻔 했다. 남양유업(003920)이 자사에서 판매 중인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하자, 남양유업은 물론 불가리스에 함유된 비피더스균 관련주까지 불가리스 테마로 묶였다. 비피더스균을 연구하고 제품 개발을 하는 제약사 비피도(238200)는 13일 장 종료 후 시간외 상한가를 기록했다. 그러나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예방과 관계 없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잇달아 나오자 남양유업 주가가 반락했고, 비피도 주가도 덩달아 제자리를 찾아갔다.

개미의 눈에 테마주만큼 매력적이고 스릴 넘치는 투자처도 없을 것이다. 주가가 어느날 갑자기 예상치 못하게 수십 배나 오르고, 특별한 호재 없이도 기대감만으로 상승 곡선을 그린다.

그럼에도 테마주로 만족할 만한 수익을 얻었다는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보기는 어렵다. 테마주 투자자는 대개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상한가 갔을 때 팔았는데 그 후 10배나 올라서 배가 아파 죽겠다"는 부류, 또 다른 하나는 "상한가 가길래 더 오를 줄 알고 추가매수했더니 다음날 곤두박질쳤다"는 부류다. 어느 쪽이나 속쓰리기는 매한가지다.

테마주를 사고 파는 최적의 타이밍은 소위 ‘세력’과 대주주만이 안다. 일반 투자자는 정말 운이 좋아야 그 타이밍에 편승할 수 있다.

실제로 대주주가 주가가 급등하자 지분을 팔아버린 사례가 꽤 있다. 지난달 초 파평윤씨 테마로 묶여 급등한 NE능률(053290)은 같은 달 15일 자사주를 처분하겠다고 공시했다. 자사주 140만주 가운데 절반이 넘는 82만주를 팔겠다고 한 것이다.

성보화학(003080)역시 지난달 초 주가가 크게 오르자 최대주주 일가가 장내매도로 90만주 이상을 처분했다. 6000원대까지 올랐던 성보화학 주가는 최대주주 일가의 주식 처분 이후 5000원선까지 내려온 상태다. 개미들이 대주주 좋은 일만 시켜주고 울게 된 사례다.

일반 투자자가 테마주에 투자해 큰 돈을 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실적도 견조하고 성장성이 기대돼서 투자했더니 테마주로 묶인 경우라면 몰라도, 단지 ‘테마주이기 때문에’ 영끌(영혼을 끌어모은다는 뜻의 신조어) 투자에 나서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다시 파평윤씨 얘기로 돌아가보자. 파평윤씨는 국내 윤씨 중 자그마치 4분의 3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 성을 가진 상장사 대표이사 4명 중 3명은 본관이 ‘파평’인 셈이다. 다시 말해, 대표가 윤씨이기만 하다면 그 어떤 회사도 윤 전 총장 테마주로 엮일 수 있다는 얘기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